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슈퍼여당’ 막아도 갈 길 간다
검찰권 통제에만 치우친 검찰개혁, 검찰 독립 방안 없으면 정권 교체기마다 ‘정치검찰’ 반복
2020-04-27 조해수 기자
슈퍼여당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전쟁이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효자’를 자처하고 있는 열린민주당 등 대(對)검찰 강경파에서는 벌써부터 윤 총장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총장 개인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면서도, 7월 출범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검찰개혁에 대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채비를 마쳤다. 윤 총장은 이에 아랑곳없이 수사에 매진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도 여당과 검찰 간 ‘강 대 강’ 대치가 예상되는 가운데, 검찰개혁의 한 축인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 열린민주당 소속으로 21대 국회에 입성한 최강욱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의 당선 일성이다. 최 전 비서관의 말처럼 세상은 바뀌었다. 4월15일 치러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이상 180석)과 범여권인 열린민주당(3석)은 183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 있는 일로, 범여권은 개헌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국회에서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됐다. 무소불위 권력의 칼끝은 곧바로 검찰을 향했다. 최 전 비서관의 “확실히 갚아주겠다”는 서슬 퍼런 ‘보복’ 메시지의 대상은 다름 아닌 검찰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우희종 대표는 선거 다음 날 윤 총장을 직접 겨냥해 “여의도(국회)에서 이제 당신의 거취를 묻고 있다”며 자진사퇴를 압박했다. 이들은 검찰을 ‘개혁’을 넘어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윤 총장 개인에 대한 ‘증오’마저 엿보인다. 최 전 비서관은 “한 줌도 안 되는 부패한 무리의 더러운 공작은 계속될 것이다. 최소한 저 사악한 것들보다 더럽게 살지는 않았다”는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우 대표 역시 “표창장 하나로 여러 대학 압수수색에, 굳이 청문회 시작하는 날 기소를 하고, 결국 문 대통령의 검찰개혁 의지에 앞장선 조국 장관 사퇴를 유도했을 때, 그(윤 총장)는 씨익 웃었을 것”이라면서 “지금까지 그 어느 역대 대통령도 검찰개혁에 성공한 적이 없노라고, 더욱이 검찰 권력과는 기레기 언론이 찰싹 붙어 있노라고, 청와대에 들이대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대선 정국까지 윤 총장 놔둘 수 없다”…탄핵 추진할 수도
이들의 증오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검찰청법은 검찰총장의 임기를 2년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윤 총장의 임기는 2021년 7월까지다. 그러나 2021년 초부터는 20대 대통령선거를 위한 당내 경선이 진행되는 등 본격적인 대선 정국이 시작된다. 윤 총장을 ‘더러운 공작’을 자행할 ‘부패한 무리’라고 인식한다면, 범여권은 윤 총장을 강제로 끌어내리기 위한 탄핵 절차를 밟을 힘이 있다.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으로 발의가 가능하고, 재적 과반수의 찬성으로 탄핵소추가 이뤄진다. 최종적으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따라 탄핵이 결정된다. 물론, 탄핵 절차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윤 총장의 위법 사실이 밝혀져야 한다. 이와 관련해 최 전 비서관은 지난 1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인턴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해 준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되자 이를 ‘기소 쿠데타’라고 규정하며 “윤석열 총장을 중심으로 검찰 내부의 특정 세력이 검찰 정기인사를 앞두고 각종 언론플레이를 통해 정당한 인사 절차를 훼손(직권남용)했다. 관련자를 모두 고발해 직권남용이 어떤 경우 유죄로 판단되는지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또한 최 전 비서관은 “윤 총장이 공수처 수사 대상 1호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밖에 시민단체 애국국민운동대연합은 지난해 11월 조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윤 총장을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그러나 강경파의 행보가 오히려 검찰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강경파의 논리가 “검찰개혁=윤석열 사퇴”로 귀결되면서, 검찰개혁이 제도 개선이 아닌 인적 청산에만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윤 총장은 ‘검찰도 바뀌어야 한다’며 대통령의 뜻을 수용하는 모습을 밝히는 등 최소한 반발하는 모습은 안 보였다”면서 “(그러나)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검찰 인사로) 윤석열 총장의 손발을 다 자르면서 윤 총장을 순교자로 만드는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열린민주당 등 강경파와는 달리 수위 조절에 나선 모습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언론에서 개헌이나 검찰총장 거취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코로나 국난 극복”이라면서 “경제위기, 일자리 비상사태를 타개해 나가는 엄중한 상황으로, 우리 당은 이 상황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조국 키드’로 불리는 김남국 경기 안산 단원을 당선인 역시 “검찰개혁의 핵심을 어떤 개인 검사 한 사람에 대한 문제라고 보는 시각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면서 “윤 총장의 거취에 대해 말하는 것은 굉장히 적절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검찰 독립’ 방안 마련돼야
더불어민주당이 강경파와 선을 긋고 있지만 검찰개혁의 고삐를 늦출 리 없다. 검찰개혁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검찰권 남용 방지를 위한 ‘민주적 통제’와 정치적 중립을 위한 ‘검찰 독립’이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검찰권 통제에 방점이 찍혀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14일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검찰도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하는 기관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취해진 조치들이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추진하고 있는 수사-기소 검사 분리 방안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할 수 있는 개혁방안이 추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따라붙는다. 