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가 된 ‘이낙연 대세론’…2년 버틸 맷집이 관건
총선이 만든 새로운 잠룡 지형도…‘여권 9룡’ 비해 야권은 인물난
2020-04-21 감명국 기자
최대 계파 ‘친문’의 시선은 어디로 향할까
‘대권 잠룡 1위 이낙연’ 구도는 확실히 만들어졌다. 하지만 대선까지는 아직 2년이 남았다. 과연 그때까지 이런 분위기가 계속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평이 다소 엇갈린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이 당선인이 총선 과정을 직접 이끌었다는 점, 그리고 중도층까지 확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일단 대세론이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에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이번 총선을 통해 당내 기반이 취약했던 이 당선인의 당내 연착륙이 이뤄진 건 맞지만, 사실 여당 압승의 원동력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청와대 출신을 중심으로 한 친문의 힘을 무시 못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당분간 이 당선인이 차기 대선후보 경쟁력에서 선두를 질주할 것이란 데는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윤 센터장의 지적대로 가장 취약한 문제였던 당내 기반도 어느 정도 구축했다. 현 대선후보 지지율 1위라는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하며 일찌감치 ‘정치 1번지’ 종로 출마를 선언했고,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아 전국 유세에 나서면서 전국구 존재감을 한껏 과시했다. 각 지역구 후보들의 지원 요청이 잇따랐고, 그는 약 40명에 이르는 후보들의 후원회장을 맡는 것으로 자신의 계파를 만들었다. 당내 거의 유이한 계파 의원이었던 이개호 의원과 오영훈 의원이 각각 전남과 제주에서 살아남았고, 여기에 덧붙여 ‘특별관리’한 후원 후보자들도 대거 당선됐다. 특히 수도권의 고민정·백혜련·이탄희·김병욱·김용민·김주영·고용진·박정·이소영·홍기원 당선인을 비롯해 충청의 강훈식·임호선, 제주의 송재호 당선인 등을 배출하며 이낙연 당선인의 또 다른 취약점으로 평가받는 호남 편중 일변도에서 벗어나 저변을 넓혔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관건은 역시 당내 주류 세력인 ‘친문’의 견제다. 노무현 정부 시절 고건 전 총리가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1위를 독주하다가 결국 ‘친노’ 등 당내 주류의 견제 속에 도중 낙마한 전력이 오버랩된다. 하지만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전문 행정관료에 가까웠던 고 전 총리와 달리 이 당선인은 이미 4선을 지낸 중진이어서 맷집이 다르다는 지적이 더 설득력을 낳는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과거 노태우에서 김영삼으로,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또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정권이 연장된 사례를 보면 차기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과 뚜렷한 차별화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당선인과 문 대통령도 비슷한 케이스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총선의 또 다른 수혜자로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들 수 있다. 당내 ‘박원순계’로 통하는 기동민·박홍근·남인순 의원이 모두 재선 또는 3선에 성공했고, 서울시에서 박 시장과 손발을 맞췄던 최종윤·김원이·윤준병·천준호·박상혁 후보 등이 모두 당선됐다. 박 시장의 법률자문을 맡았던 민병덕 변호사도 안양 동안갑에서 당선됐다. 서울시 주변에서는 이들 9명을 가리켜 ‘박원순계 9인방’으로 부른다. 진성준 전 부시장, 허영 전 정무수석도 박원순계로 분류된다. 오히려 결속력은 이낙연계보다 더 단단할 정도로 당내에 상당한 입지를 구축한 셈이다. 총선을 앞두고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 김용 전 대변인 등 최측근들이 잇따라 경선에서 탈락하며 박 시장과 희비가 갈렸던 이재명 경기지사는 그나마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내 ‘이재명계’로 분류될 수 있는 정성호·김영진 의원이 국회 재입성에 성공했고, 이규민 전 수원월드컵경기장 상임이사도 당선됐다. 코로나 정국에서의 단호한 대처로 개인 지지율이 상승하는 분위기여서 당분간 이낙연·박원순과 함께 여권 잠룡 ‘빅3’ 구도를 형성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지사의 최대 난관은 곧 나오게 될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한 대법원 선고다.‘친이계+유승민계’…유승민·원희룡 주목
문제는 이들이 모두 ‘비문(非文)’이란 점이다. 당내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친문의 세 결집에 따라 얼마든지 대권 지형도는 요동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주목받는 이가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이광재 당선인이다. 당초 종로 출마를 준비하다 돌연 제도권 정치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던 임 전 실장은 이번 총선을 통해 사실상 정계복귀를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고민정 당선인을 비롯해 청와대 출신 후보들의 선거를 돕기 위해 전국을 누볐다. 특히 윤영찬·한병도·윤건영 등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당선인이 거의 20명에 육박하면서 이들이 잠재적으로 임 전 실장의 지원군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올 신년 특별사면으로 정치활동이 재개되자마자 보수 텃밭인 강원 지역 총선에서 승리하며 경쟁력을 과시한 이광재 당선인 또한 김경수·조국 대신 새로운 친문 주자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문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양산 출마를 요청받고 민주당 깃발을 꽂은 김두관 당선인도 PK 대표주자로서 대권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이번 총선에서 낙선하긴 했지만 김부겸 의원 역시 TK 대표주자라는 상징성을 내세우며 당권과 대권 도전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계속 이어갈 전망이다. 