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에 집착하는 비호감 외모의 살인자

[정락인의 사건추적] 동해 학습지 여교사 살인 사건 범인이 남긴 단서 5가지…범인은 피해자 가까이에 있다

2019-04-01     정락인 객원기자
강원도 동해시 망상동 심곡 약천마을은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곳이다.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약천 남구만 선생(1629~1711)은 1689년 희빈 장씨 소생인 균(均)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다 약천마을로 유배됐다.  그는 이곳에서 마을 주민들에게 글을 가르쳤고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로 시작되는 유명한 시조를 남겼다. 이 마을에는 남구만 선생의 사당인 약천사가 있고, 마당에는 선생의 호를 딴 ‘약천(藥泉)’이라는 우물이 있다.  지난 2006년 3월14일 오전 약천마을은 봄맞이 영농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웃 마을에 사는 A씨는 처가인 약천마을을 찾아 퇴비 살포작업을 도왔다. 그는 일하다 목이 마르자 밭 근처에 있는 우물로 향했다. 그런데 물줄기가 시원치 않았다. 평소 졸졸졸 흐르던 우물이 찔끔찔끔 나왔다. A씨가 물이 나오는 곳에 바가지를 대자 우물물에서는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기다란 머리카락이 딸려 나왔다. 
ⓒ 일러스트 정재환

우물 속에서 발견된 여성의 시신

A씨는 이물질이 입구를 막았다고 생각해 우물을 덮고 있던 뚜껑을 열었다. 그 순간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우물 안에는 알몸 상태의 여성 시신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엎드려 웅크린 자세로 등을 보이며 물 위에 둥둥 떠 있었고, 까만 머리카락은 시신의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었다. 체구마저 작아 마치 인형이 연상됐다. 우물의 깊이는 60여cm에 불과해 사람이 빠져 숨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A씨는 주민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고, 통장을 통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과학수사반이 시신 감식 후 신원을 조회한 결과 동해시에 거주하는 학습지 교사 김아무개씨(여·24)로 확인됐다. 그는 이미 실종 신고가 접수된 상태였다.   우물에서 시신이 발견되자 마을 주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공포영화에 나올 법한 광경에 주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우물은 수백 년 전부터 내려왔다. 나병 환자 등이 이 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신비한 우물’로도 소문이 났다. 물이 좋다고 알려지자 시내 몇몇 음식점에서도 떠다 음식 조리에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물 안에 시신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른 채 한동안 이 물을 마셨다는 것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경찰은 우물에서 발견된 김씨의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보내 부검을 의뢰했다. 사망원인은 목졸림에 의한 경부압박 질식사였다. 시신에서 눈에 띄는 상처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한쪽 귀걸이가 외력에 의해 떨어져 나가면서 긁힌 자국이 있었다. 피해자의 음부 주변에 경미한 손상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정액이나 체액은 검출되지 않았다. 위에서는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이 나왔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차리고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먼저 김씨의 실종 당일 행적을 탐문했다. 동해시에 살던 김씨는 3월8일 오후 9시30분쯤 동해시 부곡동의 한 아파트에서 학습지 가정방문 교육을 마친 뒤 귀가하다가 행방불명됐다. 김씨의 어머니는 딸이 귀가하지 않자 이튿날인 3월9일 오전 경찰에 실종신고를 접수했다. 평소 외박하거나 연락이 끊기는 일이 없었고, 직장과 집을 오가던 딸이었다.  경찰은 수색활동을 벌여 이날 오후 10시쯤 동해체육관 앞 주차장 수돗가에서 실종 당일까지 타고 다니던 김씨의 마티즈 승용차를 발견했다. 차 안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는데 누군가 뒤진 흔적이 역력했다. 뒷좌석에서는 실종 당일 김씨가 입었던 속옷과 위아래 옷가지들이 남아 있었다. 일부 없어진 물건이 있었는데 휴대전화와 왼쪽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 등이었다.  그리고 실종된 지 일주일 후인 3월14일 약 6km 떨어진 약천마을 우물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시신의 위에서 나온 음식물은 마지막 수업을 한 가정에서 대접받은 과일(키위)이었다. 보통 사람의 위에서 음식물이 소화되는 시간은 4~8시간 정도다. 이로써 김씨가 실종 당일 살해된 것이 확실해졌다.  경찰은 김씨의 승용차에서 범인과 관련한 증거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승용차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 걸레로 차량 안과 밖을 닦아내 지문이나 DNA 등이 검출되지 않았던 것이다. 범인은 상당히 지능적이고 주도면밀하게 움직였다. 피해자인 김씨가 마지막으로 들른 부곡동의 가정집은 자택과 200m 거리로 가까웠다. 시신이 발견된 약천마을과 승용차가 발견된 동해체육관의 중간 지점이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범인이 가정방문 교육을 마치고 차에 타려던 김씨를 납치한 후 성폭행하려다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후 범인은 김씨의 차량을 운전해 북쪽으로 4km 정도를 이동한 후 시신을 우물에 유기했다. 당시 약천마을에는 산불 감시용 폐쇄회로(CC)TV 2대가 있었다. 김씨의 승용차가 우물을 지나는 장면이 포착됐지만 화질이 흐려 사람 식별은 불가능했다. 목격자도 없었다.  범인은 다시 남쪽으로 7.4km를 달려 동해체육관으로 간 후 수돗가에서 차량 내·외부를 걸레로 닦아내고는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용의자를 특정하기 위해 김씨 주변 인물과 마을주민, 동종 전과자 등을 상대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사건과 관련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후 경찰의 수사는 계속 제자리를 맴돌았다. 유력한 증거를 찾아내지도 용의자를 특정하지도 못했다. 
2006년 3월 20대 학습지 여교사가 숨진 채 발견된 동해시의 한 우물 ⓒ SBS캡쳐

