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②] 방탄소년단, 글로벌 감성 시대 아이콘
BTS가 그려내는 새로운 글로벌 문화 지형도
방탄소년단이 2018년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 건 단지 글로벌한 인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현재 변화하고 있는 글로벌 환경과 그로 인해 생겨나고 있는 글로벌 감성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적인 면모가 이들에게 있어서다.
‘빌보드 200 차트 1위’ ‘K팝 앨범 최초로 미국 차트 석권’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 빌보드 정상 차지’ 등등. 방탄소년단이 2018년 거둔 성과는 실로 놀라울 정도다. 문체부 장관이 축전을 보내고 이례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축하메시지를 보내더니 심지어 문화훈장까지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외국의 유명 쇼에 출연하고, 글로벌 투어 공연장 주변에 며칠씩 진을 치고 있는 외국인 팬들에 대한 외신이 쏟아진다. ‘21세기 비틀스’라는 표현이 나오고, 방탄소년단을 소재로 한 박사 논문이나 연구들이 해외 저널에도 심심찮게 소개된다. 물론 이런 놀라운 결과들은 방탄소년단만의 음악적 성취가 분명히 전제된 일이지만, 그것만 갖고 이 ‘현상’을 설명하는 건 어딘지 부족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방탄소년단은 어떻게 단 몇 년 만에 이런 글로벌 신드롬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탈(脫)경계의 아이콘 된 BTS
스타는 시대가 탄생시킨다고 했던가. 방탄소년단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색깔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시대가 이들을 요구했는지 이해된다. 그것은 이들이 ‘탈(脫)경계’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이 음악으로 뛰어넘은 경계들은 사실상 20세기에 우리가 공고하게 세워뒀던 경계들이다. 국가와 민족, 언어와 인종, 동서양은 물론이고 미국을 중심으로 나눠진 주변과의 경계마저 이 아이돌 그룹은 손쉽게 뛰어넘는다. 우리말 노래를 외국인들이 ‘떼창’하고, 춤 하나로 나눠졌던 것들을 모두 연결해 버리는 힘. 그것도 중심과 변방을 실시간으로 이어버려 어디가 중심이고 어디가 변방이라는 사실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이 거기에는 존재한다. 바로 디지털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글로벌한 힘이다.
그렇게 방탄소년단은 디지털 네트워크가 만들어가는 21세기적 글로벌한 세상을 가장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됐다. 그 안에는 국적도 언어의 구분도 필요 없이, 취향으로 새롭게 묶여지는 글로벌 공동체 문화가 들어 있다. 아미(Army)라는 글로벌 팬덤이 네트워크 세상에서 국가를 뛰어넘어 뭉쳐지고 그것이 힘이 돼 거대한 사회적 활동으로까지 이어지는 놀라운 변화를 우리는 방탄소년단을 통해 경험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자본이라는 모든 구분과 경계를 없애버리는 보이지 않는 힘이 밑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20세기적 경계 구분을 무력화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방탄소년단을 얘기할 때 우리가 이 디지털 네트워크의 힘을 거론하는 건, 그들이 전적으로 이 힘 덕분에 성공했다는 뜻이 아니라 이 새로운 환경을 음악을 통해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아이콘이라는 의미다. 이들을 보면 21세기 글로벌 세상에 피어날 새로운 문화가 어떤 것일까를 예감할 수 있다.
최근 벌어졌던 멤버 지민의 이른바 ‘광복 티셔츠’ 논란은 방탄소년단이 21세기 글로벌 문화의 아이콘이라는 사실을 방증한 셈이 됐다. 방탄소년단이 일본에서 공연할 때, 한 일본 극우단체 일원이 벌인 1인 시위는 구시대 및 현시대의 충돌과 그 결과를 명확히 보여주는 장면처럼 보였다. ‘광복 티셔츠’를 ‘원폭 티셔츠’라 외치는 그 1인 시위자가 그 일대를 가득 메운 일본 아미들 속에 섬처럼 고립돼 있는 그 풍경은, 이미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자신들만의 21세기 글로벌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도저한 흐름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걸 오히려 잘 보여줬다.
