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로 영원히 진실 묻은 유력 용의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부산 중소기업 사장 부부 실종 사건

2019-05-20     정락인 객원기자
부산에서 창틀 제조업체를 운영하던 최낙율 사장(57)과 아내 조영숙씨(52)는 부부 금실이 좋았다. 최 사장은 신규 사업에도 의욕적으로 투자하던 중소기업가였다. 그런데 2007년 4월19일 최 사장 부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날 오후 1시59분 최 사장은 동업자인 한아무개씨(42)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씨는 “최 사장이 서류를 전달해 달라는 연락이 왔고, 번화가인 중구 남포동의 차 안에서 만나 서류를 건네줬다”고 말했다. 이것이 최 사장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후 한씨는 전 직장 동료이자 내연녀인 심아무개씨(29)를 만나 시간을 보낸 뒤 회사로 돌아왔다. 오후 7시46분쯤 한씨는 최 사장의 전화를 받는다. “생산기계를 점검하고 아내 조영숙씨에게 회계장부를 전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오후 8시19분 최 사장의 지시대로 한씨는 조씨에게 전화를 걸어 “사장님께서 장부를 전달해 달라고 했다. 지금 준비가 다 됐으니 공장으로 오셔야겠다”고 말했다. 한창 저녁을 준비하던 조씨는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오후 9시쯤 조씨가 공장에 도착하자 한씨는 준비된 회계장부를 전달하고 다시 공장에 들어왔다. 조씨 또한 한씨를 만난 뒤 사라졌다. 이렇게 부부는 같은 날 약간의 시차를 두고 종적을 감췄다. 이후 휴대전화 전원도 꺼졌다. 
ⓒ 일러스트 오상민

같은 날에 홀연히 사라진 부부

최낙율 사장 부부의 아들 형제는 부모와 떨어져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부모가 갑자기 연락이 끊기자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렸다. 최 사장과 아내 조영숙씨의 형제들도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두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마지막 목격자인 한씨 외에는 누구도 최 사장 부부를 본 사람은 없었다. 실종 나흘째인 4월23일 가족들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은 단순가출과 납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 최 사장의 가족들은 “절대 단순가출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조씨는 실종 얼마 전에 갑상선 수술을 받아 몸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약을 계속 복용하지 않으면 몸에 이상이 와서 오랫동안 집을 비울 처지가 아니었다고 한다.  최 사장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다. 경찰은 두 사람이 연락을 끊고 가출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부부가 스스로 잠적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그런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듯’ 실종신고가 접수된 날 최 사장의 휴대전화가 발견됐다. 그곳은 다름 아닌 최 사장이 거주하는 사상구 주례동의 한 아파트단지 화단이었다. 최 사장이 실종 당일 잠깐 아파트단지에 들어왔다가 여기서 변을 당한 것인지, 아니면 범인이 수사에 혼란을 주기 위해 일부러 갖다 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경찰은 우선 마지막 목격자인 한씨를 불러 당일 행적을 조사했다. 한씨의 통화내역에서 오후 5시55분 최 사장과 전화통화한 기록이 나왔다. 이때는 두 사람이 만난 이후였고, 한씨가 공장에 있을 때였다. 경찰은 통화기록을 근거로 한씨가 최 사장 실종과는 무관하다고 판단했다.  조씨 또한 한씨와 만난 게 마지막이었다. 같은 회사 직원은 “공장 마당에서 사모님을 봤다”며 한씨의 증언을 뒷받침해 줬다. 이로써 한씨는 조씨의 실종에서도 용의선상에서 벗어났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를 통해 조씨가 실종 당일 지하철을 타고 네 정거장 떨어진 공장 근처 역으로 간 사실을 확인했다. 한씨는 두 사람을 만날 당시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는 모습은 없었고 평상시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고 증언했다.  4월26일 경찰은 시민의 제보를 기대하며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최 사장 부부의 사진이 실린 전단지를 제작해 배포했다. 언론에서도 부부의 실종을 연이어 보도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제보는 없었다.  실종신고 나흘 뒤 최 사장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실종된 아내 조씨였고, 발신지는 울산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이었다. 이때 최 사장의 전화는 경찰이 가지고 있었는데, 전화를 건 여성은 힘없는 목소리로 “남편을 바꿔 달라”고 말했다. 경찰이 신분을 밝히자 “다시 전화하겠다”는 말을 남긴 채 끊었다. 
2007년 4월19일 돌연 실종된 최낙율·조영숙씨 부부 ⓒ 실종 전단지 캡처