잇따라 발생한 연쇄 납치 미수 사건

그렇게 약 3개월이 흐른 같은 해 6월1일 동해시 부곡동에서 부녀자 납치 미수 사건이 발생한다. 학습지 교사 김씨가 납치·피살된 인근지역이었다. 이날 밤 부곡동의 한 아파트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타려던 B씨(여·40대)는 갑자기 나타난 괴한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후 납치됐다. 범인은 승용차 안에서 B씨를 성폭행하려고 했으나 격렬하게 반항하자 목을 졸랐다. B씨가 축 늘어진 채 숨을 쉬지 않자 죽었다고 판단하고 이동 중 도로변에 버리고 달아났다. B씨는 기적처럼 의식을 되찾고 살아 돌아왔다.  3주 후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6월23일 저녁 C씨(여·40대)는 남편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 후 승용차를 타고 거주지 아파트에 도착했다. 남편이 먼저 집으로 올라간 후 C씨는 승용차 안에서 친정집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이때 괴한이 차 문을 열고 들어와 조수석에 타더니 C씨를 마구 폭행했다. 승용차를 끌고 가려다 C씨가 비명을 지르며 저항하자 인근 골목으로 쏜살같이 달아났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군인이 “사람 살려”라는 비명을 듣고 쫓아갔으나 범인을 잡지는 못했다.  석 달 사이 동해시 부곡동에서만 비슷한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던 것이다. 세 사건은 여러 공통점이 있었다. 먼저 비슷한 시기(2006년 3월, 6월)에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장소가 반경 150m 지점이다. 저녁시간(오후 8~10시) 주택가 인근에서 혼자 승용차에 타거나 내리려던 여성을 공격했다. 또 체구가 작고 가냘픈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흉기를 사용하지 않고 힘으로 여성을 제압하려고 했다. 또 한 가지는 피해자들이 모두 빨간색 승용차를 타고 있었다.  이처럼 시간, 장소, 범행 대상, 범행수법 등이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B씨의 경우 버려진 장소가 공교롭게도 학습지 교사 김씨가 숨진 채 발견된 약천마을 우물 방면이었다. 누가 봐도 동일범의 소행을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경찰은 학습지 교사 피살 사건과 2건의 납치 미수 사건을 별도의 사건으로 판단했다. 부곡동에서 일어났던 사건 모두 범인을 특정하지 못해 지금까지 미제로 남았다.   그나마 B씨의 차량 룸미러에서 용의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카락 한 개를 확보해 사건 해결의 실낱같은 불씨를 살렸다. 몸싸움 과정에서 범인의 머리가 룸미러에 부딪치면서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차량에 탔던 B씨의 가족이나 지인 등의 것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이 머리카락의 주인이 범인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경찰은 피해자들의 주변 인물과 동종 전과자 등을 대상으로 대조작업을 벌였으나 일치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약천마을 주민들은 아직도 13년 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물 속에는 죽은 처녀의 원혼이 여전히 떠돌고 있다. 늦둥이 외동딸을 잃은 김 교사의 부모는 하루속히 범인이 잡히기를 고대하며 한 많은 삶을 살고 있다. 현재 이 사건은 강원지방경찰청 강력계 미제사건 전담팀에서 맡고 있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 범인은 피해자들과 가까운 곳에 있다. 

