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필터링조차 없이 전해진 ‘황당무계 공약’들

'김정은 정권 교체' '주6일 근무' 등 현실성 없는 공약 남발 주요 정당에서도 이슈 편승해 급조된 공약 내놔

2020-04-13     구민주 기자·김도형 아주경제 기자

’긴급생계지원금 가구당 1억원 지급’ ‘결혼수당 1억원 지원’ 등. 허경영 총재가 이끄는 국가혁명배당금당의 핵심 공약에 소요되는 예산은 총 2800조원. 한 해 국가 예산의 8배에 이른다. 비현실적인 내용임에도 배당금당은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이러한 공약들을 전면에 내걸며 유권자들에게 표를 호소한다. 이 당은 선거 기간 국가로부터 8억원에 이르는 선거보조금을 수령했다. 그 과정에서 공약의 실현 가능성 등 질적인 측면을 따져 가리는 절차는 전혀 없었다. 이번 총선에 뛰어든 정당 수가 역대 최다를 기록한 만큼, 이처럼 각 당이 내놓은 공약 가운데 다소 황당할 만큼 생소하고 이색적인 내용이 적지 않다. 이들 대부분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뿐 아니라 선거판을 희화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상 정책 선거가 실종된 상황에서, 거대 원내 정당들조차 급조된 듯한 공약을 내놓는 경우 또한 적잖이 발생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용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최근 국민 1인당 60만원씩의 기본소득을 주는 공약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냈다가 논란이 일자 서둘러 철회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미래통합당은 왼손잡이의 권익보호를 위해 왼손잡이기본법(가칭) 제정 등의 공약을 내걸었는데, 이 역시 황당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상 이러한 공약들을 치밀하게 평가하거나 제재하는 과정이 우리 선거 절차상 전무해, 유세 과정에서 유권자들에게 필터링 없이 전달되면서 혼란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월8일 서울 은평구에 코로나19 긴급지원금 1인당 1억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이 적힌 국가혁명배당금당 후보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이런 공약도 있어?” 군소 정당들이 내놓은 자극적 공약

원내 정당들보다 상대적으로 주목받기 힘든 원외 군소정당들은 경쟁하듯 자극적인 공약들을 내놓으며 유권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극우보수 정당들은 대체로 북한과 관련한 이색 공약을 앞장서 내걸고 있다. 조원진 대표가 이끄는 우리공화당은 '김정은 정권’의 교체를 공약으로 발표했다. 반공 정당 기치를 내건 코리아당 역시 ‘북진통일’과 ‘흡수통일’을 약속하며 통일수도의 명칭을 ‘아사달’로 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한민국 국민이 원하면 북한으로 이주시키겠다는 공약도 나왔다. 신동욱 총재가 이끄는 공화당은 북한을 추종하는 이들의 신청을 받아 북한으로 이주하도록 하는 ‘종북인사 북한 이주법’을 내걸었다. 공화당은 해방 이후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는 이념의 극한 대립이 사회 갈등과 사회 분열을 조장해 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현실을 진단했다. 이에 따라 북한을 찬양하고 추종하는 사람을 신청자에 한해 합법적이고 안전하게 북한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진보 군소정당들이 내놓은 공약 또한 유권자들을 적잖이 의아하게 만들고 있다. 녹색당은 동물권 보장을 위해 동물을 산 채로 조리하는 행위를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이 경우 산낙지나 생문어를 먹는 것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민중당은 국공립대학교 통합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서울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상부상조하는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을 되살리겠다는 가자!평화인권당은 입금 시 1%, 출금 시 10%를 보통 국민에게 기부하는 ‘국민생활 후원은행’을 만들어 국민이 서로 돕도록 하고 외국 자본을 유치해 국부를 늘리겠다고 했다. 과연 실현 가능한지 의아하게 만드는 현금 지급 약속을 앞세운 정당도 적지 않다. 150세까지 국민의 삶을 보장하겠다는 대한민국당은 시기별로 기본생활비를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0~17세 월 50만원부터 75~150세 240만원까지 생활비 지원을 약속했다. 특히 효자·효부지원금이라며, 부모·조부모 등을 모시면 부모님 계좌를 통해 한 명당 매월 333만원을 지급하겠다고도 밝혔다.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을 강조하는 트렌드와 반대로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건 당도 있다. 대한당은 “부자라도 일하지 않으면 병이 걸리고 약한 생각에 사로잡혀 간음·살인·술중독 등으로 망하게 된다”며 ‘주간 6일 근무’로 전환해 모든 국민이 나라와 민족, 가정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정반대되는 기치를 내건 정당도 있다. 남북통일당은 4차 산업혁명으로 진입하는 시대에 사람이 하는 일을 기계가 대신 하는 시대가 왔음에도 오늘날 근무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당은 직업의 차별 없이 모든 노동자를 정규직화하고 현행 노동법을 개정해 6시간 노동제를 성문화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