검찰개혁이 시대정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검찰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검찰은 정권 입맛에 따라 수사 방향을 정하는 것은 물론 이전 정권이나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국민적 비판을 받아왔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진두지휘한 조 전 장관 역시 검찰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검찰의 기본 속성은 죽은 권력과는 싸우고 산 권력에는 복종하는 ‘하이에나’식”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도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조 전 장관은 민정수석으로 임명된 후 “민정수석은 검찰의 수사를 지휘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 역시 윤 총장 임명식 때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검찰이 갖는 하나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청와대든 정부든 또는 집권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이때 “정부 출범 이후 아직까지는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여당이든 권력형 비리라고 할 만한 일들이 생겨나지 않았다. 정말 참 고마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말이 있은 직후 ‘조국 사태’를 시작으로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이 연이어 터졌다. 검찰의 칼날이 정권을 향하자 검찰 독립에 대한 얘기는 자취를 감췄고, 강경파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반쪽짜리 성공에 그칠 뿐 아니라 암울한 역사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문재인 정부의 상황은 참여정부와 데자뷔를 느끼게 하는데, 문 대통령은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저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참여정부의) 민정수석실도 검찰에 주요 사건의 지시 내지는 조율을 하지 않았다. 이 원칙은 참여정부 기간 내내 철저하게 견지했다. 대선자금 수사로 대통령 측근들에게까지 수사의 칼날이 와도 검찰이 원칙과 소신대로 수사할 수 있도록 모두 허용했다. 우리 쪽의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겪으면서도 검찰 수사의 독립성과 중립을 보장해 줬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마자 그들은 순식간에 과거로 되돌아가 버렸다. 검찰을 장악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보장해 주려 애썼던 노 대통령이 바로 그 검찰에 의해 정치적 목적의 수사를 당했으니 세상에 이런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마이웨이’ 윤 총장, 앞길은 산 넘어 산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해 주는 방안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검찰에 대한 행정부의 감독권 강화일 수는 없다. 검찰의 탈(脫)정치화를 위해서는 ‘검찰 인사권 독립’이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검찰이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도 결국 대통령이 검찰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2년 18대 대선 당시 “이명박 정부 5년간 대통령과 청와대가 검찰 수사와 인사에 관여했다. 이런 악습을 완전히 고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검찰의 수사권이 존중돼야 하듯이 법무장관과 대통령의 인사권도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정치검찰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정권 교체기마다 검찰의 칼춤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윤 총장은 슈퍼여당 탄생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다. 총선 전 황희석 열린민주당 후보가 윤 총장의 휴가를 두고 ‘자진사퇴’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건강상 이유로 의료 시술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해프닝에 그쳤다. 윤 총장의 자진사퇴설을 비웃기라도 하듯 검찰은 중요 수사에 매진하고 있다. 총선 다음 날 검찰이 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사건과 관련해 이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는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을 긴급체포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윤 총장은 선거사범과 관련해 총선 당일 대검 공공수사부 검사들과 식사를 하며 “‘정치적 중립’은 펜으로 쓸 때 잉크도 별로 안 드는 다섯 글자지만 현실에서 지키기가 어렵다”면서 “국민들께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게 어려운데 끊임없는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선 뒤로 미뤄졌던 청와대 관련 수사도 재개된다. 가장 먼저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과 관련해,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광철 민정비서관 등에 대한 기소 여부가 조만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임 전 실장의 기소 여부는 향후 정국의 가장 큰 뇌관으로 여겨진다. 임 전 실장까지 기소된다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에 대해 문 대통령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전직 검찰 간부는 “윤 총장은 자진사퇴의 뜻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검사는 수사로 말한다’는 윤 총장의 지론처럼, 수사를 통해 본인의 거취 논란을 불식시킬 것이다. 청와대 수사도 예외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윤 총장 역시 심판대에 서 있기는 마찬가지다. 청와대 관련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과 최강욱 전 비서관의 조 전 장관 아들 허위 인턴활동 확인서에 대한 재판은 이미 시작됐고,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재판은 4월23일 첫 번째 공판준비기일을 갖는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청와대 관련 수사를 검찰권 남용이라고 공격하고 있는데, 무죄가 나올 경우 윤 총장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채널A 기자-현직 검사장 유착 의혹’은 대형 악재다. 이 사건이 ‘피의사실 공표’ ‘수사기밀 누설’ 등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검찰을 비판하며 제기해 왔던 ‘검(檢)-언(言) 유착’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열린민주당이 윤 총장의 장모와 부인을 고발한 사건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열린민주당은 윤 총장 부인 김건희씨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로, 장모 최아무개씨에 대해서는 파주의 한 의료법인 비리에 연루됐다며 사기 혐의로 고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