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주민 덮친 ‘라돈 아파트’ 공포

라돈 기준치 초과한 아파트 주민·시공사 갈등 전문가들 “법적 제도 정비해야”

2019-03-14     조유빈 기자
가장 안전해야 할 ‘주거’라는 공간에 공포가 스며들었다. ‘침묵의 살인자’라 불리는 라돈에 대한 위험성이 사회적으로 부각된 가운데, ‘라돈 아파트’에 대한 우려가 입주자들을 덮친 것이다. 최근 연이어 대기업 건설사가 시공한 아파트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라돈이 검출되면서 입주민들이 자재 교체 등 시정 조치를 요청하고 있지만, 시공사는 법적 문제가 없다며 이를 거부하면서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고급화를 이유로 화강암이나 대리석이 많이 쓰인 아파트일수록 라돈 농도가 높게 검출돼, 신축 아파트를 위주로 한 라돈 공포는 더욱 확산되는 모양새다. 아파트 입주자들끼리 라돈 측정 기구인 ‘라돈아이’ 대여처와 측정 수치를 공유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된 곳은 GS건설이 시공한 인천 중구 영종스카이시티자이 아파트다. 지난해 8월 입주를 시작한 이곳의 일부 세대가 자체적으로 검사한 라돈 수치가 환경부 권고치 이상으로 검출된 것이다. 이에 주민들은 인천 중구청에 민원을 제기했고, 중구청은 인천 보건환경연구원에 측정을 의뢰했다. 보건환경연구원 측정 결과, 4세대 중 2세대에서 권고 기준을 넘는 284베크렐(Bq/㎥), 210.8Bq/㎥의 라돈이 검출됐다. 현재 우리나라 공동주택 라돈 농도의 기준은 실내공기질관리법에 따라 200Bq/㎥로 정해져 있고, 정부의 실내공기질 기준 강화에 따라 7월1일부터 148Bq/㎥의 기준이 적용된다. 라돈을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한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기준 수치는 100Bq/㎥이다.  
라돈 검출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스카이시티 자이 아파트 ⓒ 시사저널 고성준

“자재 교체” vs “법적 문제 없어”

입주예정자들은 자재를 교체해 달라고 나섰다. 그러나 GS건설은 법적 하자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환경부의 라돈 권고기준은 2018년 1월1일 이후 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경우에 적용하게 돼 있어, 해당 단지는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2015년에 사업승인을 받아 현행법상 신축건물 라돈 측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 GS건설 측은 이미 회사 자체 연구기관에서 조사한 결과 라돈 수치가 기준치를 초과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인천 보건환경연구원의 측정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GS건설 측은 국립환경연구원이 용역을 준 업체를 통해 검사했고, 검사 방식을 지켜 측정했다는 입장이다.  아직도 공방은 진행 중이다. GS건설 관계자는 “측정 방식을 지키지 않은 데이터는 인정할 수 없다. 입주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지만, 입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것을 가지고 무조건 자재를 다 바꿀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측정방식을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을 입주민과 GS건설이 함께 선정하거나, 입주민이 입회해 재검사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협의 중인 단계로 아직 결론이 도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포스코건설이 지은 아파트 역시 라돈 검출로 논란이 된 바 있다. 2016년 10월에 분양한 경기도 화성시 동탄더샵레이크에듀타운 입주를 앞둔 주민들이 직접 라돈 측정기로 56세대를 측정한 결과, 욕실 세면대와 화강석에서 기준치 4배에서 13배에 달하는 라돈이 검출됐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주민들은 자재 교체를 요구했지만, 포스코건설은 2018년 1월 전에 사업계획을 제출하고 분양한 곳이기 때문에 의무적 라돈 측정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GS건설과 마찬가지로 측정방법의 신뢰성을 이유로 주민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일상생활에서 라돈 수치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화강석 바로 위에 측정기를 올려 측정하는 방식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입주민들은 세면대와 현관 등 아이들의 피부에 직접적으로 닿는 곳이니만큼 측정방법이 적절했다며 포스코건설의 주장에 반발했다.  전북 전주시 송천동의 에코시티더샵도 라돈 논란이 일었다. 입주민이 라돈아이를 이용해 라돈을 측정한 결과, 아파트 총 702세대 중 45평형 154세대의 욕실 내 세면대 상판에서 측정 기준치 2000Bq/㎥이 측정됐다는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현재 포스코건설 측은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전주 송천동 에코시티는 교체 작업이 진행 중이며, 동탄더샵레이크에듀타운 역시 시행사 측과 협의해 자재를 교체하기로 협의한 상황이다. 역시 문제가 제기됐던 경남 창원 용지더샵레이크파크는 민원을 제기하는 입주민들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부산에서 문제가 됐던 부영건설의 부산신호사랑으로 아파트도 자재 교체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역시 입주민이 자체적으로 농도를 테스트해 본 결과 기준치의 5배가 넘는 1000Bq/㎥이 측정되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부산시와 한국환경기술연구원이 실내공기질공정시험기준(바닥에서 1~1.5m, 벽에서 0.3m 떨어진 곳)에 따라 측정한 결과 라돈 검출량이 기준치 이하로 나타났지만, 입주민들은 올바른 측정법이 아니라며 반발했다. 신발장에 앉거나 선반에 피부가 닿는 것을 고려할 때 직접 검출량을 측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영은 5000세대의 화장실과 거실의 대리석 자재를 전면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관련 법 정비하고 기업은 도의적 책임 져야”

그나마 2018년 1월1일 이후 사업승인을 받은 신규주택에 대해 라돈 측정이 의무화됐지만, 기준치를 초과해도 환경부가 시공사에 자재 교체를 요구할 수 있는 등의 법적 권한이 없다. 결국 ‘도의적 책임’만 있을 뿐이다. 결국 법적 테두리를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 국정감사에서 “국토부 차원에서 전국적 실태 파악을 하고, 관련 건설사와도 해결방안을 모색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은 바 있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법적으로 위배되는 부분이 없지만 주민들과의 협의를 통해 자재 교체를 진행한 부분”이라며 “라돈은 국민적 관심이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건설사가 제도적인 부분에 맞춰 행동할 수 있도록 정부와 관련 기관이 자재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제도적 개선을 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적 정비를 위해 정치권에서도 관련 법안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녹색건축물 인증제도에 라돈 항목을 추가하는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과, 건축물 완공 후 라돈 등 실내 공기 질 안전을 확인토록 하는 건축법 개정법률안을 지난 1월 대표 발의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은 라듐 함유량을 기준으로 건축 자재 사용을 금지하도록 하는 법안을 냈다. 스웨덴·체코 등 유럽 국가들이 라돈 발생 원인인 라듐을 일정 기준 이상 함유한 건축자재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것에 착안, 국내에서도 일정 기준 이상 라듐이 함유된 콘크리트 제품, 건설용 석제품 등 건축자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해법이라는 것이다. 박경북 김포대학교 환경보건연구소장은 “자재의 기준도 필요할 뿐 아니라, 완공된 아파트 하자 문제에 라돈 수치 항목을 포함시켜 생활환경을 바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라돈 수치가 높게 검출되는 것은 타일이 깨진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체에 영향을 직접적으로 줄 수 있는 하자”라며 “사람이 살기 위한 집을 만들어주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무다. 현행법상 법적 책임이 없더라도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