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더불어 살기 위하여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2019년을 기대하며

2019-01-02     노혜경 시인

2018년을 되돌아보면 “만감이 교차한다”라는 고전적 표현이 떠오른다. 고통이 폭죽처럼 터졌던 날들이었다.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호소하고 절규하고 분노하는 것일 리는 없는데, 아픈 이야기들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벌써 몇 년째, 사실은 거의 평생을 힘들고 아프고 화난다는 소리를 하고 산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아주 조금 책임감을 지니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몰려오는 부조리와 불의의 기억에 괴롭다. 아픈 것은 페미니즘이라고 이름표를 붙인 주제들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연말의 광장에는 ‘위험의 외주화’라는 이름 아래 죽은 청년과, 철거당한 삶을 따라 스스로 철거해 버린 청년을 부르는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여기 문제적 상황이 있음을 죽음이 증언하는 것이다. 지상 75m 고공에서 외치는 소리도 있다. 변화하는 시대의 변화하고자 하는 외침은 소리 없이 강하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상처고 결핍이다. 알기 쉬운 예를 들자면, 목에 목줄이 죄어진 채 버려진 강아지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고통에 못 이겨 길거리에서 비틀대며 발견되었을 때다. 가까스로 구조하여 그 목줄을 잘랐을 때 드러나는 곪고 썩은 상처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다. 하지만, 묶여 있을 때 보이지 않던 처참한 실체를 드러내어 바라보는 까닭은 당연히 살리기 위해서다. 보아버렸기 때문에 그 고통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고 치유의 손길을 내밀지 않을 수 없는 인지상정.

2018년 6월9일 서울 혜화역 앞에서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가 열렸다. ⓒ 뉴스1

새로운 ‘용기’가 등장한 2018년

여성들이 이야기하는 고통도 이와 같이 너무 먼 곳 너무 높거나 너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여성들은 자신을 옥죄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고 말하고 있다. 2018년 한 해 미투에서 웹하드 카르텔에 이르기까지 유난히 많았던 성폭력 고발과, 성 판매 여성들이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한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출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불편한 용기’ 주최 항의 집회는 임계점에 다다른 여성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미투’ ‘위드유’가 물 건너온 말이라면, ‘불편한 용기’는 우리말이다. 불편하게 할 용기이자 스스로 불편을 감내할 용기라는 이중의 방향을 지닌 이 용기라는 말은, 2018년 한 해 여성들이 입 밖으로 끄집어낸 수많은 말들의 배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제는 드러내 말을 하고, 그 말을 통해 세상을 고쳐 나가겠다는 용기. 여성들이 과거와 결별할 용기를 내었다는 그 용기. 

2018년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녀 불문, 젠더 불문, 이 새로운 언어들의 세례를 좋건 싫건 받았다. 말하기도 힘들고 듣기도 괴로운 언어이긴 하지만, 여성들은 남성이나 또는 사회에 하소연하려고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자기 자신의 존엄을 위해 말하는 것이고, 타인을 훼손하고도 그를 모르는 사람들의 존엄을 회복시키기 위해 말하는 것이다.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좀 더 서로를 위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자 사회와 시대의 곳곳에 파인 함정과 구덩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2019년에는 살며 사랑하는 이야기가 페미니스트들의 주된 이야기보따리가 될 수 있도록, 모든 고통에 귀를 기울이며 함께 살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