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부문 곳곳에서 터지는 ‘죽음의 외주화’
발전 부문 외주화로 하청 노동자 사망 잇달아…자회사 설립 통한 정규직화 방식도 ‘파열음’
공공 부문 정규직화 허점 드러나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 공공 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는 공공 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국민의 생명·안전과 밀접한 업무는 공공기관이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기준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우리나라 비정규직 규모와 비중이 지나치게 높고, 양극화로 인해 사회 통합이 심각하게 저해되는 만큼 최대 사용자인 공공 부문이 선도적 역할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정책 추진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1년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공공 부문 정규직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에 따르면, 2018년 8월 기준으로 발전사의 파견·용역부문 정규직 전환 비율이 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전 부문은 2013년 발전정비산업 경쟁 도입 1단계가 시행됐다. 1단계 경쟁 도입 결과, 민간 정비업체의 점유율이 2012년 말 35.7%에서 2017년 말 53.2%로, 17.5%포인트 늘었다. 발전소의 위험 업무인 유해가스 제거, 수처리, 운전, 정비 등 발전 과정의 전처리, 후처리를 모두 외주화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24)가 지난 12월11일 석탄운송설비에서 운전 업무를 하던 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발전소에서 하청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은 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9년간 발전 노동자 40명이 산재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 가운데 92%인 37명이 하청 노동자였다.
하청업체들은 경쟁 입찰로 일거리를 받는데, 낙찰을 받기 위해 낮은 금액을 써낸다. 이 과정에서 인건비가 줄고 2인 1조 업무 시스템이 없어졌다. 김용균씨 사고도 이런 시스템적인 문제로 인해 일어났다. 발전 정비 부문의 하청 노동자들은 인력을 늘리고 작업 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수차례 요청했다. 그러나 원청인 서부발전과 하청인 한국발전기술 모두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김씨는 홀로 업무를 했고 사고가 난 그 순간에도 김씨를 구할 사람이 곁에 없었다.
발전사들은 하청 노동자 사고가 잇따랐지만 오히려 무재해 인증을 받고 산재보험료를 감면받았다. 김용균씨가 일했던 태안화력발전소는 3년째 무재해 인증을 받았다.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발전 부문의 경우 이전 정부들이 오랜 기간 추진해 온 외주화와 경쟁 확대 정책이 현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과 충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부발전 하청 노동자인 신대원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장도 “우리는 연료를 공급해 주고 재와 가스를 처리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일”이라며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의 직접 고용 대상이 되면 우리들이 요구했던 인력 증원과 작업환경 개선이 더 빨라질 수 있다. 위험한 업무로 노동자가 죽는 일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만든 일부 자회사에서도 저임금 구조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 9월말 기준 공공 부문 정규직화 1단계 전환 대상 중 하나인 중앙부처 산하 공공기관 334개소의 10%인 33개소가 현재 자회사 설립을 통해 정규직 전환을 진행했거나 추진 중이었다. 그 규모는 3만2514명이다. 중앙부처 산하 전체 공공기관의 파견·용역 근로자는 5만9470명이다. 54.7%가 자회사 형태로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여수광양항만공사는 정부 지침에 따라 2017년 말 자회사 여수광양항만관리㈜를 세워 특수경비용역 비정규직 직원 10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불만이 적지 않다. 이영훈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 여수광양항만관리지부장은 “시간당 최저임금인 7530원보다 255원 많은 7786원만 받고 일하고 있다. 연장근로와 심야수당을 제외하면 월 180만원에 불과하다”며 “자회사 전환 후 관리자가 늘어나면서 예산이 낭비됐다. 자회사 사장 1명과 관리직 5명을 채용해 연간 2억~3억원 이상 비용이 발생했다. 그만큼 노동자들의 처우개선 비용이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와 매년 위탁용역 계약을 맺는 우체국시설관리단의 현장 노동자 2500여 명도 사실상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체국시설관리단이 공공 부문 정규직화 추진 계획에서 자회사로 분류돼 직접고용 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박정석 공공운수노조 우체국시설관리단지부장은 “우정사업본부에서 지급한 청사 경비 금액의 60% 정도만 노동자에게 돌아간다. 나머지는 중간 단계인 우체국시설관리단에서 각종 일반관리비, 이윤, 부가가치세로 빠지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책임 회피식 자회사 방식 개선 필요”
그나마 공공 부문 자회사는 원청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재취업 창구로도 악용되고 있다. 우체국시설관리단 본사 이사장 등 고위직에 우정사업본부 출신 14명이 재취업한 상태다. 더군다나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화는 원청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자회사 1년 예산을 책정하지만, 자회사 노동자들은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 등을 할 수 없다. 자회사 노동자들이 일하다 다쳐도 원청은 책임이 없기 때문에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원청 기관은 한결같이 “억울하다”고 토로한다. 공공기관이 파견·용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자회사 설립을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근거는 2017년 정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이었다. 가이드라인에는 ‘파견·용역은 노사 및 전문가 협의를 통해 직접고용·자회사 등 방식과 시기를 결정하면 된다’고 언급돼 있다. 이 가이드라인을 따랐을 뿐인데 갑질로 낙인찍혀 억울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목소리도 나온다. 남우근 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간접고용 해법의 핵심은 직영화다. 비용 논리로 인력만을 공급받는 노무도급 중심의 외주화는 전부 직영화해야 한다”며 “자회사 형태 역시 원청 기관의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민간위탁과 다르지 않다. 정부가 자회사 방식 문제 등을 감안해 정규직화 정책을 구체화해 내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