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루 든 투사’ 변신한 나경원, ‘제2의 박근혜’ 노렸나

[유창선의 시시비비] 한국 정치를 다시 이념대결과 몸싸움의 시대로 후퇴시켜 나경원 원내대표가 문제인가, 우리 정치가 문제인가

2019-05-14     유창선 시사평론가
요 근래에 언론과 SNS에 가장 많이 실린 사진은 ‘빠루를 든 나경원’이었을 것이다. 잠긴 문을 열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측이 준비한 것을 뺏은 것이라는 게 자유한국당의 설명이었지만, 이 한 장의 사진은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전투성을 알리는 소재가 되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한국당이 빠루(쇠지렛대)를 취득한 경위보다는, 나 원내대표가 빠루를 치켜들고 있는 장면에 주목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한국당의 패스트트랙 저지 투쟁을 선두에서 이끌었던 것이 나 원내대표였기 때문이다.  패스트트랙 저지 투쟁에서 나 원내대표가 보여준 결기를 작심한 투쟁 모습은 판사 출신의 정치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전투적인 것이었다. 그는 민주당의 법안 접수를 막기 위해 의원·보좌진들과 함께 인간 바리케이드를 쳤다. 그런가 하면 회의장 앞에서 동료 의원들과 스크럼을 짜고 드러누웠다. 그런 육탄투쟁을 벌이면서 나 원내대표가 선창했던 구호는 “독재 타도, 헌법 수호”였다. 공수처법·선거법 등을 막는 일이 독재를 타도하고 헌법을 수호하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잘 납득되지 않지만, 야당의 투쟁은 논리보다 정치적 목표가 우선하는 것임을 나 원내대표는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5월4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3차 장외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투쟁일변도 노선, 중도층 이반 가져와 

하지만 한국 정치에서 투쟁의 시대는 갔다. 물론 보수야당의 투쟁일변도 노선에 박수를 보내는 강성 보수층의 결집은 가능하겠지만, 그들의 결집과 응원만으로 총선 승리나 집권을 도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보수든 진보든, 야당의 투쟁일변도 노선은 지지층의 결집 이상으로 중도층의 이반을 가져오기에 큰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장애가 된다. 설혹 눈앞의 전투에서는 이긴다 하더라도, 장차 치를 전쟁에서는 패할 수밖에 없는 전략이다. 그런데 나 원내대표가 이끈 패스트트랙 저지 투쟁은 보수야당의 시계를 과거 시절로 돌려놓고 말았다.  팔짱을 끼고 국회 바닥에 드러눕고, 국회 사무처 팩스를 부숴버리는 야당은 우리의 미래를 논할 자격이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 원내대표가 한국 보수정당 전가의 보도인 색깔론을 사용하는 데조차 주저함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를 북한과 연결시키는 발언들을 반복적으로 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한국당 해산 청와대 국민청원은) 북한에서 하라는 대로 대한민국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도대체 북한입니까.” 나 원내대표가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한 색깔론은 정치인으로서 그의 역사인식이 낡은 구시대적 보수정치인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강경한 투사의 모습으로 자신을 각인시킨 데는 개인적인 야망도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대여 관계에서 강한 리더십과 힘을 보여 ‘제2의 박근혜’가 되겠다는 야심이 그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박근혜 한나라당(한국당의 전신) 대표가 열린우리당(민주당의 전신)이 추진했던 4대 입법을 강경한 투쟁을 통해 저지함으로써 당에서의 리더십을 인정받았듯이, 나 원내대표 또한 한국당의 투쟁 선봉에 서서 보수층 결집을 이뤄내 보수정치의 리더로 도약하려는 꿈을 갖고 있을 법하다. 이번 투쟁 과정에서 나 원내대표가 합리적인 정치인의 모습보다는 선명한 투쟁을 통해 전통적 보수층의 정서에 부합하는 강경 노선을 택한 이유를 거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한 이후 좀처럼 정치적 도약의 기회를 잡지 못했던 나 원내대표로서는 패스트트랙 저지 투쟁이 그 기회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경원 원내대표의 이러한 개인적 야망이 뜻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해 보인다. 우선 패스트트랙 관련 법안들에 대한 무조건적 저지 투쟁이 앞으로도 유효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4월26일 국회 의안과 앞에서 ‘빠루’를 들고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정치, 이념대결과 몸싸움으로 후퇴

한국당으로서도 선거제도 개편 등에 대해 결국 협상에 나서 실리를 도모해야 할 사정을 예상할 수 있다. 투쟁과 협상을 오가면서 성과를 거두는 정치적 능력을 나 원내대표가 보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나 원내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와는 정치적 기반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박 전 대표의 경우는 보수정치의 리더로 부상하는 데 있어 오랜 콘크리트 지지층이 정치적 힘이 됐지만, 나 원내대표에게는 그러한 열성적 마니아층이 없다. 그런 여건에서 박 전 대표와 같은 큰 그림을 그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패스트트랙 저지 투쟁 과정에서 나 원내대표는 극단적 보수층의 지지를 얻었겠지만, 그 대신 합리적 보수층과 중도층에게는 과거의 보수 정치인과 다를 것 없는 또 한 명의 정치인으로 간주되었을지 모른다. 미국 보수주의의 부활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받는 러셀 커크는 1953년 발간된 《보수의 정신(The Conservative Mind)》에서 개인이 독단적 이념에 빠질 위험을 경고한다. 그러면서 “보수주의자들은 광신적 이념의 독단이 아니라 정치의 일반적 규칙을 신뢰한다”고 강조한다. 1800년대 존 스튜어트 밀은 “대부분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보수주의자라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지만, 커크에게 보수주의는 명예로울 뿐 아니라 지성적으로도 존경받을 미국 전통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나 원내대표가 진두지휘한 한국당은 이념적 독단에 빠진 채 법과 제도라는 일반적 규칙을 파괴하는 등 명예로울 것도, 존경받을 것도 없었다. 한국 정치를 다시 이념대결과 몸싸움의 시대로 후퇴시킨 부끄러운 책임만이 남을 뿐이다. 패스트트랙 저지 투쟁 때 국회 바닥에 드러누운 동료 의원들을 보면서 “이제야 야당이 되었다”고 한 한국당 의원의 말이 떠오른다. 그렇게 드러누워 야당이 되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과거의 부정적 유산을 그대로 계승하는 야당은 백년 야당일 뿐 정권교체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지난 대선 패배 이후 한국당이 와신상담하며 내걸었던 혁신의 기치는 어디로 갔는지, 바닥에 누워버린 의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음을 생각하게 된다. 나 원내대표가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공을 세운 것인지, 아니면 한국당의 변화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과오를 범한 것인지, 머지않아 채점표는 나오게 될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 원내대표가 가는 길이 그가 정치를 시작했던 한나라당 시절의 것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 원내대표가 정치를 시작한 지도 15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그 시대의 정치를 반복하고 있다면, 그가 문제인가 우리 정치가 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