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느님’ 니퍼트 “1년만 더 뛰고 싶다”
[이영미의 생생토크] 8시즌 동안 KBO에서 뛴 최고의 외국인 투수
지금은 ‘용병’이라는 표현이 사라졌지만 한때 한국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를 ‘용병’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용병’은 영혼 없이 경제적인 이득만을 위해 남의 나라 전쟁에 자원하는 군대를 뜻하는 말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다. ‘용병’이라는 말 속에 차별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외국인 선수’로 불리기 시작했다.
KBO리그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이 더스틴 니퍼트(37)다. 2011년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에 첫선을 보인 후 무려 8시즌을 한국 야구와 동고동락했다. 7시즌은 두산에서, 1시즌은 KT 선수로 뛰었다. 8시즌 동안 니퍼트는 통산 214경기에 나와 102승(51패), 1082탈삼진, 평균자책점 3.59 등을 기록했다. 수많은 외국인 투수 가운데 100승 이상을 달성한 건 니퍼트가 유일하다. 2017 시즌 이후 두산과의 재계약에 실패하고 KT 유니폼을 입게 됐을 때 일부 두산 팬들은 돈을 모아 니퍼트를 위한 신문 광고를 게재하며 ‘야구를 통해 즐거움과 희망을 주던 당신은 푸른 눈의 한국인’이라고 뜨거운 애정을 담아냈다.
그런 그가 2018 시즌 이후 다시 무적(無籍) 신분이 됐다. KT와의 재계약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니퍼트는 졸지에 오갈 데 없는 선수가 되고 말았다. 여전히 한국을, KBO리그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는 ‘니느님(니퍼트+하느님)’ 더스틴 니퍼트. 오랜 시간 쌓은 정만큼 그도, 팬들도 이별을 힘들어한다.
12월1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8 신한은행 MY CAR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포수 부문 최다 득표의 영예를 안은 주인공은 양의지(NC)였다. 시상대에 오른 양의지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해 준 두산 베어스 구단과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던 그는 갑자기 눈물을 보이며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영혼의 배터리’를 이뤘던 니퍼트를 떠올렸다. “아침에 니퍼트 영상을 봤다. 너무 눈물이 났다. 니퍼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니퍼트는 내 마음속의 영원한 1선발”이라고 밝혔다.
양의지가 수상 소감 중 니퍼트를 거론한 배경에는 니퍼트가 어느 인터뷰에서 양의지에게 영상으로 인사를 전하며 폭풍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양의지는 이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니퍼트에 대해 다음과 같은 고마움을 전했다.
“니퍼트와 7년 동안 시작과 끝을 함께했다. 내가 야구를 못할 때부터 모든 걸 공유했던 선수다. 나 역시 니퍼트 덕분에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다. 니퍼트의 얘기에 크게 공감이 돼 니퍼트의 영상을 보면 1시간가량 울었던 것 같다.”
니퍼트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양의지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 이유로 ‘고마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애리조나에서 텍사스로 팀을 옮겼을 때 투수와 포수는 서로를 알고 호흡을 맞춰야 한다고 배웠다. 이후 두산 유니폼을 입고 양의지를 처음 만났을 때 나도 KBO리그가 처음이었고, 양의지도 프로 커리어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이었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시즌이 중반 정도 됐을 때 우리는 상대를 완벽히 파악했고 같은 선상에 존재했다. 마운드에 섰을 때 양의지가 사인을 내면 거의 고개를 흔들지 않았다. 고개를 흔들고 내가 원하는 구종을 던졌을 때 거의 안타를 허용했었다. 양의지는 항상 옳았다. 그는 나보다 나 자신을 더 잘 알고 있는 포수였다. 그런 점에서 양의지는 KBO리그 최고의 포수다.”
니퍼트는 양의지의 존재가 자신의 성공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양의지가 없었다면 KBO리그에서 오랫동안 활약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고향 같은 한국, KBO”
니퍼트는 2002년 신인드래프트 15라운드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유니폼을 입었다. 마이너리그 생활을 이어가다 2004년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했다. 당시 니퍼트는 미국의 유명 야구 전문지, 베이스볼아메리카(BA)가 뽑는 유망주 톱100에 자주 이름을 올리며 관심을 모으는 유망주로 꼽혔다. 그러나 빅리그 데뷔 후에는 기대만큼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애리조나에서 주로 패전 처리 투수로 활약했던 그는 2008년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됐다. 이듬해인 2009년에 선발로만 10경기에 등판, 5승3패 평균자책점 3.88을 기록했다. 월드시리즈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는데 결국에는 텍사스 구단이 니퍼트와의 계약을 포기하면서 팀을 나오게 된다. 이후 니퍼트는 다른 리그를 알아봤고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최종 계약까지 갔다가 막판에 결렬되는 바람에 두산 베어스와 인연을 맺게 됐다.