일본 우익 매체들이 마치 일본 진출 성공의 지표처럼 거론하던 《홍백가합전》에 K팝 가수들을 배제시켜야 한다는 얘기도 이제는 구시대적 발상이 됐다. 몇몇 방송사들이 독점적 권력을 갖고 있던 시대에나 통할 그 이야기는, 이제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에는 공허한 발언이 됐기 때문이다. 《홍백가합전》에 나가지 않아도 방탄소년단의 공연장에는 알아서 팬들이 모여든다. 저들끼리 SNS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면서.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국지적인 경계와 분쟁, 청산되지 않은 역사들 같은 해결해야 할 구시대의 유산들이 산적해 있다. 그래서 이를 뛰어넘는 방탄소년단 같은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이 등장할 때 민감한 사안들은 마치 반작용처럼 튀어나온다. 그래서 경계를 무너뜨리고 디지털 세계로 흘러가는 문화의 흐름들이 생겨나지만 아날로그 세계는 이를 물리적으로라도 막으려 역류한다. 한·일 관계는 물론이고, 한·중 관계에서 최근 몇 년간 벌어졌던 사드 문제도 이 흐름을 그대로 드러냈던 사건들이다. 이것은 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제이기도 하다. ‘원폭 티셔츠’라 부르던 것을 우리가 ‘광복 티셔츠’라고 부르는 프레임은 과거 민족주의적 관점이 여전하다는 걸 말해 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방탄소년단 같은 탈경계의 존재들이 음악을 통해 자신들의 영역으로 많은 경계들을 흡수해 버릴 때, 이 티셔츠가 ‘원폭’도 ‘광복’도 아닌 ‘평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될 날도 열리지 않을까.
우리도 뛰어넘어야 할 민족주의적 관점들
2018년 방탄소년단이 냈던 최신곡 《IDOL》을 잘 들여다보면 이들이 꿈꾸는 세상이 얼마나 문화적으로 열려 있는지 발견할 수 있다. 아이돌이든 아티스트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가사에도 등장하듯 그 이미지의 경계선을 훌쩍 뛰어넘는 이들의 음악은 팝의 주류 장르라 할 수 있는 EDM에 힙합을 얹은 데다, 심지어 국악 같은 민속적이고 문화적인 색채까지 더했다. 뮤직비디오가 보여주는 아프리카 사바나의 분위기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북청사자놀음이 기묘하게 잘 어우러지고, 그 정글의 아날로그와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된 사이버 공간이 자연스럽게 엮어진다. 그 속에서 방탄소년단은 무수히 많은 이들과 함께 군무를 춘다. 모든 게 열린 이 세상 속에서 하나로 어우러지는 글로벌 축제가 이미 시작됐다는 걸 보여준다.
방탄소년단이 음악과 인기로 보여주는 글로벌 축제의 풍경들은 어느새 여러 대중문화의 현상 속에서 그 징후들을 보이고 있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스트리밍 업체가 국내의 제작자들과 손잡고 글로벌 콘텐츠를 생산하는 풍경이 그러하고, 유튜브 같은 거대 SNS 업체가 무수한 1인 크리에이터들을 탄생시키며 기성 방송가의 헤게모니를 무너뜨리고 있는 풍경이 그러하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여전히 방탄소년단을 민족주의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며 국가적 자긍심을 높여준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건 우리가 이들의 현상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오히려 K팝 아이돌로서 한국 국적을 가진 방탄소년단이 아니라, 글로벌 감성 시대의 아이콘으로서 이들을 바라보고 그들이 보여주는 탈경계적인 문화적 현상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이들이 왜 2018년을 대변하는 인물이 됐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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