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록 전남지사, 때아닌 ‘사은숙배’ 과공 논란
김 지사, ‘청책투어’ 간담회서 여당 원내대표에게 예산 많이 줬다며 ‘90도 인사’
2018-12-22 전남 = 정성환 기자
‘김 지사의 깍듯한 인사’···두 개의 시선 “순수 감사표시” vs “중앙 의존적 굴욕인사”
홍영표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김영록 전남지사, 이민준 전남도의회 부의장 등과 ‘청책 투어’ 현장간담회를 갖기 위해 전남도를 방문했다. 민주당 청책투어 총 10개 팀 가운데 홍 원내대표는 호남 팀을 맡았다. 이날 간담회에는 민주당 서삼석 전남도당 위원장을 비롯해 신정훈, 우기종, 윤재갑 지역위원장도 함께했다. 전남 동부권 지역위원장들은 대부분 불참했다. 민주당 ‘청책 투어’는 서민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찾아 다양한 애로사항을 청취,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도록 정부 정책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이해찬 당 대표의 야심작이다. 그러나 이날 간담회는 청책도 아니고 정책협의회도 아닌 말 그대로 ‘어정쩡한 모임’이 되고 말았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원래 취지인 청책은 뒷전이고 시종일관 국비 증액에 기여한 민주당에 대한 사은(謝恩)에 초점이 맞춰지면서다. 실제 전남도 측에서 내놓은 간담회 자료를 보면 거의 모든 내용이 국회단계 국비 증액 현황과 현안 사업 건의였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4시께 목포역에 내린 뒤 전남도가 제공한 버스편으로 막바로 도청에 이동했으며, 도청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 지사가 꽃다발을 증정하며 환대했다. 오후 4시30분부터 시작된 간담회는 당초 예정 시간보다 30분을 넘긴 저녁 6시께 끝났다. 전남도와 홍 원내대표는 전남지역의 내년도 국비 확보 현황을 공유하는 한편 지역 현안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정부·여당 차원의 지원대책 등을 논의했다. 전남도 기획조정실장의 국비 확보 현황 및 현안사업 설명이 끝난 뒤 마이크를 잡은 홍 원내대표는 전남도 내년 국고예산이 올해 대비 13.5%(6조16억→6조8104억)가량 증가한 것을 언급하며 “전남이 내년도 예산 집행을 잘 해서 조기에 현안 사업과 관련한 성과를 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김 지사는 인사말을 통해 “(국회 심의단계에서 전남 예산이) 파격적으로 늘어났다. 당초 국회에서 증액하기로 한 예상보다 두 배로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며 “이는 홍영표 원내대표와 지역 국회의원인 서삼석 위원장의 적극적인 노력, 더불어민주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 가능했던 성과”라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는 홍 원내대표에 대한 찬사를 곁들였다. “예산 협의차 세 차례나 방문해 괴롭게 해드렸으나 그때마다 (홍 원내대표가) 싫은 기색없이 경청해주시고 예산까지 많이 배정해주셔서 개인적으로 뜨거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김 지사는 중간 중간 도청 간부진 등 참석자들에게 홍 원내대표와 서삼석 도당위원장, 지역위원장 등에게 고마움의 박수를 쳐줄 것을 유도하기도 했다.“도백의 저자세…지역 예산이 중앙 실력자의 하사품처럼 인식되는 후진적 정치인식 키워”
돌발적 상황은 발언 말미에서 일어났다. 김 지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홍 원내대표께서 국정에 바쁘실텐데도… 예산도 많이 챙겨주시고 직접 현장까지 찾아주셔서 격려해주시니 대단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홍 원내대표를 향해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현안문제 해결과 예산확보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을(乙)’인 도백보다 ‘집권여당 실력자’ 홍영표 대표에게 힘이 쏠려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아무리 지역 이익을 위한 선의라지만 어떻게 그렇게 인사를 할 수 있냐”며 김 지사가 ‘과공’한 것이 아니냐는 냉담한 반응도 나온다. 한 참석자는 “대폭적인 예산 증액에 기여한 홍 원내대표에게 감사의 말을 앉아서 자연스럽게 전해도 될텐데 굳이 일어나서 허리 굽혀 인사하는 바람에 적잖이 당황했다”고 말했다. 전남도 측은 조심스러워하면서도 “김 지사는 평소 하던 대로, 습관처럼 인사를 했을 뿐”이라며 “제3자 입장에서는 굴욕적 인사로 비쳐졌을 수도 있겠지만 현안사업에 대한 예산 증액에 대한 순수한 의미의 감사표시 이외에 다른 뜻은 없었다”는 반응이다. 평소 김 지사는 도민들을 접촉할 때도 최대한 예의를 갖춰 인사한다. 평소와 다름없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갖췄을 뿐이며 평생을 관료와 정치인으로 살아온 김 지사의 인격과 인성이 드러난 부분이라는 것이다. 김 지사의 이날 행적 차원에서 보면 감사와 추후 정부지원을 염두에 두고 허리를 숙였다는 해명이 틀려 보이지는 않아 보인다.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전남도 집행부의 ‘중앙 의존증이 지나치다’는 따가운 비판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의 한 대학교수는 “김 지사의 이 같은 행동은 지역민의 이익을 챙겨오는 게 단체장의 최고의 미덕이며, 그러려면 중앙의 실력자와 협조해 예산과 사업을 따오는 방법 밖에 없다는 전통적 관념의 산물”이라고 꼬집었다. 이른바 ‘이익 유도의 정치논리’를 답습한 것으로 이 같은 형태는 중앙의존성 폐해만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어 “지역 예산이 여당 원내대표라는 큰 힘을 가진 정치인이 도민에게 내리는 하사품처럼 인식되는 후진적인 정치인식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 김 지사의 저자세가 낳은 가장 큰 문제다”며 “자치단체 스스로의 판단을 넓혀나가 중앙 정부와 정치인들이 좀처럼 꾸려내지 못하는 대중성있는 정책전선을 만들어내서 더 많은 예산을 따내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