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3년차 文정부, 진보·보수 개혁 ‘패키지’로 추진해야”

[인터뷰] 박진 국회미래연구원 원장 “변화 모색해야 할 시점에 변화 못하면 결국 위기”

2018-12-28     김종일 기자

2019년 한국 경제는 어떨까. 장밋빛 전망보단 비관적 전망이 많다. 이유는 제각각이다. 진보와 보수진영 모두 각자의 이유로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그렇다면 집권 3년 차를 맞는 문재인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역시 진보와 보수진영은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보수진영은 ‘스톱’을 외친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 과도한 주 52시간 근무제, 비정규직 강제 정규직화 등 무리한 정책이 부작용을 낳고, 그걸 해결하려는 정책이 또 다른 역효과를 가져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진보진영은 재벌 민원을 들어주면서까지 경제 활력을 자극하려는 시도를 ‘스톱’하라고 지적한다. 저소득층이 빈민화되고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는데 문제의 핵심인 재벌 개혁에 나서기는커녕 재벌 중심 성장론으로 후퇴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좌우협공’으로 점점 고립돼 가는 문재인호(號)는 어찌해야 할까. 정치에서 ‘지지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는 말은 원칙과 같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경제 영역에서도 ‘마이너스 정책’을 멈추고 ‘플러스 정책’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순수성과 선의라는 기치 아래 국정 협력자를 늘리는 게 아니라 줄이는 국정 운영 방식을 멈추라는 지적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박진 국회미래연구원 초대 원장은 더 어려운 주문을 한다. 집권 3년 차를 맞는 문재인 정부가 인기 없고, 고통스러운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무엇보다 진보적 개혁과 보수적 개혁을 한꺼번에 해야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는 성장 엔진을 바꿔 끼워야 하는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는데, 좌우측 엔진을 동시에 교체해야만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원장의 이런 조언은 한국 경제의 대표적 원로이자 중도 실용주의 인사로 손꼽히는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의 소신과 맞닿아 있다. 박 전 총재는 최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한국은 성장 잠재력이 계속 떨어지는 성장 위기(보수적 위기)와 성장 과실이 가계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분배 위기(진보적 위기)가 겹쳐 있다”며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성장 개혁과 분배 개혁을 패키지로 묶어 같이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는 못 속이는 걸까. 박 원장의 부친이 바로 박 전 총재다.

박 원장은 “좌우 개혁을 동시에 추진하면 양쪽이 모두 좋아할 가능성보다는 싫어할 가능성이 높다”며 “제대로 된 구조개혁에 나서면 국민과 언론이 정부를 향해 박수를 보내줘야 한다. 그래야 구조개혁이 힘을 받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한국개발연구원에서 ‘경제위기 10년: 평가와 과제’라는 제목의 1997년 외환위기 ‘백서’를 만든 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에 변화하지 못하면 결국 위기를 맞게 된다는 게 외환위기가 주는 시사점”이라면서 “고통스럽더라도 한국 경제가 구조적 모순점을 해결해 나가는 구조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미래연구원은 국회의장 직속의 출연 연구기관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전략을 연구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설립됐다.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은 물론 여야 정파를 뛰어넘는 중립성을 강조한다. 박 원장은 “미래연구원 초대 원장이자 학자로서 소원은 한국 사회의 합의 형성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라며 “좌우를 뛰어넘는 합의 형성 도출이 목표니만큼 연구원의 중립성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가치”라고 밝혔다.


외환위기 백서를 썼던 장본인으로서 당시 지목했던 과제 중 아직까지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으로 작동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백서 작성 당시 김대중 정부는 기업·금융·노동·공공 등 이른바 ‘4대 부문 개혁’을 강도 높게 밀어붙였다. 부문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부족함이 있다. 기업의 부실이나 금융의 건전성 측면은 많이 좋아졌다. 금융의 자율성이나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는 아직도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의 핵심이다. 공공 부문의 과도한 역할도 여전히 큰 문제다.”

한국 경제가 반면교사 삼을 점이 있나.

“우리가 외환위기를 맞았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된다.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에 변화하지 못하면 결국 위기를 맞게 된다는 점이 가장 큰 시사점이다. 성장엔진을 갈아 끼워야 할 타이밍인데, 이를 교체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재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의 핵심이다. 1997년 당시 위기가 경종을 울려줬지만, 충분히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했다.”

새해 한국 경제가 위기를 맞게 될까.

“당장 한국 경제에 위기가 닥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뭐든지 타이밍이 중요하다. 성장엔진을 교체해야 할 때 못 하면 위기가 닥쳤을 때 크게 흔들리게 된다. 1990년대 초에도 성장엔진 교체 얘기가 많았는데, 몇 년간 허송세월하다 보니 외부 충격이 조금 가해지자 바로 경제위기가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5~10년 사이 그런 위기가 또 올 수 있다. 지금 구조적 모순점 해결을 시작하지 않으면 다시 1997년과 같은 경제위기를 겪을 수 있다. 더 미룰 때가 아니다.”

