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클릭 상업주의, 혐오 확산의 주범”
[인터뷰]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정치권과 언론, 막말과 혐오의 악순환 핵심 고리”
2019-08-19 김종일 기자
이른바 ‘관종의 시대’에 혐오가 가장 잘 팔리는 화폐가 됐다는 분석이 있다. 최근 온라인에서 포착할 수 있는 혐오의 생산과 유통, 확산과 재생산 고리를 ‘혐오 비즈니스’라고 부를 수 있을까.
“최근 혐오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케이스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혐오를 통해 조회 수를 늘려 돈을 벌려는 시도들이 포착되고 있다. 막말과 망언 등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끌어올리려는 경향도 존재한다. ‘혐오 비즈니스’라는 말을 쓰려니 좀 서글퍼진다.”혐오 비즈니스는 ‘스마트폰 시대’의 산물일까.
“혐오의 역사는 오래됐다. 종교·인종 혐오 등 인류 역사는 혐오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 시대에 혐오가 문제가 되는 것은 누구나 혐오 표현을 생산·유통해 확산시킬 수 있는, 특히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른 ‘스마트폰 시대’이기 때문이다. 혐오 발언은 긍정적 이야기보다 훨씬 빨리 퍼지는 속성을 갖고 있다.”혐오 현상이 심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통찰력 있는 칼럼니스트인 판카지 미슈라는 저서 《분노의 시대》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지상의 모든 인간이 공통된 현재를 갖게 됐다’고 했다. 자본주의와 기술의 발전은 서로 다른 과거를 지닌 개인을 공통된 현재로 내몰았다. 그런데 사회는 점점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기술혁명 등으로 미래는 더욱 불확실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와 함께 굴욕감을 느끼게 됐다. 혐오는 굴욕감과 관련이 많다고 본다. 굴욕감을 가진 사람들이 희생양을 찾는 것이 혐오의 강력한 기제다. ‘공통된 현재’를 가진 개인들은 비교 능력이 향상된다. 이런 것들이 이민자와 여성, 성 소수자, 장애인을 혐오하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 요인이다. 혐오는 부족화(化)된 인터넷 종족에 의해 확산된다. 이 부족화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부정적 연대’의 한 형태다. 이 굴욕감의 연대가 혐오의 저수지가 되고 있다.”혐오 비즈니스는 왜 이렇게 확산되고 있을까.
“특이한 점은 혐오 문화를 극복해야 할 한국 사회의 주요 세력인 정치권과 종교 세력, 언론 등이 각기 다른 이유로 오히려 혐오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막말과 혐오 표현을 일삼는 것이나 교회가 동성애 혐오 확산에 앞장서고 있는 모습이 바로 그렇다. 혐오 비즈니스 모델은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자에 대한 혐오를 선거전략으로 채택했다. 언론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막말과 혐오 문화를 무책임하게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언론이 혐오 비즈니스의 한 축이라는 지적인가.
“언론의 클릭 상업주의라 표현하고 싶다. 상당수 한국 언론이 이를 공식화하고 혐오를 확산하는 숙주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성 언론들은 앞서 밝힌 부정적 연대를 통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유혹을 느끼고 있다.”구체적 사례가 있을까.
“언론이 정치권의 막말을 소비하는 것을 보면 그 메커니즘을 잘 포착할 수 있다. 지금 언론은 정치인들의 막말을 더 많이, 더 빠르게 보도하면서 이른바 막말과 혐오의 악순환 고리를 만들어냈다. 흔히 정치인들은 ‘악플보다 무플이 더 나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악플이라도 유도할 수 있는 막말이나 혐오 발언을 내놓기 쉬운데, 지금 우리 언론들은 이를 빠르게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자극적인 막말 발언을 꾸준히 보도함으로써 오히려 정치권의 막말을 유도하고 부추기는 모습이다. 언론사가 막말 그 자체를 확산하는 것뿐 아니라 ‘대결적 프레임’으로 자극적 편집을 하는 것도 문제다. 가령 국회에서 논의되는 건강한 대안적 입법은 보도가 안 된다. 반면 여야 핵심 정치인들의 발언은 매일 대결 프레임으로 확 키워 보도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국민들은 협치를 요구하지만 오히려 언론은 대결을 부추기고 있다. 결국 여야 갈등과 발언들은 대결적으로 소비되고 막말이 더해져 자극적으로 소비된다. 그렇게 정치 혐오는 확대 재생산된다.”언론은 왜 혐오 비즈니스의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한국 언론은 이미 공론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자체 수익 모델보다는 포털사이트에 수익 모델 등을 의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클릭 수가 언론사 수익의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 영국 옥스퍼드대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발간하는 ‘디지털 뉴스리포트 2017 한국’에 따르면 ‘주로 이용하는 디지털 뉴스 통로’를 고르라는 설문에 한국 응답자의 4%만 언론사 홈페이지를 꼽았다. 한국처럼 온라인 뉴스 소비형태가 언론사 홈페이지가 아니라 포털사이트나 소셜 미디어에 압도적으로 편중된 사회에서는 이런 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이런 악순환은 어떻게 근절할 수 있을까.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분노은행’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국민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분노를 예금했고, 정당은 그걸 잘 관리하고 키워 보답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개념이다. 근데 이 은행이 부도가 났다. 대부분 정당들의 ‘분노은행’이 부실은행이 됐다. 기득권 엘리트 집단은 대의 기능을 상실했고 변화하는 사회에 제대로 적응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사회적·감정적 홈리스(노숙인) 상태에 이르게 됐다. 이렇게 되면 개인들은 개별적 분노와 혐오에 매달리게 된다. 언론은 자극적 프레임에만 의존하다 보니 공론장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진영 간 진흙탕 싸움판이 됐다. 정당과 언론이 제 기능을 회복해야 악순환이 끊어질 텐데, 제가 거꾸로 묻고 싶다. 이게 가능할까.”그럼에도 대안을 찾아보자면.
“공감 능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가 숙제다. ‘악의 평범성’이란 평범한 사람이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결여될 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혐오를 저지르는 이들이 상대방에 대해 생각할 능력을 갖게 된다면 지금과는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아울러 유튜브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새로운 개인에 대한 연구와 토론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도,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는 변화된 개인에 기초한다. 혐오는 인류의 파국을 초래할 수도 있다. 포퓰리즘이 나타난 이유도, 트럼프가 나온 것도 다 그런 전조다. 이게 전 세계적으로 엄청 위험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혐오는 결국 정치를, 민주주의를, 언론을 복원해야 해결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