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다. 이를 기념해 창작 뮤지컬 등 다양한 공연과 전시가 이어진다. 100억원대 제작비를 투입해 27일 개봉하는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도 그중 한 편. 일제강점기 스포츠 영웅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점에서 우선 신선하다. 영화는 일본이 조선의 민족의식을 짓밟고 지배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조선자전차대회를 개최하던 시기를 조명한다. 평택에서 물장수를 하다 자전차 선수로 급부상한 엄복동(정지훈)의 존재는 조선에 긍지를 안기고, 일본 총독부는 조선인들의 사기를 꺾기 위해 고심한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순수한 민초가 조선의 자부심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리고자 한다. 취지는 또렷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그려가는 과정에 있다.
전반부는 평범했던 물장수 엄복동이 자전차대회에 나가기까지를 그린다. 난생처음 본 자전차의 매력에 빠진 엄복동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경성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우연히 일미상회 자전차 선수단에 가입한다. 사장 황재호(이범수)는 엄복동의 자질을 알아보고 그를 선수로 키워낸다. 본격적인 대회 출전 이전 상황에서는 인물의 성격과 그를 둘러싼 배경을 차곡차곡 쌓아가야 한다. 관객이 인물에 애정을 쌓고, 그를 응원하게 되는 상황들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엄복동이라는 인물의 순수함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할 뿐, 이렇다 할 캐릭터의 특성은 만들어내지 못한다. 배우의 캐릭터 해석과 연기력 이전에 애초부터 엄복동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데 실패한 각본인 것이다. 그가 선수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의 나열 역시 납작하기만 하다.
더 큰 문제는 이 영화가 역사적 비약을 서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1913년부터 이어진 엄복동의 승리가 2000만 조선인의 한을 달랜 것은 사실이다. 그의 행보가 독립을 향한 열망에 힘을 불어넣은 것 역시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다. 당시 민중은 엄복동의 활약에 민족적 자긍심을 지키고 나아가 엄복동을 지키려 했다. 심판석의 부당한 중지 선언에 화가 난 엄복동이 우승기를 잡아 꺾자 일본인들이 그를 구타하기 시작했고, 이에 일반 군중들이 엄복동을 지키기 위해 운동장 안으로 몰려들었다는 기록은 1920년대 신문 기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사건은 약간의 각색을 거쳐 극 중에도 등장한다.
다만 이 영화가 자막까지 써가며 설명하는 대로 그의 활약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은 비약에 가깝다. 영화는 엄복동이 독립운동가가 아니었다는, 그러니까 나아가고자 하는 서사에 있어서 핸디캡인 부분을 다른 인물들로 메우려 한다. 조선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거는 애국단 행동대원들이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행동대원 김형신(강소라)과 안도민(고창석)이 필두다. 이들은 엄복동의 스승이자 전 애국단 일원인 황재호와의 인연으로, 자연스럽게 엄복동과도 얽힌다. 따라서 이 영화에는 두 가지 서사 축이 존재하게 된다. 엄복동의 자전차 경주 활약과 애국단 행동대원들의 투쟁이다. 전자에서는 스포츠 경기 특유의 박진감을, 후자에서는 나라를 되찾으려던 순국선열들의 마음을 기리고자 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 두 서사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데 실패한다. 시대 배경을 그리려 했던 의도는 이해하지만, 애초에 엄복동이라는 인물에 조금 더 집중하는 편이 나을 뻔했다. 애국단을 주목하다 보니 그들을 제거하려는 악랄한 친일파 사카모토(김희원)의 등장까지 영화의 곁가지는 계속 퍼져만 간다. 심지어 엄복동과 김형신 사이에는 어설픈 멜로 라인마저 존재한다. 차라리 애국주의를 향한 부담을 조금 내려놓고 스포츠 영화가 줄 수 있는 쾌감에 집중했다면 색다른 영화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정지훈은 엄복동을 연기하기 위해 모든 경주 장면을 실제로 소화했고, 고된 훈련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선보인다. 경기 장면이 주는 순수한 쾌감 역시 나쁘지 않기에 더 아쉽다.
흥행의 걸림돌? 영화를 둘러싼 잡음들
《자전차왕 엄복동》을 둘러싼 잡음들은 끊이지 않았다. 2017년 메가폰을 잡았던 김유성 감독이 프로젝트에서 자진 하차한 것이다. 당시 감독은 “연출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했고, 관계자들은 “신인 감독이라 100억원대 대작을 이끄는 것에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고 상반된 의견을 내놓았다. 이후 이 영화의 제작자이기도 한 배우 이범수가 사실상 현장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슈퍼스타 감사용》(2004)의 김종현 감독이 자문을 주는 형태로 현장은 계속 돌아갔다. 그러나 김유성 감독은 이후 재합류하며 공식 석상에 다시 연출가 자격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감독의 재합류에도 불구하고 2017년 9월 촬영을 종료한 영화의 CG는 아직까지 온전히 마무리되지 않았다.
영웅적 활약을 보였던 시기와 달리 1920년대 후반 엄복동이 자전거 도둑이었다는 점이 밝혀져 논란이 인 것도 영화에는 호재가 아니다. 감독은 이에 대해 “부분만 가지고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마약 투약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배우 정석원이 후반부 엄복동과 가장 중요한 대결을 펼치는 일본 선수 카츠라로 등장한다는 점도 영화를 둘러싼 잡음 중 하나다. 제작진은 중요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편집 없이 진행했다고 밝혔지만, 관객이 느낄 심리적 저항감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른바 ‘국뽕’이라 하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영화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무조건 지양돼야 하는 것 역시 아니다. 다만 이는 만듦새가 보장될 때의 얘기다. 《자전차왕 엄복동》의 경우는 역사적 사실을 다룰 때, 특히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기획을 다룰 때 한층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항일투쟁 영화들
3·1절 10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들은 더 있다. 《자전차왕 엄복동》과 같은 날 개봉하는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충남 병천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이 서대문 감옥에 갇힌 후 1년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와 함께 옥살이를 한 8호실 여성 30여 명의 이야기도 함께 그리는 작품이다. 영웅이자 열일곱 소녀 유관순 그리고 그의 곁을 지킨 여성들의 또렷한 의지와 연대를 새긴 흑백영화다. 또 한편의 유관순 영화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후원한 다큐멘터리 《1919 유관순》은 다음 달 3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