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데리고 괌으로 피신” 미세먼지가 불러온 ‘맘부격차’
‘맘 카페’에 ‘미세먼지 도피 해외여행’ 글들 공유…“나라 아닌 돈이 내 아이 지켜”
2019-03-05 박성의 기자
500만원이면 한 달은 ‘미세먼지 프리’
서울 송파구에 2년 전 이사 온 김혜미씨(가명·31). 김씨는 결혼과 동시에 시댁의 도움을 얻어 서울 한 신축 아파트에 전셋집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딸아이를 출산한 김씨는 지역 내 엄마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인 ‘맘 카페’에 가입했다. 이른바 ‘선배 엄마’들로부터 육아 노하우를 전수받겠다는 생각이 컸고, 실제 김씨는 모유 수유 방법부터 옷, 키즈카페, 유치원 등 각종 육아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지역 엄마들이 추천하는 모든 육아법을 그대로 실천하던 김씨지만, 최근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엄마들이 공유한 ‘미세먼지로부터 아이를 지켜내는 방법’을 따라가는 게 김씨에게 큰 숙제가 됐다. 외출을 삼가고, 유아용 마스크를 구매하고, 집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김씨는 ‘아이를 지키려면 나라도 믿으면 안 된다’는 엄마들의 성화에 23만원을 주고 미세먼지 측정기를 사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 안팎의 미세먼지 농도를 직접 쟀다. 이 밖에 40만원 상당의 수입산 차량용 공기청정기도 설치했다. 외벌이 형편에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맘 카페 회원들의 조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세먼지가 계속 극성을 부리자 엄마들 사이에 ‘해외에서 살다 오기’나 ‘이민’이 대안책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실제 해당 카페에는 ‘아이와 괌 or 캐나다에서 살다 오기’ 등의 글이 공유되고 있다. 올라온 한 게시글에 따르면 이들 국가에서 2인 가족 기준 1개월간 체류하는 데 약 4000~5000달러(약 450만~560만원)가 소요된다. 댓글로는 한국인 부모를 대상으로 ‘미세먼지 탈출’ 관광상품을 파는 여행사 연락처 등도 공유된다. 이를 일부 ‘극성맞은’ 엄마들만의 관심사라고 보기도 어렵다. 김씨가 가입한 카페에만 이민 및 해외 출국 관련 글이 3000건 이상 게시됐으며, 같은 기간 ‘영어 유치원’(약 200건)을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보다 10배 이상 많다. 엄마들 사이에 가장 뜨거운 육아 키워드로 ‘한국 탈출’이 부상한 셈인데, 이를 바라보는 엄마들의 시각은 처한 현실에 따라 갈린다. 실제 초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린 지난 1월부터 이달까지 괌에서 체류하고 있다는 전가은씨(가명·30)는 “한국에 있을 때는 아이가 감기를 달고 살았다. 공기청정기를 24시간 틀어놔도 가래 소리가 ‘그렁그렁’했는데, 여기(괌) 온 지 하루 만에 그런 증상이 없어졌다”며 “정부가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하는데 이런 생활을 하는 게 사치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빚이라도 내고 싶은 게 엄마의 심정”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시흥에서 3살 난 아들을 키우고 있다는 남미진씨(가명·30)는 “SNS를 보면 아이와 함께 섬나라로 가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공유하는 엄마들이 많다”며 “아이를 낳기 전이라면 허세라고 무시했을 수 있다. 당장 남편이랑 국내여행 가기도 빠듯한 형편에 그런 사진을 보면서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수는 없으니까”라고 했다. 이어 남씨는 “그런데 요즘 아이가 감기라도 걸리면 ‘무리해서라도 외국으로 나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 유난스러워야 아이를 지킬 수 있는 현실이 조금 서글픈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엄마들에게 신뢰 심어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