‘정부 주도의 투자를 통한 성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외환위기는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내용이 백서에 있다. 한국 경제의 성장 전략은 여전히 국가 주도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성장 전략 측면에서 보면 정부의 역할은 좀 축소돼야 한다. 반면 성장의 과실을 재분배해야 하는 측면에서는 정부의 역할은 더 강화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재분배 역할보다는 성장에 더 많은 재원과 힘을 쏟고 있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

“성장 측면에서 정부는 규제라는 통제 수단을 통해 힘을 발휘한다. 또 재원을 나누는 권한으로 힘을 쓴다. 지금은 이 두 가지 모두 과잉이다. 규제도 너무 많고 지원도 과도하다. 기업, 지방, 공공 부문, 금융기관, 심지어는 대학까지 정부가 과도하게 통제하려 한다. 이걸 줄여야 한다. 앞으로 성장은 생산성이 주도하게 된다. 생산성은 창의에서 나온다. 창의는 자율에서 시작된다. 과거처럼 명령을 통해 노동과 자본을 늘려 생산성을 뽑아내는 시대는 지났다. 정부는 통제를 줄이고 자율을 강화해야 한다. 규제완화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동기부여를 가로막는 과도한 지원도 줄여야 한다. 지금 한국 경제에는 한계기업, 좀비기업이 너무 많다. 반면 재분배에 있어 정부의 역할은 아직도 부족하다. 세금을 재분배하고 정부의 재정 지출이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쪽으로 더 강화돼야 한다.”

 
1998년 6월20일 전국금융노련 조합원 300여 명이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강제적 구조조정 저지 및 고용안정 확보 결의대회’를 마친 뒤 명동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 연합뉴스

 

한국은 ‘규제 공화국’이라는 비판도 많다.

“규제는 공무원들이 권한을 놓지 않으려는 기득권 차원에서, 또 공직자들이 면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면피용 규제의 경우 개인의 책임을 보다 강화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미국의 호수에는 ‘당신의 책임하에 수영하라’고 쓰여 있는 반면 우리는 각종 규제를 만든다. 결국 각종 규제들은 기득권화되기 쉽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은 책임져야 하지만, 모든 위험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져야 한다는 인식은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또 지금의 사전적 규제를 사후적 규제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은 위법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다. 하다못해 과속 벌금도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적다. 처벌을 강화해야 사회에 신뢰가 생긴다. 사회의 신뢰를 깨면 강력한 처벌이 뒤따른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관치금융’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관치금융은 비공식적으로 이뤄진다. 문서가 남지 않아 정부는 책임을 피하게 된다. 책임 없는 의사결정이 제대로 된 판단을 가져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관치금융은 금융기관의 역량도 떨어뜨린다. 금융기관 스스로 기업 생사를 판단할 역량을 키워야 하는데, 모든 결정을 정부가 하니 실력을 키울 기회가 봉쇄된다. 무엇보다 관치금융은 정부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관치금융은 정부의 결정에 수긍하지 않고 ‘로비가 부족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정부의 신뢰를 약하게 만드는 구조적 모순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부가 구조조정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맞다. 정부로서는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늦추면 여러 부작용이 생긴다. 생산성 향상은 새로운 기업이 생태계에 진입해야 생기는데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기업들이 저가 수주 등으로 시장 질서를 왜곡하면 물 전체가 흐려지게 된다. 정부의 한정된 재원이 건강한 유망 기업이 아닌 엉뚱한 곳에 몰리는 부작용도 생긴다. 건강한 적자가 생존하는 생태계가 아닌 좀비기업, 한계기업이 판치는 생태계에서는 성장엔진을 갈아 끼울 수가 없다. 1997년 이후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해 그나마 2000년대 이후 한국 경제는 도약할 수 있었다. 구조조정은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하고 나면 도약할 힘이 생긴다. 정부의 구조조정 관련 의사결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지금보다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가 곧 집권 3년 차를 맞는다. 어떤 점에 주력해야 할까.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을 바꾸는 개혁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인기 없고 즐겁지 않은 고통스러운 일을 몇 년간 해야 한다. 그래서 정부는 진보적 개혁과 보수적 개혁을 패키지로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에는 기업 구조조정, 노동개혁과 같은 좌우 개혁이 섞여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부는 한쪽의 개혁에만 신경을 썼다. 한 방향의 개혁만 강조할 경우 국론이 분열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좌우개혁에 동시에 나설 경우 진보와 보수진영 양쪽에서 좋아할 가능성보다는 모두가 싫어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여기서 국민과 언론이 해야 할 일이 생긴다. 고통스럽지만 해야 할 일을 하는 정부엔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줘야 한다. 미래를 위한 개혁이 성공하려면 이런 정부의 진정성에 박수를 쳐줄 여론이 꼭 필요하다.”

소득주도성장으로 대표되는 진보적 개혁에 대한 반발이 점점 커진다.

“분배를 강화하는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노동 분배를 강화하고, 수출보다는 내수를, 투자보다는 소비를 강조하는 방향은 맞다. 소득주도성장의 3대 축이라 본다. 이런 방향을 소득주도성장이라 부른다면 이건 해야 한다. 진보적 개혁은 사회 정의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혁신을 위해서도 피할 수 없다. 좌절한 사람에게서는 혁신이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