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재건 공약한 김정은 “시간이 없다”

[이영종의 평양인사이트] 2019년 한반도 정세…‘김정은 답방이 판가름’

2018-12-28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전문기자

2019년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있어 분수령이 될 수 있다. 2018년 김정은 신년사와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물꼬를 튼 남북한의 화해협력 분위기가 기로에 설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기투합이 더욱 탄력을 받아 새로운 남북관계로 접어들 것인가, 아니면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다시 굴곡을 겪게 되느냐 하는 문제는 새해 남북한과 주변 정국을 보는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접근을 바라보는 국민 여론의 추이와 함께 미국 등 국제사회의 지지 여부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2019년 남북관계와 관련한 기상도는 ‘대체로 맑음’ 쪽으로 가닥이 잡혀 있다. 정부 당국과 국책 연구기관들이 내놓은 2019년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전망을 종합해 보면, 남북관계의 진전과 함께 민간분야 교류·협력 사업의 진화 내지는 확대가 점쳐진다. 2018년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군사 분야 합의 이행 등 든든한 토대가 뒷심으로 작용하는 데다 당장 북한이 이런 분위기를 깨트릴 요인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측면에서다.

 
2018년 12월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겨울철 집중 어로전투’가 한창인 동해지구의 수산사업소들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2019년 남북관계 기상도 ‘대체로 맑음’

국가정보원 산하 연구기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원장 조동호)이 내놓은 ‘2018년 정세평가와 2019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통한 비핵화 견인과 함께 제재의 틀 내에서의 남북관계 추진”에 힘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보고서는 먼저 남북관계의 진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전망하면서 “남북 경협의 지체와 군사 및 사회·문화 분야 협력의 진전”을 지적했다. 미국의 남북 경협 재개에 대한 경계심과 한국 정부의 제재 틀 안에서의 남북관계 진전 입장이 확고하지만, 미국의 이중적 태도(경협 차단과 군사 및 사회·문화 분야 협력 인정)는 군사 및 사회·문화 분야의 협력에 있어 촉진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2019년에도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의 정상회담이 추가로 개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전망이다. 무엇보다 2018년 9·19 평양 공동선언에서 두 정상이 합의한 김정은 서울 답방 문제가 최우선 순위로 거론될 수 있다. 선언 문안에는 ‘가까운 시일’이라 명기돼 있지만 문 대통령이 ‘연내(2018년) 서울 답방’이라고 강조했다. 추진 단계에서 시기를 맞추지는 못했지만, 남북관계에 탄력을 다시 붙이려면 서울 답방과 4차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데 남북한이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경우에 따라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 답방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거나 남한 내 분위기나 주변 정세가 뒷받침하지 못할 경우 ‘서울 방문’ 문제가 남북관계 진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우여곡절 속에서도 남북관계의 순항이란 목표에는 남북 정상이 뜻을 같이하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 단계에서 판이 깨지거나 이를 방치하는 건 두 사람 모두에게 손실이 크고 경우에 따라 리더십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북·미 관계와 비핵화 협상에서도 일정한 진전이 있을 것이란 점에 국책연구기관이나 전문가들은 입장을 대체로 같이한다. 2018년 11월 불발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고위급 접촉이 새해 초 재개되면서 북·미 관계의 본격적인 정상화 문제가 테이블에 오를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2019년 초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도 내다볼 수 있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북·미 관계와 비핵화 협상은 현재보다 다소 진전되는 양상을 보이겠지만, 이행 과정의 특정한 국면에선 일시적으로 교착과 답보 상태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대북제재 해제와 관련한 문제다. 미국이 북한이 약속한 ‘완전한 비핵화’를 이행하기 전에는 대북 압박을 지속할 것이란 입장을 굽히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은 ‘살라미 전술’에 기초한 제재 완화와 중·러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면 제재 해제까지는 아니더라도 단계적인 제재 완화의 노정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이런 누그러진 분위기 속에서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핵 신고와 같은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조치도 북·미 간에 협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2월1일 오후(현지 시각) 다음 방문지인 뉴질랜드로 향하는 공군 1호기 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北, 살라미 전술 기초해 중·러 도움 받을 듯

