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격전지-서울] 이낙연-황교안, 역대 최고의 ‘정치 1번지’ 빅매치

2020-03-09     감명국·구민주 기자
21대 총선은 사상 유례없는 선거로 기록될 듯하다. 그야말로 안갯속이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코로나19 사태라는 돌발 변수가 덮쳤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등 여야는 방역 대책으로 분주한 가운데서도 공천 결과를 속속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번 총선은 전에 없이 주요 인물들의 맞대결 양상이 속출하고 있다. ‘자객 공천’이란 말이 여기저기서 회자되는 이유다. 민주당 이낙연 공동선대위원장이 서울 종로 출마를 선언하자 통합당은 황교안 대표를 이 지역에 맞붙였다.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구로을에 자리 잡자 양천을 지역구에 있던 김용태 의원을 이쪽으로 옮겨 놓았다. 통합당 나경원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동작을과 광진을에는 민주당이 이수진 전 판사와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을 투입했다. 사활을 건 여야 정면대결 구도에 이를 지켜보는 유권자들의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시사저널은 전국 주요 승부처 20곳의 현재 판세를 긴급 점검했다. 전국의 민심을 살펴보고자 각 지역의 이른바 ‘선거 1번지’로 불리는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했다. 또한 거물급 인사들의 맞대결 구도를 주목했다.  

■ 서울 종로

“내가 거물급입네 하고 지역 밑바닥 훑기에 소홀히 한다면 절대 종로에서 이길 수 없다. 그 단적인 예가 지난 2016년 총선이었다. 새누리당 오세훈 후보가 초반 여론조사에서 20%포인트 가까이 앞섰는데, 당시 오 후보가 당 선대위원장을 맡아 전국 유세를 돌았다. 지역구 관리에 방심한 것이다. 반면 초반 열세였던 민주당 정세균 후보는 열심히 종로 바닥을 누볐고, 결국 역전됐다. 종로가 정치 1번지이긴 하지만, 서울에서는 가장 시골스러운 정서가 남아 있는 곳이다. 유권자와 직접 접촉하는 발품이 필요하다. 이곳 주민들은 웬만한 거물은 거물 취급도 안 한다.”  종로에서 내리 3선(16~18대)을 한 박진 전 새누리당 의원의 종로 지역 핵심 선거참모였던 A씨의 얘기다. 그는 “두 후보가 특별히 실수하지 않고 열심히 표밭을 누빈다면 결국 승부는 4~5%포인트 안에서 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박진 대 손학규 후보 간 진검승부가 펼쳐졌던 18대 총선 때 3.6%포인트 차로 승부가 갈렸다.    
ⓒ시사저널 최준필 ·시사저널 임준선
여야 대권주자 1위가 맞붙는 지금의 종로에서 현재까지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이 비교적 여유 있게 앞서는 형국이다. 2월말 이후 실시한 네 차례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는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를 20%포인트 가까이 앞서고 있다. 이 위원장이 먼저 출마 선언을 선점하고 나선 데 반해 황 대표는 출마 결정을 쉽게 못하고 미적거린 결과인 셈이다. A씨는 “후발주자 격인 황 대표가 열심히 쫓아가면 결국 5%포인트 이내로 격차를 좁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승부를 뒤집기는 다소 버거워 보인다”고 평가했다. 인물 호감도에서 이 위원장이 앞선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소속 정당을 고려하지 않고 누구에게 더 호감을 느끼나’란 질문에서 이 위원장이 57.1%, 황 대표가 23.2%를 얻었다. 지지율 격차보다 더 벌어진 것이다.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정당 지지율 격차(민주당 37.4% 대 통합당 23.1%)보다 더 크게 벌어진 것 또한 인물 호감도 면에서 이 위원장이 앞서 있음을 증명해 준다.
지난 2016년 총선에 이어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종로 지역에서 연이어 승리한 것 또한 탄탄한 지역 기반이 보수에서 진보로 넘어갔음을 의미한다. 특히 2017년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자유한국당(통합당의 전신) 홍준표 후보보다 배가 넘는 득표율을 올렸다. 하지만 아직 선거는 한 달 이상 남았다. 후발주자 격인 황 대표의 추격 여지가 남아 있는 셈이다. 거꾸로 현재 앞서 있는 이 위원장으로선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3월4일 불거진 이 위원장 아들의 ‘코로나 실언’ 논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직 의사인 이 위원장 아들은 최근 한 유튜브 방송에 나와 코로나19에 대해 설명하면서 “코로나는 코로 나온다” 등의 말을 해 빈축을 샀고, 결국 “국민의 아픔을 헤아리는 데도 부족했으며 깊이 반성한다”는 사과를 했다. 
정치 1번지에서 중요한 것은 승패의 결과보다 과정이란 얘기도 있다. 두 후보 간 격차가 초반부터 너무 벌어지면 자칫 전체 서울 선거 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탓이다. 팽팽하게 전개되어야 하는 것이다. 유력 대선주자 간 맞대결이어서 ‘종로 대전’의 결과는 향후 대선 정국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이 위원장이나 황 대표나 이번 총선에서 패한다면 대선주자 위상이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두 사람 모두 당내 안정적 계파그룹을 갖고 있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10%포인트 이상 차이로 패하면 사실상 회복이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5%포인트 이내로 석패한다면 재기의 여지가 있다. 특히 황 대표의 경우 사실상 질 가능성이 높았던 선거에서 선전했다는 공학을 구사하면 추가 기회는 있을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 서울 동작을

이수진은 ‘선배’ 나경원을 저격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이 동작을에 출마하는 나경원 미래통합당 의원의 대항마로 어떤 후보를 내세울지는 지대한 관심사였다. 그간 민주당에선 동작을 ‘자객 공천’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와 함께 강경화 외교부 장관,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 등의 차출설이 꾸준히 돌았다. 민주당은 이들을 비롯해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 이용우 전 카카오뱅크 대표 등 10여 명의 후보들을 두고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를 수차례 돌리며 신중을 기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으로선 2014년 재보선 당시 동작을을 두고 기동민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후보와 허동준 지역위원장 간 한바탕 ‘패륜 공천’ 논란이 일어난 바 있어, 공천 악몽의 뼈아픈 기억이 깊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3월4일 민주당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이곳 후보로 당 13번째 영입 인재인 이수진 전 판사를 전략공천했다. 이로써 전직 여성 판사 간의 맞대결이 성사됐다. 이 전 판사는 ‘양승태 체제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법관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대법원 사법 농단 최대 피해자 중 한 명’으로 지난 1월27일 당에 영입됐다. 그러나 이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짓말 논란 등에 휩싸이기도 했다. 동작을은 역대 선거에서 정동영·김한길·정몽준·노회찬 등 거물급 정치인이 거쳐 간 서울의 단골 격전지로 꼽힌다. 보수·진보 후보들이 고루 당선돼 표심이 일관되지 않은 곳으로 분류되지만, 18대 총선 이후부턴 보수 정당 후보가 세 차례 연이어 당선됐다. 동작을은 주로 정치 진영보다는 후보 면면이 최종 승부를 가르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17대 총선 때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한 나 의원은 18대 중구를 거쳐 19대 때부터 동작을에 뿌리를 내렸다. 이번에 국회의원 5선, 동작을에서만 3선에 도전하는 거물급이니만큼, 민주당에선 지난해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당시 국회 파행을 주도하는 등 나 의원의 정치 행보에 대한 지역 내 비판 여론을 자극하겠다는 전략이다. 반면 나 의원이 민주당의 도전을 뿌리치고 5선에 성공한다면, 향후 대권주자로 급부상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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