“내가 두산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어갈 때만 해도 KBO리그에서 8시즌을 보내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처음에는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첫해에 15승을 거뒀다. 정말 기쁘더라. 미국에서 보낸 힘든 시간들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난 어떤 상황에서든 내 손에 공이 있다면 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게 내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니퍼트는 시즌 종료 후 미국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러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고 회상한다. 마치 한국이 고향처럼 느껴졌다는 것. 그는 “진심으로 한국에서 야구하는 걸 즐기고 사랑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니퍼트는 두산에서 7시즌 동안 94승(43패 평균자책점 3.48)을 쌓았다. 첫해 15승을 포함해 4년 연속 10승 이상을 올렸고, 2016년에는 22승 3패 평균자책점 2.95라는 엄청난 성적으로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와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2017 시즌도 14승 8패 평균자책점 4.06을 올렸지만 포스트시즌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두산은 니퍼트와의 계약을 포기했다. 니퍼트는 두산에서 나올 때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떠올렸다.
“어느 것도 영원할 수는 없다. 두산과의 계약 관계도 그랬다. 언젠가는 팀을 떠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2017 시즌 이후가 될지는 몰랐다. 사실 두산에서 좋은 성적을 낼 때마다 일본 프로팀들이 지속적으로 오퍼를 보냈다. 두산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했지만 두산을 떠나기 싫어 거절하곤 했었다. 난 두산 선수들, 팬들을 사랑했다. 그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게 정말 괴로웠다.”
이후 KT와 1년 계약을 맺은 니퍼트. 그는 KT 유니폼을 입고 2018 시즌 마운드에서 두산 선수들을 상대하기도 했다.
“두산 선수들은 내 형제나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타석에 들어선 두산 선수들을 향해 제대로 공을 던지지 못했다. 마운드에서 항상 침착하고 동요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내가 살짝 흔들릴 정도였다. 그만큼 두산과 함께 보낸 7년의 시간은 내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니퍼트는 경기에서 공수 교대할 때 먼저 더그아웃으로 향하지 않는다. 야수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일일이 글러브를 부딪친 다음 더그아웃으로 들어간다. 그 이유를 묻자 매일 경기를 뛰는 야수들에 대한 존경과 자신이 마운드에 섰을 때 뒤에서 열심히 수비해 주는 선수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은 자신만의 표현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퍼트형”…한국 선수들과의 두터운 우정
두산에서는 물론 KT에서도 니퍼트는 젊은 투수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에게 먼저 다가오는 선수한테는 따로 밥을 사며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니퍼트가 한국에서 8시즌을 보낸 밑바탕에는 선수들과의 두터운 우정과 신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두산은 물론 KT에서도 니퍼트에 대한 선수들 평가는 굉장히 후했다. 니퍼트를 ‘퍼트형’이라고 부르며 따랐고 어느 누구도 니퍼트를 외국인 선수라고 국한시키지 않았다.
2018 시즌을 두산이 아닌 KT에서 보낸 것과 관련해 니퍼트는 돈이 아닌 야구를, 선수생활을 지속하고 싶었기 때문에 KT 유니폼을 입게 됐다고 말한다.
“작년(2017년) 이맘때 쯤, 크리마스를 보내고 연말을 맞이할 때까지 나를 원하는 팀이 나타나지 않았다. 절망스럽더라. 몸 상태는 선수생활을 더 이어갈 수 있는데 팀이 없다는 건 엄청난 아픔이었다. 그렇게 2018년 1월을 맞이했다. 당시 은퇴를 떠올려야 할 상황이었다. 그때 KT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두산을 떠나는 건 슬펐지만 내게 야구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도록 기회를 준 KT에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었다.”
공교롭게도 니퍼트는 다시 무적 신분이 됐고 2018년 크리스마스를 팀을 찾는 시간들로 보내야 했다. 정확히 1년 만에 똑같은 상황이 재연된 셈이다.
