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미국에 ‘건강한 똥’을 기부받아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일명 ‘똥 은행’이 설립됐다. 이후 한국 등 다른 국가에도 똥 은행이 생겼다. 건강한 사람의 대변에서 채집한 ‘좋은 균’을 건강하지 않은 사람에게 투여해 특정 질병을 치료 또는 예방하려는 시도다. 이와 함께 시중에는 아예 ‘좋은 균’ 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과거엔 유산균 제품만 있었다면, 지금은 일부 대장균과 곰팡이도 상품화됐다. 이를 통틀어 프로바이오틱스라고 한다. 좋은 균을 먹으면 대장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건강 체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관련 업체들의 주장이다.
똥 은행과 프로바이오틱스는 우리 몸에 좋은 세균이 많을수록 건강에 이롭다는 지난 10년간의 의학적 근거에서 시작됐다. 2008년 미국 국립보건원이 국가 차원에서 세균총(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 돌입하자 세계 각국도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많은 연구 결과, 우리 몸속에 있는 세균은 건강과 관계가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예를 들어, 정상 쥐의 똥을 비만한 쥐에게 투여하면 비만이 치료되고, 만성 설사병에 특정 세균을 주입하면 호전된 것이다. 심지어 치매나 암도 사람 배 속 세균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게다가 세계보건기구가 프로바이오틱스를 ‘충분한 양을 섭취했을 때 건강에 좋은 효과가 있는 살아 있는 균’이라고 정의하자, 프로바이오틱스는 건강을 위해 먹어야 하는 식품으로 일반인에게 각인됐다.
유산균=장건강, 의학적 근거 희박
그렇다면 일반인의 생각대로 프로바이오틱스를 먹으면 질병 예방이나 치료에 효과가 있을까. 최소한 장 건강만이라도 좋아질까. 지금까지 국내외에 보고된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아니요’가 답이다. 김미경 국립암센터 암역학예방연구부 박사는 “세계적으로 프로바이오틱스가 건강에 유효하다는 연구 결과는 없다. 일부 동물 실험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지만, 실제 사람에게 적용한 모든 임상연구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밝혔다.
특히 변비 해소나 장 건강을 위해 일반인이 즐겨 찾는 유산균에 대한 연구는 무수히 많다. 그럼에도 장 건강을 위해 유산균을 처방하는 의사가 없는 이유는 ‘유산균=장 건강’ 공식을 입증할 의학적 근거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교수는 “유산균이 건강에 좋다는 연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피험자 수가 적거나 연구의 질적 수준이 낮거나 유산균 제조사로부터 연구비를 받은 경우가 전체 관련 연구의 60% 이상이다. 그래서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좋은 균은 우리 건강과 관계가 있지만, 그런 균을 먹는다고 해서 건강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다. 그 이유는 프로바이오틱스가 사람 몸속에 정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업체들이 유산균 등 프로바이오틱스를 매일 또는 장기간 복용하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미경 박사는 “실제로 프로바이오틱스가 건강에 도움이 되려면, 그 균을 한 번만 먹어도 우리 몸에 정착해 증식해야 한다. 수많은 연구 끝에 프로바이오틱스는 신체 내부에 정착하지 못하고 그냥 대변으로 배출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 사회에 좋은 사람이 한 명 있다고 해서 좋은 세상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 장에 좋은 세균을 넣었다고 해서 장내 세균총이 건강해지지 않는다. 각국에서 세균의 장내 정착화 방법을 연구 중이지만, 아직은 뾰족한 방법이 없다. 장에는 약 3000종의 세균이 사는데, 세균은 자기들끼리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어서 좋은 균을 넣어도 그 균은 대변으로 배출될 뿐이다. 기존 세균 네트워크가 깨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좋은 세균을 아무리 많이 투입해도 질병 예방·치료는 물론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사람에 따라 유익균이 병원균으로 작용할 수도
오히려 어떤 사람에게는 프로바이오틱스가 병원균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02년 핀란드 연구에서 유산균(락토바실리우스)은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에게 병원균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2006년 스웨덴의 50대 여성은 매일 다량의 유산균 식품을 먹다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2004~07년 네덜란드 프로바이오틱스 임상 연구에서 유산균을 투여한 사람 가운데 24명이 사망했다. 학계 일부에서는 프로바이오틱스의 과잉 복용은 패혈증, 심장내막염, 폐렴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에서도 프로바이오틱스 이상 사례가 2009~17년 사이에 652건 보고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설사·변비·복통·두드러기 등의 증상이 많았다. 명승권 교수는 “유산균 제품은 균의 종류가 제각각이고 유산균 수도 들쭉날쭉하다. 과거 식약처는 유산균 제품을 ‘생리활성기능 2등급’으로 허가했다. 이는 ‘소수의 임상시험이 있으나 과학적으로 입증됐다고 할 수 없음’ 판정을 받은 가장 낮은 등급”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프로바이오틱스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학계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 하버드의대의 피터 코헨 박사는 미국의학협회 내과지(JAMA)에서 “프로바이오틱스가 건강을 지켜준다는 것을 증명한 장기적인 임상 연구 결과는 없다. 살아 있는 미생물이 효능이나 안전성에 대한 검증 없이 판매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리바이오틱스보다 채소 먹은 사람이 더 건강
건강기능식품 시장에는 프리바이오틱스 상품도 등장했다. 이는 장내 유익균의 생장을 돕는 물질, 한마디로 세균의 먹이다. 먹이를 주면 좋은 세균이 더 많아진다는 상술이다. 김미경 박사는 “세균은 섬유소를 영양분으로 삼는다. 프리바이오틱스라는 게 섬유소다. 프리바이오틱스를 먹은 사람과 채소를 먹은 사람의 건강을 살펴본 연구가 있다. 그 결과, 채소를 먹은 사람이 오히려 더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야채에는 섬유질 외에 다른 영양소도 있어 프리바이오틱스보다 더 유익하다. 특히 한국인은 채소나 곡류를 통해 섬유소를 충분히 섭취하므로 프리바이오틱스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좋은 균을 먹어봤자 장에 정착하지 못하므로, 본래 자신의 세균총을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예를 들면, 지방을 많이 먹으면 나쁜 균이 증가하고 채소를 즐기면 좋은 균이 늘어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프로바이오틱스에 특정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효과는 없다. 따라서 건강한 사람이 유산균을 먹어도 하등의 건강상 혜택을 볼 수 없다. 오히려 섬유소를 잘 섭취하는 게 건강에 더 이롭다”며 “다만 항생제를 오래 먹어 장 건강에 이상이 생긴 사람, 특정 질병에 걸린 사람, 과민성장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은 의사의 처방을 받아 유산균을 먹어볼 수 있다. 극히 일부에서 설사나 변비 등의 증상이 가라앉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항생제, 아이의 좋은 균도 죽인다
아이는 태어날 때 엄마의 세균을 물려받는다.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이는 엄마의 질과 피부에 있는 세균을 받아 장내 세균총을 이룬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는 엄마의 세균과 접촉할 일이 거의 없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는 천식·아토피 등 면역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보고가 있다. 아이가 열이 나거나 감기에 걸리면 항생제부터 찾는 부모가 많다. 1세 이전에 항생제를 복용하면 면역체계가 바뀐다. 항생제로 나쁜 균뿐만 아니라 좋은 균이 모두 사멸하기 때문이다. 항생제를 먹은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당뇨·비만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은 대규모 장기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또 모유를 먹은 아이와 분유를 먹고 자란 아이의 세균총도 다르다. 사람은 이유식을 먹을 즈음인 3세 전후에 형성된 세균총을 가지고 평생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