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라임자산운용, 기업사냥꾼 세력과 결탁 의혹

투자자들 쌈짓돈으로 ‘세력’ 지갑 채웠나

2020-02-18     송응철 기자
국내 사모펀드 1위인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거액의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은 불완전판매 의혹이 제기된 펀드 운용 담당자와 판매사 직원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다. 검찰 역시 고소인을 불러 조사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라임자산운용이 기업사냥꾼으로 알려진 이아무개 회장과 결탁한 정황이 시사저널 취재 과정에서 나와 주목된다. 이 회장의 무자본 인수합병(M&A)을 물심양면 지원하고, 인수된 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하는가 하면,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에도 관여했다는 내용의 내부 문건이 나온 것이다. 라임자산운용 측은 이 회장의 무자본 M&A로 주가가 급등락하는 과정에서 각종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막대한 투자 피해가 났는데도 정작 사태를 주도한 이 회장과 라임자산운용 일부 경영진 등은 거액을 들고 종적을 감춘 상태여서 향후 검찰 수사가 주목된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가 2019년 10월14일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열린 펀드 환매 연기 관련 기자간담회에 앞서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펀드 환매 중단 사태 ‘일파만파’

한때 동양그룹의 금융 시스템통합(SI) 계열사였던 동양네트웍스는 2013년 ‘동양 사태’로 그룹에서 분리돼 독자노선을 걸어왔다. 이곳에서 무자본 인수 의혹이 불거진 건 2017년 6월 메타헬스케어투자조합(메타헬스)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최대주주(21.2%)에 오르면서다. 메타헬스는 주요 경영진과 재무팀을 교체해 경영과 재무를 장악했다. 이후 보유 자산 매각과 회사채 발행 등으로 현금을 모집하는 한편, 사내유보금을 투자 등의 형태로 외부 유출시키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이를 두고 동양네트웍스 사내유보금으로 인수 대금을 충당하려 한다는 의혹이 내부에서 제기됐다. 라임자산운용의 이름은 동양네트웍스 자산 유출 과정에서 등장한다. 새 경영진이 사내유보금 225억원을 라임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펀드에 가입하도록 한 것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동양네트웍스 내부 기안문서와 이사회 의사록에는 이런 계획이 자세히 담겨 있다. 2018년 3월 작성된 문건에는 라임자산운용이 운용하는 ‘라임 오렌지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 10호(라임오렌지 10호)’에 가입한다고 돼 있다. 투자위험 1등급이고 환매가 불가능한 폐쇄형 상품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문건에는 허위 사실도 담겼다. 상품 중도해지가 가능하다고 명시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 라임오렌지 10호는 중도해지가 불가능한 상품으로 확인됐다. 투자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투자 리스크를 의도적으로 숨긴 것으로 분석된다. 또 문건에는 정확한 투자처가 명시돼 있지 않다. ‘메자닌증권, 채권, 주식, 파생상품 등 다양한 자산군에 직접 또는 TRS 스왑투자’라고 적혀 있는 게 전부다. 확인 결과, 동양네트웍스 투자금은 에스모(옛 넥센테크) 주식을 매입하는 데 사용됐다. 에스모는 동양네트웍스에 대한 기업사냥을 주도한 이 회장이 무자본 인수했던 회사로 알려졌다. 실제로 시사저널이 확보한 라임자산운용 ‘신탁재산 통합 명세부’ 문건에는 라임오렌지 10호에 가입된 금액 361억원이 에스모 주식 매입에 투입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회장이 동양네트웍스 사내유보금을 통해 자신이 보유한 지분을 현금화하도록 라임자산운용이 도운 셈이 된다. 라임자산운용은 다른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이 회장을 도왔다. 우선 라임자산운용은 이 회장의 무자본 인수를 지원했다. 실제 라임자산운용은 에스모가 코스닥 상장사인 디에이테크놀로지를 M&A 하는 과정에서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했다. 당시 FI 참여를 약속했던 한 투자자의 지분을 재매입하는 형태였다. 또 다른 상장사인 에스모머티리얼즈(옛 네패스신소재) 인수에는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라임자산운용은 에스모가 가입한 펀드를 통해 장외업체인 씨앤원컨설팅그룹 CB를 매입했다. 씨앤원컨설팅그룹은 CB 발행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에스모머티리얼즈 지분을 매입해 경영권을 쥐었다. 그 직후 라임자산운용이 펀드를 청산하면서 씨앤원컨설팅그룹 CB를 에스모에 넘겼다. 이 회장이 에스모와 씨앤원컨설팅그룹을 거쳐 에스모머티리얼즈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이어서 검찰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라임자산운용은 이 회장이 무자본 인수한 기업들에 자금을 댔다. 에스모에 800억원(CB·신주)을 투자했고, 이 회장이 인수한 또 다른 상장사 디에이테크놀로지와 에스모머티리얼즈에 각각 300억원(CB·BW)과 1000억원(CB)의 자금을 보냈다. 이렇게 이 회장 소유 기업에 흘러간 자금 일부는 투자 형태로 다시 라임자산운용에 돌아왔다. 이른바 ‘CB 꺾기’다. 실제 에스모가 씨앤원컨설팅그룹 CB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가입한 펀드(160억원)는 라임자산운용 투자금에서 나온 것으로 파악된다. 또 라임자산운용은 에스모머티리얼즈가 발행한 CB 매입 자금 1000억원 중 756억원에 대해서도 다시 펀드를 설정, 이 회사 경영권 매매 등에 활용했다. 라임자산운용은 이런 ‘CB 꺾기’를 통해 외형 확장은 물론 수익률 ‘화장’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임 사태 주도한 세력, 거액 들고 잠적

이번 라임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투자자들이다. 라임자산운용의 투자종목 40개 사의 시가총액은 6조3280억원. 이 중 2조4000억원 이상이 최근 증발했기 때문이다. 투자 대상이 된 기업들의 피해도 막심하다. 대부분 주가가 곤두박질했고, 주식거래가 정지된 상장사도 다수 발생했다. 당장 동양네트웍스만 해도 지난해 대비 주가가 약 90% 감소했다. 이 때문에 동양네트웍스 직원들은 현재 퇴직금조차 받지 못할 위기에 놓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정작 사태의 중심에 있는 이 회장과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은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잠적했다. 거액의 도피자금을 챙겨서다. 이 회장은 지난해 중순 자신이 보유한 동양네트웍스 지분을 담보로 한 저축은행에서 수백억원대 대출을 받은 뒤 종적을 감췄고, 이 전 부사장도 라임자산운용 자금 100억원을 인출해 도피 행각을 벌이고 있다. 이들 외에 사건에 주도적으로 관여한 주변인들 모두 구속 직전 행방이 묘연해진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