재수사에서 드러난 충격적 사실

사흘 뒤, 조씨의 친구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조씨였다. 조씨는 “나는 부처님과 함께할 것이니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동시에 휴대전화 전원도 꺼졌다. 발신지는 경주였다.  이후 조씨의 전화는 6일 뒤 대구에서 켜져 남편에게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란 문자를 보내고 두 아들에게 차례로 전화한 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끊었다. 조씨의 전화는 울산, 경주, 대구 등지로 옮겨 다니면서 잠시 켜졌다가 꺼지는 식이었다.  실종 11일째, 최 사장의 승용차가 경주에서 발견됐다. 경찰이 차량 안에서 지문을 채취하려고 했으나 누군가 깨끗이 닦아낸 뒤였다. 여기까지였다. 경찰 수사는 더 이상 진척이 없었고, 최 사장 부부의 실종 수사는 제자리걸음만 계속했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이 사건은 ‘장기미제’로 분류돼 경찰서 캐비닛 안에 들어가 있었다. 2012년 부산지방경찰청에 미제사건전담팀이 신설되면서 수사는 다시 활기를 띠었다. 경찰은 사건 서류를 꺼내 원점에서 재검토했다.  마지막 목격자인 한씨가 가장 의심되는 인물이었다. 경찰은 한씨의 알리바이를 진술했던 주변 인물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했다. 그러다 한씨의 내연녀인 심씨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그는 최 사장 부부 실종 당일 한씨와 오후 시간을 보냈다고 진술했던 인물이다. 경찰이 심씨의 통화내역을 조사해 보니 최 사장과 한씨가 통화하기 직전 최낙율 사장 부부가 사는 아파트단지 근처에서 친구와 통화한 기록이 있었다.  초동수사 때 심씨는 “한씨와 헤어진 후 주례동에서 남자들과 미팅을 했고, 함께 호프집에서 술을 마셨다”고 진술했다. 당시 경찰은 이 말을 그대로 믿고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재수사에 나선 수사팀은 심씨를 불러 당일 행적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당시 미팅했던 남자들은 누구이며, 어느 호프집에서 안주는 뭘 시켰고, 술은 얼마나 마셨는지 구체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당황해하던 심씨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경찰은 이 틈새를 집중 공략했다. 결국 심씨는 눈물을 흘리며 당시 진술이 거짓이었다고 실토했다. 거짓말을 한 이유에 대해 “한씨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며 “그와 성관계를 했고 나체 사진을 갖고 있었는데 그걸 가지고 협박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철옹성 같았던 한씨의 알리바이가 처음으로 깨지는 순간이었다. 심씨는 당일 한씨의 행적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다. 심씨를 만나 시간을 보내던 한씨는 “약속이 있으니 이따가 다시 보자”며 자리를 떴다. 얼마 후 돌아온 그는 대뜸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를 건네줬고, 시간을 정해 준 뒤 주례동의 한 아파트에 가서 자신에게 전화를 하라고 시켰다.  한씨가 심씨에게 건넨 휴대전화의 주인은 최 사장이었다. 또 한씨가 전화를 걸라고 한 아파트단지는 최 사장 부부가 사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한씨가 “최 사장과 통화했다”며 경찰에 내밀었던 알리바이는 조작된 것이었다.  경찰은 조영숙씨 실종과 관련해 한씨의 알리바이를 진술했던 회사 직원도 불렀다. 해당 직원은 사건 당일 조씨를 공장 마당에서 봤다고 말했다. 경찰이 공장을 찾아가서 살펴봤더니 안에서 밖을 보기가 힘든 구조였다. 직원에게 조씨를 봤다는 지점을 물었더니 어딘지 가리키지 못했다. 그때서야 직원은 “직접 본 게 아니라 한씨가 공장 마당에서 만났다고 해서 그렇게 생각했다”며 말을 바꿨다. 실종 당일 조씨는 공장으로 오지 않았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씨의 알리바이가 또 깨졌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최 사장은 실종 직전 한씨가 가지고 있던 회사 지분 40% 정도를 사들였다. 그런데 최 사장 실종 이후 한씨가 위임을 받은 것처럼 꾸며 지분의 일부를 팔아치운 후 2억원을 챙긴 것이 드러났다.  경찰은 조씨 휴대전화로 친구와 올케, 아들에게 전화한 것이 조씨가 아니라 제3자라는 것도 확인했다. 한씨는 다시 최 사장 부부의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경찰은 한씨를 불러 조사를 시작했다. 그는 “이미 다 끝난 것을 왜 다시 또 하느냐”며 노골적으로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경찰의 집중 추궁에도 “자신은 전혀 관계없다”며 최대한 말을 아꼈다. 경찰은 한씨에게 “그렇게 떳떳하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한씨도 흔쾌히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씨가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기로 한 5월15일, 경찰은 모든 수사서류를 갖춰놓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최 사장 부부 실종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넘쳤다. 그러나 이날 한씨는 부산경찰청에 나오지 않고 잠적했다.  얼마 뒤 경찰은 뜻밖의 상황과 마주한다. 한씨가 5월17일 오후 10시쯤 경남 거제시 연초면의 한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인근 농장 주인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차량 안에서는 착화탄을 피운 흔적이 있었고 유서도 나왔다.  유력한 용의자인 한씨가 자살하면서 최 사장 부부의 실종도 미해결로 남고 말았다. 이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죽었다면 시신은 어디에 있는지 영원히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남은 가족들에게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다.    

끝까지 양심 버린 한씨의 죽음

실종된 최낙율·조영숙씨 부부가 살아 있을 확률은 거의 없다. 이들이 스스로 잠적하지 않은 것도 분명하다. 여러 정황상 부부는 누군가에게 살해됐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드러난 근거와 정황으로 보면 범인은 한씨가 유력하다. 물론 그가 최 사장 부부를 살해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여기서 한씨가 자살한 시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한씨는 최 사장 부부 실종의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또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했던 증인들이 진술을 번복하면서 막다른 곳에 몰린 상태였다. 더욱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는 대신 잠적했다. 이는 그의 자살이 최 사장 부부의 실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경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심리적 압박을 받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씨는 최 사장 부부 실종과 관련해 한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는 죽으면서 차 안 여기저기에 유서를 남겼다. 승용차 앞유리에는 ‘세상이 싫어 너무 힘들어서 먼저 갑니다. 경찰에 신고해 주세요. 고맙습니다’라고 적힌 메모지가 있었다.  다른 곳에 남긴 메모는 주식 투자에 실패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했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빚까지 얻게 됐다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자살했다고 하지 말고 뇌출혈로 병사했다고 해 주거라’라고 덧붙였다. 한씨는 자신의 죽음이 자살로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끝까지 진실을 묻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