사건이 일어난 지역, 시간, 시신 유기장소 등을 보면 범인은 피해자들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특히 시신을 유기한 약천마을은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다. 평소 이곳에 우물이 있다는 것을 알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곳이다.  비슷한 사건이 석 달 사이에 그것도 동해시 부곡동에서 잇따라 일어났다는 것도 범인이 이 지역 사람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당시 상황을 보면 범인은 피해자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었던 정황이 나타난다. 범인은 범행 전 피해자를 물색한 후 오랫동안 지켜보다가 가장 적기라고 판단될 때 행동에 나선 것이다. 

2. 범인은 완전범죄를 노렸다. 

범인은 대범하게 범행에 나섰고, 치밀하게 움직였다. 학습지 교사 김씨를 살해한 범인은 납치장소보다 북쪽으로 가서 시신을 유기하고,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차량을 버렸다. 그것도 차량을 장기간 주차해도 의심받지 않는 체육관 밖 주차장을 선택했다. 그곳 수돗가에서 차량 내·외부를 깨끗이 닦아내며 증거를 인멸했다.   범인은 또 김씨를 살해한 후 한동안 휴대전화를 들고 다녔다. 며칠간 인접도시를 오가며 휴대전화 전원을 켰다 끄기를 반복했다. 김씨가 살아서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위장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경찰도 처음에는 김씨가 살아 있는 것으로 착각했을 정도다. 

3. 범인은 특이한 욕구와 심리 소유자다. 

범인이 노렸던 여성들의 차량 색상은 공교롭게도 모두 빨간색이었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 사건이 일어난 지역에 빨간색 승용차를 소유한 여성이 확률적으로 많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빨간색 승용차를 탄 여성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범죄심리학자들은 범인이 빨간색에 대한 집착심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우물에 시신을 유기한 것도 의아하다. 살인 사건의 경우 범인은 시신을 유기할 때 아주 은밀하고 깊숙한 곳을 선택한다. 그런데 이 사건의 범인은 시신이 발견되기 쉬운 마을 공용 우물에 유기했다. 우물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바로 옆에 있다.  

4. 범인은 비호감 외모에 힘을 쓰는 일에 종사한다. 

범인은 키 150cm 전후의 여성만을 노렸다. 상대적으로 키나 덩치가 큰 여성에게 부담을 느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자신의 체구가 작아 단번에 상대를 제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피해자들에게 접근하는 방식도 말을 걸거나 유인하는 것이 아닌 갑자기 나타나 무차별 폭행했다. 자신의 외모가 상대에게 호감을 주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범인은 또 흉기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주먹이나 완력을 이용했다. 그만큼 힘을 쓰는 것에는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것을 종합할 때 범인은 성적 욕구가 강한 비호감 외모에 키가 165cm를 넘지 않는 작은 체형으로 추정된다. 또 운동으로 몸을 단련했거나 힘쓰는 일에 종사했을 확률이 높다. 

5. 범인은 범행을 멈추지 않는다.

범인은 대담하게 행동했다. 1차 범행을 한 후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같은 지역에서 2, 3차 범행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세 건 모두 미해결 상태다. 이 때문에 자신의 범행에 자신감도 넘쳐 있다. 범죄심리학자들도 범행의 특성상 쉽게 고쳐지거나 제어될 수 없는 연쇄 범죄자의 성향을 갖고 있다고 분석한다. 다만, 10년 넘게 동일한 지역에서 유사 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범인이 타 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겼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어디선가 같은 범행을 계속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