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치닫는 ‘라임 게이트’

호남 출신 여권 인사·부산파·금감원 등 로비 의혹 김봉현 회장 측 “난 몸통 아니다, 진짜 따로 있다” 주장

2020-05-04     송창섭 기자
코로나19 사태와 21대 총선 이슈가 뉴스를 뒤덮은 가운데서도 라임자산운용(이하 라임) 사태가 심상찮게 전개되던 시점인 지난 3월20일. 시사저널에 제보가 하나 들어왔다. 당시 모든 언론은 라임의 배후에 있는 전주(錢主)로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구속)을 지목하고 있었다. 그때 김 회장은 도피 중이었다. 당시 시사저널에 제보한 인물은 김봉현 회장이 아니라 자신을 김 회장의 사업 파트너라고 밝힌 A씨였다. 그는 “라임의 몸통으로 지목된 것에 대해 김 회장이 매우 억울해한다”며 “김 회장이 라임 사태에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은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구속)에게 투자자를 연결해 준 ‘꼬리’에 불과하다. ‘몸통’은 따로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비리 덩어리로 비춰져 있지만, 라임이 투자한 회사 중에는 알짜 기업이 꽤 있다. 그걸 김 회장은 싼값에 인수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 대형 증권사 기업구조화 상품담당 임원도 “김 회장이 라임 사건의 ‘몸통’으로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 그보다 더 큰 몸통이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는 라임 사태의 진짜 몸통으로 유명 한류스타의 전직 매니저인 기업사냥꾼 이아무개 회장을 주목한다. 유명 여배우 B씨의 전남편 김아무개 사장이 이번 사태의 중심에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라임 사태 관련 뇌물 혐의 등을 받는 김아무개 전 청와대 행정관이 4월18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다(오른쪽 사진). ⓒ연합뉴스

김봉현, 라임 터지기 전 무명에 가까운 사채 브로커

시사저널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김 회장은 이 회장, 김 사장에 비해 기업 M&A(인수합병) 시장에 덜 알려진 인물이다.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거의 무명에 가까웠다. 광주광역시 출신인 그는 혈혈단신으로 상경해 명동 사채시장에서 자금을 굴려주며 중간에 수수료를 챙기는 방식으로 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자본시장에 이름을 알린 것은 코스닥 상장사 인터불스(현 스타모빌리티)를 인수하면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그의 고향이 광주인 것과 청와대 행정관 출신인 김아무개 금감원 과장과 친분이 두터웠다는 점도 최근에 와서야 알았다”고 설명했다. 김봉현 회장 측이 제보한 정치권 인사는 꽤 고위급이었다. 그중 한 명이 이번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부산 사하을 후보였던 이상호 전 전문건설공제조합 감사다. A씨는 김봉현 회장의 말을 빌려 “이상호 후보에게 꽤 공을 들였는데, 이는 전문건설공제조합으로부터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서다”고 증언했다. 결과적으로 김 회장의 로비는 실패했다. 전문건설공제조합 내부 지침에 따르면, 신생 사모펀드 운용사에 돈을 빌려주는 것이나 기업 M&A 용도로 자금을 지원받는 것이 불가능했다. 시사저널은 이 후보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그와 만난 자리에서 누구를 통해 김 회장을 소개받았는지 구체적으로 물었다. 이에 대해 이상호 전 후보는 “2018년 3월경 김갑수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대표로부터 김봉현 회장을 소개받았으며, 그후 2~3차례 함께 만났다”고 답했다. 김 전 대표를 통해 이상호 전 후보를 만났다는 사실은 김 회장 측도 인정하고 있다. 김 회장 측은 취재 내내 “김 회장이 ‘나도 잘못했지만 나를 이렇게 언론에 매도한 이아무개 대표가 더 나쁘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김 회장 측이 지목한 이는 지방 MBC 대표를 역임한 전직 언론인이다. 김 회장 자신은 10여 년 전부터 형님, 동생 사이로 지낸 이 대표를 위해 매달 수백만원의 활동비를 제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지방으로 내려가 광주에서 언론인 생활을 했기에 중앙 무대에는 큰 인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와 김 회장에게는 동향 사람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김 회장의 입에서 나온 인물들은 몇 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호남 출신 인물들이 있다. 전직 고위 법조인 C씨와 전직 국회의원 D씨, 현재 민주당 재선 의원인 E씨는 광주와 전남에 고향을 둔 인사들이다. 김 회장은 이 대표가 이들 정치권 인사를 만나면서 자신의 돈을 썼다고 주장했다. 이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오른쪽)와 이종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이 2019년 10월14일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연기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호남·부산 정치인 등과 광범위하게 친분 쌓아

또 다른 갈래는 친문·친노 인사가 중심이 된 부산파다. 이상호 전 후보는 이 중 한 명이다. 김 회장이 이 전 후보를 만나는 데 중간에서 소개해 준 인물로 알려진 김갑수 전 대표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대학을 나와 친노·친문 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다. 시사저널은 김 전 대표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하고,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그는 본지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시사저널은 4월24일자 보도에서 이상호 전 후보의 인터뷰를 통해 김 회장과 이 전 후보의 만남을 주선한 김 전 대표의 실명을 공개했고, 이에 김 전 대표 측은 자신의 실명이 공개된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상호 전 후보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갑수(김갑수 전 대표)가 ‘김 회장이 하란 대로 해 꽤 짭짤한 수익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을 똑똑히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표 측은 “이 대표와는 예전부터 방송 쪽 일로 알고 지낸 사이로, 나중에 김 회장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또 하나의 로비 대상은 금감원 등 정부기관이다. 여기에 동원된 인물은 김 회장의 고향 친구인 김아무개 전 청와대 행정관(전 금융감독원 직원)으로 추정된다. 김 회장 측은 국회 정무위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로비했다고 주장한다. 김 회장 측에서 거론한 전직 국회의원 중 2명은 20대 국회에서 정무위 소속으로 활동했다. 이 밖에도 김 회장 측은 시사저널에 스트라이커가 수원여객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생긴 비정상적인 행위를 입증하는 여러 자료를 제공했다. 김봉현 회장은 지난해 1월 스트라이커가 수원여객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회삿돈 162억원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고 장기간 도피행각을 벌이던 중 경찰에 붙잡혔으며, 4월26일 구속됐다.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피해자들이 2월1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검찰 수사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 손으로 넘어간 ‘김봉현 리스트’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4월23일 서울 성북구의 한 빌라에서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과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김 회장이 사용하던 가죽 업무수첩 2권을 확보했다. 한 권은 자신이 투자했던 상장사 지분 관계와 자금내역이 기록된 것이며, 나머지 한 권에는 성경 구절이 필사돼 있었다. 김 회장은 한 유명 대형 교회를 다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 자료를 확보함에 따라, 수사 당국은 김 회장과 주변인들 간의 자금 흐름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는 계획이다. 그 과정에서 이번에 압수된 업무수첩이 ‘라임 게이트’의 열쇠가 될 수 있다. 김 회장을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은 “평소 필요하다 싶으면 돈을 물 쓰듯 쓰는 것 같지만, 지출내역을 꼼꼼히 적어두는 습관이 있다”면서 “만약 그가 정·관계에 로비를 했다면 수첩에도 자세히 적어뒀을 것”이라고 말했다. 벌써부터 법조계에서는 “라임 문제를 이렇게까지 끌고 온 진짜 몸통이 조만간 드러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정치권 연루 인사들도 등장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