2019년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내부적인 정치·경제 상황도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4월 당 중앙위 7기3차 전원회의를 통해 ‘핵·경제 병진노선’ 포기를 사실상 선언하고 ‘경제건설 총력 집중’이란 기치를 내걸었다. 2017년 한 해를 핵과 미사일 도발로 남북관계의 파국과 한반도 긴장을 최고조로 치닫게 만든 뒤 내놓은 노선 변화다.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은 비핵화를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거듭 확약하며 서울과 워싱턴을 향해 올리브 가지를 흔들었다.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역사적’이란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개최는 김정은을 일약 국제 외교무대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2017년 북한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3.5%를 기록했고, 2018년에도 마이너스 기록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2018년 1월부터 9월까지의 수출은 2017년 같은 기간 대비 88%, 수입은 40% 줄어들었다. 대외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장의 물가와 환율은 안정세를 보이긴 했지만, 제재 지속 등 실망스러운 요인이 부각되면서 다시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자칫 이러다간 엘리트 계층이나 장마당 세력의 불만이 김정은 체제로 향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은 2021년 8차 노동당 대회를 예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2020년 당 창당 75주년과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성공적 결산을 목표로 2019년 한 해 각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북한의 사정은 녹록지 않다. 내부적으로는 이른바 국가전략방향의 전환으로 인한 혼선과 함께 정책 목표와 과제의 과잉이란 문제가 있다. 여기에 비핵화 협상 부진이 장기화돼 대북제재가 지속될 경우 경제 목표의 달성은 난망해진다. 북한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간부와 주민들을 대상으로 내부역량 총동원과 체제 결속을 강조하겠지만, 정치적 캠페인은 일정한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2018년 북한은 평창동계올림픽이란 멍석을 깔고 비교적 산뜻한 출발을 할 수 있었다. 핵과 미사일 도발이란 노선에서 벗어난 ‘평화 올림픽’ 여정은 한국과 국제사회의 찬사를 받았다. 평창올림픽을 지렛대 삼아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여론에 북한이 호응하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나타난 결과다. 2018년 신년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남북관계의 전환을 언급한 김정은 위원장은 ‘도발자’의 이미지를 벗겨내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미국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인식 변화다. 북한에 있어 미국은 ‘불구대천의 철천지원수’라 할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죽는 시점까지 이 같은 세뇌교육을 반복한다. 그런데 북·미 정상회담과 관계 정상화를 비롯한 상황변화가 생기면서 달라졌다.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나 웃는 모습으로 회담하고, 합의를 이루는 장면은 북한 주민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파를 던졌다. 이런 문제점을 감수하고서라도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 관계의 개선 없이는 북한 체제 안정을 도모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란 게 정부 당국과 전문가 그룹의 지적이다.

2019년 김정은 체제 앞에는 2018년과는 차원이 다른 과제가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핵과 미사일 도발에서 벗어나 미소 띤 얼굴을 보이고 평창올림픽 참여와 회담 테이블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은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상황이 다르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완전한 비핵화’의 이행 여부를 놓고 트럼프 행정부와 국제사회는 평양을 주시하고 있다.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제재의 칼날이 더 날카로워질 수 있다는 으름장도 종종 내놓는 형국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고 감싸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 역시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의 제재 전선 틀에서의 움직임에 불과하다. 북한이 화풀이 성격의 대남비난을 재개하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건 노동당과 군부의 고위층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11월1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 EPA 연합


 

대남·대미 주도권 둘러싼 권력암투 조짐

평양은 김정은 시대 들어 변신을 거듭해 왔다. 고층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선 뉴타운 형태의 개발 사업을 시작했고, 노동당 간부와 특권층이 주축인 평양 시민들을 위한 위락시설과 편의설비를 집중적으로 갖추는 데 주력해 왔다. 노동당의 배급망 붕괴에 실망한 주민들은 장마당의 상업유통망에 의존하고 있고, ‘돈주’라고 불리는 신흥 자본가들이 북한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대남·대미 정책의 주도권을 둘러싼 권력층 내부의 심상치 않은 권력암투 양상도 감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평양에서 두 번째로 힘이 센 인물’로 지목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견제하기 위해 최룡해 당 부위원장 겸 조직지도부장이 칼을 꺼내들었다는 말도 평양 권력 핵심부에서 흘러나온다.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을 무참히 처형한 데 이어 2017년 2월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이복형 김정남을 독살한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도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인권을 억압하고 정치범수용소 등을 가동해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반하는 통치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안팎으로 산재한 문제점과 걸림돌을 넘어서 김정은 위원장이 2019년 한 해의 대남, 대미 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