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2019년, 김정은 속내 편치 않은 까닭은…

[손기웅의 통일전망대] 북핵 대북제재로 경제 부흥 더뎌져…文정부에 대한 서운함도 표출

2018-12-21     손기웅 한국DMZ학회장·前 통일연구원장

얼마 전까지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화제였다. 만약 김 위원장이 방문했다면 2018년 한반도 정세 변화, 남북관계 개선의 화룡정점(畵龍點睛)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실현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어찌 됐든 김 위원장 입장에선 조만간 발표할 신년사가 화두다. 2018년 군사적 모험주의를 탈피, 평화공세로 나서면서 김 위원장은 국제정치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세 차례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 개최, 다양한 접촉과 교류로 우리가 북측 고리에 꿰이도록 했다. 동시에 한·미 군사훈련도 중단·축소시켰고, 비무장지대(DMZ) 일대의 긴장완화도 만들어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 등 선제적 조치를 취하고 미국인 인질을 풀어주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하지 못했던 북·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세계 최강인 미국과 일대일로 대화하는 무대도 연출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도 세 번이나 만나 대미 압박에 대비한 원군도 확보했다.

고위 대표단 파견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관계도 어느 정도 다져놓았다. 그 결과, 중국과 러시아발(發) 대북제재 완화 요구가 나오게 했고, 북·중, 북·러 경협도 다소 활기를 띠어 경제의 숨통을 트이게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2018년까지다.

당초 야심 차게 추진했던 평화공세의 핵심목표는 경제난 극복이다.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한 대북제재 완화, 남북경협 재개와 확대가 궁극적인 목표였다. 이를 위해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경제건설 집중 노선’을 새 전략노선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다르다. 통 큰 결단은 미국의 인정을 받기는커녕 더 많은 것을 요구받고 있다. 더군다나 제재 완화 기미는 아직 요원하다. 북한 입장에서는 평양에까지 초청해 큰맘 먹고 5·1경기장에서 대중연설을 할 기회를 주었던 남쪽의 문재인 대통령도 마뜩찮게 생각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설득해 최소한 관광의 물꼬라도 터주었으면 했던 기대감은 산산이 부서졌다.

 
2018년 1월3일 서울 시민들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보도하는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 AP 연합

 

새해, 金의 마음은 더욱 다급하다

경제난 극복은커녕, 그의 권력을 받쳐주고 있는 당·군·정 엘리트들의 기득권을 유지시켜줄 외화와 물자 획득도 현재로선 쉽지 않다. 어쩌면 김 위원장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정책 변화, 성과가 미진한 노선 변화에 기득권 세력이 과연 언제까지 자신을 지지해 줄까. 원산 일대에 있는 것 없는 것 다 쏟아부어 대대적으로 조성한 관광단지에 파리만 날리게 되면 과연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까.

미국은 물론, 남쪽에 대한 불만은 북한 권력 내부에 당연히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난과 경제제재가 지속될수록 불만세력의 목소리는 커질 것이다. 이들 불만세력은 외부에 원인과 책임이 있는 것으로 주장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김정은 위원장은 그들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1985년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펼쳤던 개혁과 개방이 당시 국민들이 원했던 만큼의 진전을 보이지 않자 소련 내부에서는 큰 소요가 일어났다. 새로운 노선에 불만이었던 보수 강경파들은 1991년 8월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 여파로 그해 12월 고르바초프가 물러난 역사적 사실을 김 위원장은 유념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그동안 해마다 북한 지도자가 발표하는 신년사를 분석한 후 이를 토대로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젠 달라져야 한다.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우리가 원하는 내용이 담기도록 노력해야 한다.

서울 답방이 불투명해졌다고 해도 연말 즈음에 가서 지난 1년간 김 위원장이 보여준 결단과 노력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평화롭고 정의로운 한반도를 함께 만들어가고자 제안하는 것이 어떨까. 현실적으로 전혀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군사 도발에서 평화로 급전한 북한의 정책 변화를 국제사회가 제대로 인식하고 인정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북한이 지금 바른길을 계속 걸어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한국 정부가 함께 노력할 거라는 내용을 담아 격려해야 한다. 그러면서 북한에만 어려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남한 내부에도 새로운 북한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있음을 밝혀야 한다. 새로운 관계 구축을 위해 남북 모두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함께 가자고 용기를 북돋워야 한다.

합의사항에 대한 이행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2018년 남북은 판문점 선언에서 민족의 중대사를 수시로 진지하게 논의하고 신뢰를 굳건히 하고자 직통전화를 개설토록 했다. 합의문에 입각해 양 정상이 2019년 새해 첫날 첫인사를 나누자고 제의하면 어떨까. 두 사람이 그간의 노고에 서로 감사를 표시하고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향한 좋은 흐름을 더욱 확대해 나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하면 식어갔던 남북 화해 분위기는 다시 고조될 수 있다.


文, 직통전화 통해 남북대화 이어 나가야

평화를 향한 김 위원장의 몸짓이 2019년에도 지속되려면 우리는 새해에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 국내외적으로 말이다. 무엇보다 관계개선과 긴장완화에 의문을 표시하는 세력을 적폐로 몰아세워선 안 된다. 이들과 함께하려는 국내적 노력이 필요하다. 청와대만 앞장서서 돌격하는 대북정책이 아니라,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과 함께하는 대북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어쩌면 이를 비판하는 세력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며 애국자일지 모른다. 남북만의 합의나 선언에 의한 긴장완화와 관계개선에서 나아가 국제사회와 함께하는 신뢰구축으로 진전시켜야 한다. 남북 간의 모든 사안이 미·중·러·일이 펼치는 동북아 국제관계와 맞물려 있음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1981년 서독은 세 번째 정상회담을 동독에서 호네커 공산당서기장과 가졌다. 그로부터 6년 후 호네커가 서독 땅을 밟게 할 수 있었다. 지속적으로 동·서독 관계개선의 불씨를 국내외적으로 살려나간 서독의 저력은 수년 후 결실을 맺었다. 결실이란 뭔가. 철옹성 같아 보였던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통일이 됐다. 그것도 동독 주민에 의해 평화적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