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은 ‘율사대전’...법조인 177명 출마

[법조인 출신 출마자 전수 분석] 검사 출신 59명, 판사 출신 17명

2020-03-02     조해수 기자
4·15 총선에 도전하는 검사·판사·변호사 등 법조인 출신 후보자들이 모두 177명(2월27일 현재)인 것으로 나타났다. 21대 국회에서 법조인 출신 의원이 역대 최다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경찰 출신 후보자는 모두 25명으로, 이 역시 최다 당선에 대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56~57쪽 “‘힘세진’ 경찰, 역대 최다 당선자 배출하나”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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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사법농단 의혹과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이 맞물리면서 법조인 출마 러시에 불을 댕겼다. 사법농단 의혹과 검찰 개혁은 4·15 총선은 물론 21대 국회에서도 핵심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법조인 출신 후보자들은 벌써부터 “검찰 개혁, 조국(전 법무부 장관) 수호” 또는 “검찰 학살, 추미애(현 법무부 장관) 탄핵” 등을 내걸고 여야 정쟁의 최전방에 서 있다. ‘정치의 사법화-사법의 정치화’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면서 정치는 사라지고 고소·고발만 난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도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은 “국회가 패거리 정치-붕당 수준으로 전락했다”면서 “대화와 타협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아군 아니면 모두 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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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관리위원회 예비후보 등록자 2184명과 각 당의 공천 신청자-영입 인재 등을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검사 출신 59명, 판사 출신 17명, 변호사 101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모두 177명이 총선에 나서는 셈인데, 이는 경선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최종 후보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고위 당직자는 “검사나 판사 출신은 대부분 본선에 올라간다. 변호사의 경우 절반 정도 탈락한다”면서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법조인 출신들을 중용하고 있다. 역대 총선에서 법조인 당선율이 40% 이상인 것을 고려하면, 이번 총선은 18대 총선의 59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126명 중 49명이 당선돼 38.9%의 당선율을 기록했다. 19대 총선에서는 104명 중 42명(40.4%)이 국회에 입성했고, 18대 총선은 121명 중 59명(48.8%), 17대 131명 중 54명(41.2%), 16대 100명 중 41명(41%), 15대 총선에서는 104명 중 41명(39.4%)이 당선됐다.

검찰 개혁 사기 vs 국민의 명령

검사 출신 후보자의 경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1명인 반면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이 합쳐진 미래통합당은 42명으로 4배가량 많았다. 이 밖에 바른미래당·대안신당·민주평화당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생당은 2명, 무소속은 4명이다. 검사 출신 후보자들의 최대 쟁점은 당연히 ‘검찰 개혁’이다. 야당이 창, 여당이 방패를 든 형국이다. 미래통합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폐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고, 인사권을 휘둘러 검찰의 청와대 관련 수사를 방해했다면서 추미애 법무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미래통합당이 서울 송파갑에 단수 공천한 김웅 전 대검찰청 형사정책단장은 검찰 개혁을 겨누고 있는 창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김 전 단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에 반대하며 검찰복을 벗었고, 2월4일 새로운보수당 인재 영입 1호로 정계에 발을 들일 때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은 사기”라며 “사기 공화국의 최정점에 있는 사기 카르텔을 때려잡겠다”고 밝혔다. 김 전 단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중국 공안 제도를 베끼는 것이다. 개정안엔 수사 대상인 국민들의 입장은 반영돼 있지 않다. 국민들은 예전보다 나쁜 상황이 될 것”이라면서 “(또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검찰이 해야 하는데 그 수사가 막혀 있다. 법무부의 검찰 인사에서 노골적으로 나타났다. 법원에서 조국 전 장관에 대해 죄질이 불량하다고 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무혐의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검찰이 저항하는 게 지금의 상황”이라고 밝혔다.(<김웅 “국민들은 누가 국가권력 사기 치는지 다 알 것”> 기사 참조) 검찰 수사관 출신인 김태우 전 청와대 특감반원 역시 또 하나의 날카로운 창이다. 김 전 수사관은 지난해 ‘환경부 블랙리스트’ ‘유재수 감찰 무마’ ‘울산시장 선거 개입’ 등 청와대의 각종 비리 의혹을 폭로했다. 통합당은 김 전 수사관을 서울 강서을에 공천했는데, 이곳은 진성준 전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이 출마한 곳이다. 청와대 인사를 겨냥한 ‘자객 공천’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김 전 수사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비리를 폭로하는 공격수로 총선 출마를 결심했다”면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이용해 제가 아는 비리, ‘문재인 청와대’의 민낯을 국민 모두에게 알리겠다”고 밝혔다. 반면 여당에서는 소병철 전 대구고검장이라는 거물을 영입했다. 영입 인재 4호로 민주당에 입당한 소 전 고검장은 전남 순천 출신으로, 검찰총장 후보로 3번이나 추천됐다. 2013년 법무연수원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난 소 전 고검장은 전관예우 관행을 끊기 위해 대형 로펌의 영입 제안을 거절하고 변호사 개업도 하지 않고 순천대에서 후진 양성에 힘써 왔다. 고향인 순천에 전략공천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소 전 고검장은 입당 당시 “국민은 지금 검찰 개혁을 엄중하게 명령하고 있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완수를 위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경륜과 역량을 쏟아 붓겠다”고 밝혔다. 판사 출신 후보자는 민주당 8명, 통합당 9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당은 이번 총선에서 사법농단에 저항했던 판사들을 전진 배치했다. 이탄희·이수진·최기상 전 판사가 바로 그들이다. 이 중 사법농단 의혹을 최초로 알린 이탄희 전 판사는 경기 용인정에 전략공천됐다. 그러나 최근 사법농단 연루자들이 잇따라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이들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야당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존재하지도 않는 사건을 무리하게 끌고 왔고, 하명수사를 맡은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한 것”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현직 판사 출마, 사법부 독립 훼손 논란

