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어르신 콘텐츠’, 퇴행일까 판타지일까
《하나뿐인 내편》 《미운우리새끼》 등 이례적 시청률…어르신 시청자 충성도 높지만 효과는 ‘글쎄~’
어르신들이 지상파의 본방 사수 시청률을 좌지우지해 온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상파 시청률이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건 이른바 ‘어르신 콘텐츠’들인 건 그래서다. 과연 이 콘텐츠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퇴행일까, 판타지일까.
2018년 12월23일 방영된 KBS 《하나뿐인 내편》은 무려 36.8%(닐슨 코리아)의 시청률을 냈다. 같은 날 SBS 《미운우리새끼》도 예능 프로그램으로는 이례적인 24%라는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물론 과거에는 드라마가 시청률 40%를 넘기고, 예능 프로그램도 30%를 넘기는 게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드라마의 평균적인 시청률이 10% 정도에 머물러 있고, 예능 프로그램 역시 10% 넘기기가 어렵다는 걸 감안하면 이 두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이례적이다.
이런 시청률의 중심에는 어르신들이 있다. 두 프로그램은 사실상 본방을 여전히 사수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콘텐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뿐인 내편》은 KBS의 주말드라마가 오래도록 확보해 온 보수적인 시청층을 그대로 겨냥하는 전형적인 가족드라마다. 아버지가 아버지라 말하지 못하고 딸을 옆에서 바라보며 ‘하나뿐인 내편’이 돼 준다. 그가 아버지라는 걸 알아챈 딸이 이제는 아버지의 ‘하나뿐인 내편’이 돼 주는 전형적인 신파 설정이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큰 동력이다. 드라마가 너무 클리셰를 반복하고 뻔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시청률은 고공행진을 이어간다. 그 시간만 되면 채널을 고정시키는 열성 어르신 시청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운우리새끼》 역시 그 성공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엄마들이다. 마음같이 살아가지 않는 아들을 관찰하며 이런저런 수다를 곁들이는 엄마들이 있기 때문에 같은 마음을 가진 어르신들의 관심을 만들어냈다. 물론 엄마들의 보수적인 결혼관 같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인터넷은 비판적인 목소리로 가득 채워지지만, 역시 시청률은 여전히 오른다. 어르신 층을 공고하게 잡아뒀기 때문이다.
월화드라마를 앞서는 《가요무대》의 힘
시청률표가 보편적인 시청자들의 호응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건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일요일 낮에 하는 《전국노래자랑》이 10% 시청률을 꾸준히 내고, 월요일 밤 《가요무대》의 시청률이 화제성이 뜨거운 월화드라마들을 앞서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현재 젊은 세대들이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옮겨가는 상황 속에서 점점 시청층이 ‘고령화’되는 지상파의 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주 시청층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들을 겨냥한 콘텐츠들을 내놓으면 시청률은 가져갈 수 있지만 ‘퇴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해 가긴 어렵다. 무엇보다 고령화된 콘텐츠는 젊은 시청층의 유입을 막고, 이건 시청률과 상관없이 광고 수익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젊어지기 위한 노력을 시도하지만 그게 영 먹히지 않는다. 예를 들어 KBS는 《최고의 이혼》이나 《땐뽀걸즈》 같은 젊은 세대와 현재적 정서를 담아낸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시도했지만, 두 드라마 모두 시청률에서 참패하면서 화제성에서도 밀려났다. 《최고의 이혼》이 4%, 《땐뽀걸즈》는 2%에 머물렀다. 젊은 감각과 정서를 담아내 호평을 받았지만 시청률이 워낙 낮아 화제 자체가 잘 안 됐다. 이런 상황은 현재 지상파 드라마들이 가진 가장 큰 고충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케이블 등을 통해 장르 드라마가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고, 그래서 지상파들은 자신들의 플랫폼에 맞게 변환한 장르 드라마를 내보이곤 있지만, 고정 시청층인 어르신들과 새로 유입돼야 할 젊은 시청층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쁜 형사》처럼 아예 대놓고 19금을 설정해 놓으면 차라리 나은 결과가 나온다. 과거 19금 드라마가 지상파에서는 잘 먹히지 않던 것과 비교해 보면 너무 달라진 상황이다.
《하나뿐인 내편》 같은 전형적인 KBS 주말드라마는 어르신들을 위한 판타지가 된 지 오래다. 젊은 시청자들은 지금 그런 대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집이 얼마나 되냐고 되묻는다. 실제로 1인 가구들이 급증하고 있고, 비혼을 택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게 지금의 현실이다. 《최고의 이혼》 같은 드라마가 오히려 그 현실을 잘 반영한다. 결혼이 지상과제였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이혼이 최고의 선택이 될 수도 있는 시대적 변화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담는 드라마보다 ‘가족 판타지’가 들어간 《하나뿐인 내편》이 더 뜨겁다.
‘가족 판타지’를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퇴행이라고 말하지만, 요즘처럼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네 어르신들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 판타지가 갖는 순기능도 무시하기 어렵다. 사실 대가족 체계 자체가 깨져버린 요즘 같은 세상에 어르신들이 과거처럼 가부장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게다가 부양하는 자식들이 점점 사라지는 현재, 나이 들어서도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의 우울은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바라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나마 이러한 ‘가족 판타지’를 담고 있는 콘텐츠들이 있어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외된 어르신들이 잠시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르신들의 판타지, 고령화 사회가 껴안아야 할 숙제
이는 분명히 ‘가족 판타지’가 갖는 순기능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만한 역기능도 존재한다. 그 퇴행적인 모습들이 그려내는 결혼이나 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풍경들은 자칫 비혼을 부추기는 요소로도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가족 판타지를 실제로 여기는 이들은 별로 없지만, 그 풍경이 주는 부정적인 인상은 여전히 남을 수 있어서다.
가족 판타지를 유지하면서도 퇴행이 되지 않으려는 지상파들의 고민은 그래서 사실상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네 사회가 갖고 있는 고민과 겹쳐지는 면이 있다. 젊은 세대들의 달라진 라이프스타일과 입장들을 들여다보면서도 동시에 어르신들이 가진 고충 또한 끌어안고 그 우울감을 잠시 동안만이라도 잊게 해 주려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물론 달라지고 있는 현실과 그래도 붙잡고픈 판타지를 동시에 잘 버무려, 그 자체가 세대 간의 소통이 이뤄지는 공론의 장이 된다면 더욱 좋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