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해가 뜨고 해가 진다’에 담긴 교훈

2019-01-09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2019년 새해 떠오르는 해를 보며 희망과 소망을 기원하기 위해 정동진에 모인 해맞이 인파가 올해도 예외 없이 TV 화면에 등장했다. ‘해가 뜨고 해가 진다’는 표현은 영어로도 ‘선 라이즈 선 셋’(sun rise, sun set)이니, 동서양이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점에서 일면 신기하기도 하다. ‘선 라이즈 선 셋’ 하면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서 흘러나오던 감미로운 멜로디가 생각나기도 한다. 한데 해가 뜨고 해가 진다는 생각과 표현은 지구가 천체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시대의 산물 아니던가.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천동설(天動說)을 믿었기에,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이란 생각이 우리 머릿속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地動說)을 주창한 이후,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음이 과학적 진실로 입증되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 첫날인 1일 오전 시민들이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서울 용산구 남산을 찾고 있다. 새벽에 낀 구름 탓에 완연한 일출을 보긴 힘들었지만 구름사이로 태양이 떠오르자 시민들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가족을 위한 기도로 2019년을 맞이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그럼에도 우리는 아침 해를 보면서 ‘지구가 태양의 동쪽으로 갔구나’, 저녁 해를 보면서 ‘지구가 태양의 서쪽으로 갔구나’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해가 뜨고 해가 지누나’를 문학적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 라이즈 선 셋’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따로 있다. 우리의 인식과 언어는 일단 고착되면 변화에 저항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는 사실이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아님이 명백히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렇게 믿는 ‘생각의 관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비단 해가 뜨고 해가 진다 뿐이겠는가. 우리 주위에는 알게 모르게 과학적·합리적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는 통념이 다수 존재한다.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는 믿음만 해도 공고한 과학적 증거를 찾을 수 없건만,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고 있지 않던가. 다만 혈액형과 성격의 관계를 믿든 혹은 믿지 않든, 이는 별다른 부정적 영향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소한 재미로 치부해도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그렇다고 믿음으로써 당사자나 사회를 향해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통념도 다수 존재한다. 일례로 청소년 비행의 원인은 결손가족이라는 주장은 다양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 사실과 다름이 입증되었다. 즉 결손가족과 청소년 비행의 관계는 ‘거짓(假)관계’인 반면, 결손가족과 청소년 비행에 공동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빈곤으로 밝혀졌다. 곧 빈곤한 상황에서 가족의 결손 확률이 높아지고 빈곤한 환경에서 청소년 비행에 연루될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정확한 인과관계가 밝혀질 때만이 청소년 비행을 해소할 수 있는 실질적 해결방안이 마련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여성은 직업의식이 약해 쉽게 경력단절에 이르게 된다는 인식 또한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통념 중 하나다. 표면적으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경력단절 비율이 높게 나타나지만, 여성이 다수를 점하는 직종일수록 저임금, 미숙련, 비정규직임을 고려한다면 여성의 경력단절은 낮은 직업의식 때문이 아니라 여성 직종의 특성과 밀접히 연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여성은 직업의식이 약하다는 고정관념에 의거해 피해자를 비난하는 오류에 빠지는 것이 우리의 실상이다. 인식과 사고의 관성으로 인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탈학습(de-learning)과 재학습(re-learning) 개념이 제시되고 있다. 과학적 증거를 결여한 통념이나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낡은 인식은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새롭게 부상하는 진실이나 과학적 증거에 입각한 정보를 끊임없이 배우고 채우는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기에, 우리 모두는 작심삼일(作心两日)을 3일마다 반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