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연말 시상식 최대 이슈는 ‘MBC 연예대상에서 이영자가 대상을 받을 것인가’였다. 이영자가 MBC 《전지적 참견 시점》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는데, 마침 MBC엔 박나래라는 또 다른 여성 대상 후보가 있었다. 여성 예능의 귀환이 2018년 예능의 화두였기 때문에 두 여성 대상 후보가 격돌하는 MBC 연예대상의 향방이 핫이슈가 됐다.
그런데 의외로 KBS가 선수를 쳤다. MBC보다 먼저 이영자에게 연예대상을 안긴 것이다. KBS 사상 최초의 여성 연예대상이었다. 당연히 이목이 집중됐고 MBC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이미 KBS가 이영자에게 최초 여성 대상이라는 타이틀을 수여해 이슈를 가져간 마당에 MBC가 ‘뒷북’을 치긴 어렵기 때문이다. 보통 이럴 땐 자사의 자존심을 앞세워 차별화된 선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MBC는 이영자를 대상으로 선택했다. 이영자가 사회 트렌드까지 선도할 정도로 신드롬을 일으켰기 때문에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자사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우리 방송사 풍토에선 힘든 결정이었다.
순리대로,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람을 수상자로 선정하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 방송사들의 연말 시상식에서 그동안 찾아보기 어려운 미덕이었다. SBS 연예대상에서 이 문제가 또 터졌다. SBS에선 올해 백종원의 활약이 가장 눈부셨다. 백종원은 《골목식당》을 원맨쇼로 이끌었고, 국민 멘토 반열에 오를 정도로 사회적 신드롬까지 일으켰다. 하지만 대상은 놀랍게도 이승기였다. 백종원은 단 하나의 상도 받지 못한 무관이었다. 연말 시상식 최대의 반발이 터졌다.
문제 지적보단 아예 외면을 택한 시청자들
최대의 반발이긴 한데 그렇게 뜨겁진 않았다. 과거 연말 시상식에 대한 공분이 한창 뜨거울 땐 한 포털사이트의 관련 기사에 댓글이 1만 개 넘게 달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백종원 무관 이슈에도 천 개 단위 댓글에 그쳤다. 연말 시상식에 대한 대중의 관심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그나마 이영자 대상 수상 여부가 화제가 됐다는 것이지, 과거에 비하면 외면에 가까웠다.
과거엔 방송사 시상식에 비판이 거세게 쏟아졌었다. 수상자 선정 공정성 문제가 대표적이고, 그 외에도 지나치게 부문을 세분화하고 공동수상을 일삼는 등 상을 남발하는 문제, 황당한 명목으로 시상해 시상식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문제, 참석한 사람들 위주로 상을 돌려 상의 무게를 ‘참석상’ 정도로 격하시키는 문제 등 온갖 사안들이 문제가 됐다.
방송사 스스로 자신들의 시상식을 추락시켜왔다. 한 해 대중문화를 결산하는 공신력 있는 시상식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의 바람은 무너져왔다. SBS 백종원 무관 사태도 자사 시상식을 가볍게 보는 방송사 태도와 관련이 있다. 백종원이 스스로 수상을 고사해 무관 사태가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방송사가 상을 받을 사람에게 반드시 시상한다는 시상식의 엄정한 기준을 지켰다면 아무리 본인이 고사해도 백종원을 대상으로 결정했을 것이다. 그동안 적당히 이해관계에 따라 자의적으로 시상했었기 때문에, 백종원이 거부하자 별생각 없이 이승기에게 대상을 넘긴 것으로 보인다. 이것으로 시상식에 대한 시청자의 기대는 다시 한번 무너졌다.
그 외에도 기존 시상식의 문제들이 이번에 그대로 되풀이됐다. 공정성 문제는 MBC가 이영자를 선정해 공정함을 보인 것 정도가 특기할 만했을 뿐, 그 외엔 영문 모를 수상자 선정 사례들이 많았다. ‘베스트 챌린저상’이나 ‘베스트 패밀리상’ 같은 황당한 명목의 시상도 여전했다. 부문 세분화와 공동수상 문제는 연기대상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KBS 연기대상은 4년 연속으로 대상을 공동수상으로 결정했고 그 외에도 대부분의 부문이 공동수상으로 점철됐다. 베스트커플상은 무려 14명에게 ‘통 크게’ 나눠줬다. 다른 방송사들의 연기대상에서도 공동수상 행렬이 여지없이 이어졌다.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표출된 시청자들의 염원을 정면으로 거스른 것이다. 하지만 과거만큼의 반발은 나타나지 않았다. 문제를 지적하기에 지친 시청자들이 아예 관심을 끊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지상파 연말 시상식을 한국 대중문화계 결산이 아닌 방송사 주관 ‘상 나눔 상조파티’ 정도로 인식하게 됐다. 그러니 온갖 명목으로 상을 난사해도 그러려니 한다. 수년간에 걸친 기싸움에서 방송사가 이긴 것이다. 이제 시청자는 지쳤고 방송사가 시상식을 치르는 방식을 받아들이게 됐다. 방송사는 자유롭게 원하는 방식대로 시상식을 치를 수 있게 됐다. 물론 ‘그런 방송사만의 상 나눔 파티를 왜 전파를 통해 국민에게 중계하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았지만 말이다.
시상식에 반영된 지상파의 위기
지상파 연말 시상식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진 것엔 지상파 자체의 위상 하락이 영향을 미쳤다. MBC 연기대상 수상자들을 알리는 기사에 한 누리꾼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수상자들을 보니 내가 올해 MBC 드라마를 안 봤구나.” 《내 뒤에 테리우스》에서 대상이 나왔는데, 이 작품이 MBC 드라마들 중에서 성공작인 건 확실하지만, 2018년 한국 드라마를 대표할 정도의 작품은 아니었다. 그런 작품에서 대상이 나오는 상황에서 수많은 명목으로 상들을 나눠줬지만 애처로운 ‘그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졌다. KBS, SBS 연기대상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화제작이 없으니 시상식의 열기도 달아오를 수 없었다.
2018년을 대표하는 드라마들은 tvN의 《미스터 션샤인》 《나의 아저씨》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김비서가 왜 그럴까》 《백일의 낭군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JTBC의 《미스티》 《라이프》 《SKY캐슬》, OCN의 《라이프 온 마스》 《손 더 게스트》 등 대부분 케이블 종편 계열에서 배출됐다.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공동수상한 유동근이 《미스터 션샤인》을 수상 소감에서 언급할 정도로 케이블 채널의 존재감이 커진 상황에서 지상파 시상식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연예대상의 경우엔 또 다른 문제도 있다. 트렌드가 리얼리티 관찰예능으로 바뀌면서 수상자 선정이 점점 애매해진다. 2017년 SBS 연예대상에서 《미운 우리 새끼》 어머니들이 대상을 받은 것이 그런 예다. 스타 MC의 각축이 사라져 주목도가 떨어지고 수상자가 희화화될 여지가 더 커져 간다. 여러 요인으로 지상파 연말 시상식의 입지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이럴수록 기준을 엄격히 세워서 시상식의 격을 올려야 한다. 지금처럼 ‘상 나눔 상조파티’ 정도로 방송사 스스로 시상식의 격을 떨어뜨리면 시청자는 점점 더 외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