통합당은 전두환 전 대통령 재판을 맡았던 장동혁 전 판사를 영입했다. 대전 유성갑에 출마한 장 전 판사는 추미애 장관의 공소장 비공개, 수사검사와 기소검사의 분리 등에 대해 날 선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이수진·최기상·장동혁 전 판사의 경우 사표를 제출한 직후 정계에 진출했다. 이를 두고 사법부의 독립성이 훼손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황도수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은 “판사가 법원을 퇴직하고 바로 입당-출마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면서 “판사가 공천을 받기 위해 특정 정당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정도 ‘냉각기’를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김진태 미래통합당 의원은 1월31일 ‘법관으로서 퇴직 후 2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정당의 추천으로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조국 키즈 “검찰 개혁 위해 출마”

변호사 출신은 민주당에 51명, 통합당에 45명이 포진했다. 이 밖에 민생당 2명, 국민의당 1명, 무소속 1명, 정의당 1명 등이다. 여당에서는 ‘조국 키즈’라 불리는 김남국, 김용민 변호사가 주목받고 있다. 조국백서의 필자로 참여한 김남국 변호사는 금태섭 민주당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강서갑에 공천 신청을 해 ‘조국 내전’을 촉발했다. 금 의원은 조 전 장관 임명을 비롯해 공수처 신설 등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빨간 점퍼(미래통합당 상징)를 입은 민주당 의원’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금 의원은 “조국 수호로 총선을 치를 수 없다”고 주장했고, 김남국 변호사는 결국 다른 지역에 전력공천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김남국 변호사는 “조국 프레임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면서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검찰 개혁과 사회 정의를 외친 것인데 그것을 부끄럽거나 부담스러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경기 남양주병에서는 조국 법무장관 시절 검찰개혁위원으로 활동한 김용민 변호사와 ‘조국 저격수’로 몸값을 높인 주광덕 통합당 의원 간의 혈투가 예상된다. 다만 김용민 변호사는 조 전 장관에 대해 보다 명확히 선을 긋고 있다. 김용민 변호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부에서는 (나를) ‘조국 키즈’라고 하던데 ‘키즈’라고 불릴 나이는 아니다. 검찰 개혁 관련 생각이나 철학은 비슷하거나 공유될 수 있지만 그동안의 활동은 조 전 장관과 무관하다”면서 “조국이 아닌 검찰 개혁을 위해 출마했다”고 밝혔다. 반면 주광덕 의원은 청문회 당시 조 전 장관이 자신의 집을 압수수색한 검사와 통화한 사실을 밝혀내는 등 저격수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그러나 주 의원은 조 전 장관 딸의 생활기록부 내용을 공개한 것 때문에 경찰 수사를 받고 있기도 하다. 주 의원에게 정보를 넘긴 것이 검찰이라는 의혹이 일었고, 경찰은 주 의원의 통화기록을 확보해 정보 제공자를 추적하고 있다.  

대화·타협 사라지고 고소·고발만

서울 종로에 출마한 이낙연 민주당 후보자는 지난해 9월 국무총리로 있을 당시 검찰의 조 전 장관 수사에 대해 “검찰의 정치화 배경엔 정치의 사법화가 있다”면서 “정치권이 내부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검찰에 가져가는 행태가 누적되다 보니, 검찰이 정치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지가 점점 커졌다”고 밝혔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적 과정이 생략된 채 모든 문제를 민·형사상 문제로 가져가 승패라는 법적 결과에 집착하다 보니, 정계가 법원-검찰-로펌 등 법조계에 과도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는 또다시 법조계 출신들을 중용하는 것으로 귀결되면서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법조계 출신들의 4·15 총선 출마 러시는 21대 국회에서 펼쳐질 ‘극단의 정치’에 대한 예고편에 불과할 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 고위 공직자는 “4·15 총선 이후 정국의 청사진은 이미 나와 있는 셈이다. 야당은 이미 21대 국회에서 추미애 장관 탄핵, 공수처 폐지 등을 예고했다. 울산시장 선개 거입 사건의 추이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까지 언급했다”면서 “이 모든 과정에 검사, 판사, 변호사 등 법조인들의 스킬(skill, 기술)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특히, 법조인 출신 초선 의원들은 여야 정쟁의 최전선에서 투사 역할을 맡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인재가 아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황도수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은 “정치의 사법화-사법의 정치화가 진행되면서 국민 전체의 이익 대신 오로지 자기 집단에 대한 이해만 대변하는 국회로 전락했다. ‘아군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팽배해 있다. 대화와 타협은 사라진다”면서 “이렇게 되면 결국 정당 운영이 비민주적으로 이뤄지면서 소수 지도부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이다. 이는 역사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