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괴담’ 아니 ‘여중괴담’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스쿨미투라고 들어보셨어요?
무려 1990년대의 이야기다. 이제 막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젊은 평론가가 “여학생들이 너무 예뻐서 정신이 산만해”라고 식사 중에 말했다. 다른 평론가가 “좋겠다, 연애해라”라고 맞장구를 치자 한 시인이 “제자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라고 했고, 그의 “여자인데 어떻게 여자 아니게 봐?”라는 말에 다른 동석자가 “사람으로는 안 보여? 걍 사람이잖아” 이런 옥신각신으로 술자리는 끝나버렸지만, 이때의 분위기는 거의 30년을 돌고 돌아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폭로로 나타났다. 대학뿐이었을까.
서지현으로 시작해 중·고생까지 번진 ‘미투’
2018년은 성폭력이 사회문제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한 해였다. 성폭력의 본질이 실제로는 성을 매개로 권력을 행사하는 폭력, 즉 상대를 내 맘대로 부리는 권력폭력이라는 것도 많이 알려졌고, 그 분야는 전쟁터에서부터 검찰 같은 고위직까지 구분 없이 광범위하다는 것도 많이 알려졌다. 성폭력이 사회로 진출하는 여성들의 첫 발목부터 잡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려준 일의 이름은 #스쿨미투라고 부른다. 여중, 여고생들이 자신들이 겪은 성폭력을 고발하는 일에 붙인 이름이다.
스쿨미투를 전국으로 확산시킨 계기는 서울 용화여고 학생들이 지난 4월6일 포스트잇으로 유리창에 “#WITH YOU, #WE CAN DO ANYTHING, #ME TOO”라는 글자를 새겨 세상에 고발한 일이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학생들을 향한 성차별과 성폭력이 자행되어 온 학교에서 학생들이 용기 있게 이 사실을 유리창 너머로 알려내었고 그 결과 18명의 교사가 징계를 받았다. 트위터에서 #스쿨미투라는 계정을 열고 교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계정의 수는 전국에서 68개교에 달하고 그 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성폭력의 피해자는 학생만이 아니다. 전교조 여성위원회가 페이스북에 개설한 스쿨미투 페이지에 첫 번째 고발 글이 올라온 것은 서지현 검사가 성추행 피해를 폭로한 지 한 달 남짓 지난 2월26일이었다. 고발 당사자는 경기도의 교사로, 교장의 성희롱을 고발한 것이다. 12월19일 현재 페이지에는 98번째 고발이 올라와 있다. 1번에서 98번에 이르는 고발의 글은 몇십 년 전의 사건에서부터 현재진행형인 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춘기 소녀 시절을 악몽으로 만들고 학교라는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을 흉기로 가득 찬 함정처럼 만들어버린 일이 30년 전에도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스쿨미투의 80%가 사립학교에서 나왔다는 점도 눈여겨보아야 할 중요한 지점이다. 사학재단이 운영하는 교육기관은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까지 걸쳐 있지만, 사유재산권을 내세워 교육 당국의 감독을 피해 가는 행태는 다 비슷하다. 입시와 취업의 볼모가 되어 버린 학생들을 언제까지 학교를 재산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맡길 건가를 거국적으로 고민할 때가 아닌가 싶다. 교육부는 학생 안전문제 중 가장 중요한 일을 이 문제라고 생각해야 한다.
《여고괴담6》이 제작준비 중이라고 하는 뉴스를 지난여름에 읽었다. 만일 이 영화가 아직 시나리오 작업 중이라면, 그 내용은 스쿨미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어떤 공포보다도 더 소녀들의 영혼을 잠식하는 일이 성차별과 성폭력이 아닌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