여기에 현재 코로나 비상사태를 관리하고 있는 정세균 총리와 검찰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추미애 법무장관도 잠재적인 대권주자로 거론되면서 ‘여권 9룡’이란 용어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보수진영은 초비상이다. 당장 제1 야당인 미래통합당은 당을 이끌어갈 리더조차 보이지 않는다. 최대 관심은 전격 사퇴를 선언한 황교안 전 대표가 과연 대권주자로 재기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고개를 저었다. 윤희웅 센터장은 “어차피 황 전 대표의 보수진영 1위 지지율은 대안 부재에서 나온 것이었지 온전한 자신의 경쟁력으로 보기 어려웠다. 이번 총선으로 그 경쟁력이 취약함을 노출시켰기 때문에 단순히 대권주자뿐 아니라 정치생명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현재로선 마땅한 대안도 보이지 않는다. 유력 후보였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정치 신인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당분간 정치 공백이 불가피해졌다. 그나마 당내 인사로는 유승민 의원과 원희룡 제주지사가 꼽힌다. 유 의원 또한 이번 총선을 통해 ‘유승민계’를 당내에 나름대로 구축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대구와 경북에서 강대식·류성걸·김희국 당선인을 냈고, 하태경 의원도 부산에서 당선에 성공했다. 서울의 김웅, 경기 평택의 유의동 당선인도 유승민계로 분류할 수 있다. 비례대표로 당선된 정운천 의원도 역시 유승민계로 분류된다. 현재 재선 제주지사로 통합당 최고위원을 겸하고 있는 원 지사는 자신의 임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인 2022년 6월 전에 전격 대선 출마를 선언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때 통합당의 개혁공천을 주도했던 김형오 전 공관위원장이 탄핵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친박세력은 황교안 대표와 함께 총선을 통해 퇴장시키고, 다시 친이명박계와 유승민계를 결합시켜 보수정권을 탈환하는 구도를 꿈꾸고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과 원 지사는 대표적인 친이계 정치인이다. 황 전 대표가 김 전 위원장이 주도했던 공천에 반발하며 그 결과를 뒤집은 것도 이런 당내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란 지적이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홍준표 당선인과 김태호 당선인도 잠재적 대선주자로 꼽히지만,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당 공천에 불복해 탈당했고, 또 영남 출신이라는 한계가 있어 다소 진통이 뒤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외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주시하는 시선도 많다. 엄 소장은 “윤 총장도 (정치에) 의지가 있다면 문재인 정권에 맞서면서 부각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고, 유 시사평론가 역시 “마땅한 대안이 없으면 윤석열 영입론이 고개를 들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본인이 결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영원한 승자는 없다
2000년 이후 최근 20년간 승-패 반복했던 전국 선거 변화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사상 유례없는 압승을 거뒀지만, 여권 내에선 묘한 긴장감도 감돈다. 지나친 대승이 다음 선거를 감안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경계심이 그것이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4월16일 선대위 회의에서 “지금 민주당은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라면서 군기를 다잡았다. 전국 단위의 선거에서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일정한 간격으로 승리와 패배를 번갈아가며 반복했던 기억 때문이다. 실제 당시 제1 야당이던 한나라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이 2000년 4월 총선과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승리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막상 6개월 후에 벌어진 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에게 패하며 정권 탈환에 실패했다. 민주당 역시 2002년 12월 대선 승리에 이어 2004년 4월 총선에서도 열린우리당(민주당의 전신)이 152석으로 과반의석을 달성하는 대승을 거뒀지만, 2006년 6월 지방선거에서 대참패를 당한 이후 이듬해 12월 대선마저 패하면서 정권을 보수진영에 내줘야 했다. 정권을 잡은 한나라당 또한 2008년 4월 총선까지 3연승으로 승승장구하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패했다. 하지만 새누리당(통합당의 전신)으로 다시 당을 재정비하고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잇달아 승리하며 정권 연장에 성공했다. 절치부심한 민주당은 자만에 빠진 새누리당에 2016년 4월 총선에서 대역전극을 이뤄낸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 5월 대선과 1년 후의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대승을 거두며 다시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그리고 이번 총선까지 압승을 거두며 4연승을 구가했다. 하지만 이런 압승이 오히려 2년 후에 있을 차기 대선에서는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경계론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