니퍼트는 KT에서 외국인 선수 최초로 100승을 달성했다. 지난 6월29일 수원 NC전에서 7이닝 동안 110개의 공을 던졌고 팀이 7대3 승리를 거두며 KBO리그 역대 30번째 100승 투수이자 최초로 통산 100승을 달성한 외국인 선수가 되었다.
“나는 KBO리그에서 이룬 기록들을 보고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신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선수구나, 좋은 구단, 좋은 동료들이 있었기에 이런 기록들이 가능했다고 본다. 100승은 두산과 KT가 아니었다면 존재할 수 없는 숫자들이다. 진심으로 고마웠고 영광스러웠다.”
외국인 선수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는 니퍼트였지만 그도 천적이 있었다. 유독 히어로즈의 박병호한테 약했고 신장이 작은 선수들을 어려워했다.
“한화의 이용규, KIA의 김선빈 등 신장이 작은 선수들은 일반 선수들보다 더 작은 스트라이크존을 형성한다. 그들은 내 볼을 커트해 내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심지어 포수 글러브에 들어간 공까지 꺼내 파울을 만들어낼 정도다. 2011년 KBO리그 첫 해만 해도 나는 5이닝도 던지기 힘든 투수였다. 선수들이 내 공을 계속 커트하는 바람에 파울만 늘었고 투구수가 상승했다. 박병호는 선구안도 뛰어났고 파워도 겸비한 선수였다. 세 선수들은 야구 센스가 남다른 특징이 있다. 날 많이 괴롭혔지만 실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선수다.”
새해에도 야구장에서 볼 수 있을까
KBO리그에서 활약하다가 메이저리그로 돌아간 선수들이 있다. NC 다이노스 출신의 에릭 테임즈(밀워키 브루어스)와 SK 와이번스에서 4시즌을 보낸 메릴 캘리(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한국 야구를 경험하며 질적 성장을 이룬 덕분에 소원했던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이런 부분이 니퍼트한테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했다.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메이저리그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메이저리그에서 매일 경기에 나가는 선수가 아니었다. 나는 두산 덕분에 야구 인생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메이저리그로 돌아갔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 것 아닌가. 최근 KBO리그에 오는 외국인 선수들을 보며 KBO리그 구단들이 추구하는 외국인 선수의 형태가 변화를 이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이 어린 선수들이 한국 무대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KBO리그가 기회의 장으로 바뀐 것은 맞다. 적응하고 경쟁하고 배우면서 외국인 선수들의 실력이 향상되는 부분도 있다.”
니퍼트한테는 1분 늦게 태어난 쌍둥이 동생이 있다. 동생 또한 야구선수였지만 일찌감치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아주 짧은 커리어였다. 프로 입단 후 4~5시즌 정도 뛰고 은퇴한 걸로 기억한다. 구단에서는 동생을 투수로 키우려 했는데 투수와 동생의 특징이 잘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허리와 어깨, 무릎 수술 등을 받는 바람에 일찍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인 아내와 이혼한 후 2016년 한국 여성과 재혼했던 니퍼트. 인터뷰하는 자리에 그 아내와 사랑하는 딸이 동행했다. 니퍼트는 인터뷰 도중 딸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영락없는 ‘딸 바보’ 아빠였다. 한국의 가족들은 니퍼트에게 새로운 동기부여를 제공한다. 그가 한국에서 야구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은퇴 무대가 KBO리그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말하는 니퍼트.
“딱 1년만 더 뛰었으면 좋겠다. 지금 은퇴하기에는 몸 상태가 아주 건강하다. 사람들은 내 나이를 거론하며 은퇴해야 할 시기라고 말하지만 서른일곱 살의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나이를 먹듯이 내 야구도 나이를 먹고 있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마운드에서 건강한 공을 던질 자신이 있다. 지난 시즌 KT가 그랬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새해 선물이 내 야구 인생을 노크해 주길 바란다.”
니퍼트의 바람과 달리 현실은 냉정할 따름이다. KBO리그 10개 팀은 대부분 외국인 선수 영입을 마무리했다. 니퍼트의 에이전트는 대만이나 멕시코 리그를 알아보는 중이다. 니퍼트에게 새로운 팀이 나타날까? 어느 리그에서 커리어를 이어가든 그가 두산 팬들의 영원한 ‘니느님’이란 사실은 변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