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검증 없이 ‘비판’···청와대는 물증 없이 ‘발끈’
‘김태우 폭로’로 불붙은 청와대 vs 언론 싸움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출신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가 ‘청와대-언론 대리전’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시작은 12월14일 김 수사관이 꺼내든 우윤근 주 러시아대사의 금품수수 의혹이었다. 그 뒤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은 잇따라 그를 인용해 의혹을 제기했고, 청와대는 매번 맞불을 놨다. 급기야 청와대는 언론을 향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금까지 청와대가 인용하거나 반박한 언론 기사 목록은 다음과 같다. △“도로公 사장이 특혜 준 의혹, 靑에 보고”(12월19일 조선일보) △“박형철 靑비서관이 윗선의 지시라면서 盧정부 인사 ‘가상화폐 투자’ 조사시켰다”(12월18일 조선일보) △“靑, 김은경 환경부 장관 찍어내기식 감찰…민간기업인 공항철도 사찰 지시”(12월18일 조선일보) △전 특감반원 김태우 “민간기업 불법 감찰 지시 받아”(12월17일 채널A) △“흑산도 공항 반대하자 찍어내기”…靑 “정당한 직무 감찰”(12월17일 SBS) △특감반, 前총리·은행장 정보도 수집(12월17일 조선일보) △“우윤근 비리 올리자 靑이 나를 쫓아냈다”(12월15일 조선일보) △“與 인사 비위 찾아냈다 쫓겨나”…전 특감반의 폭로 메일(12월14일 SBS)
이들 기사의 공통적인 근거는 김태우 수사관의 주장이다. 이를 뒷받침할 물증은 없다. 즉 지금으로선 의혹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단 뜻이다. 그래도 언론은 청와대 또는 당사자의 반응을 담아 기사를 썼다. 이 와중에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카페를 만들면서 우제창 전 의원 회사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 대해 조선일보는 휴게소를 방문하고 관계자 등을 접촉했다고 한다. 다만 ‘의혹은 사실이 아니’란 취지의 해명만 실렸다.
야당도 김 수사관에게서 자료를 받아 공세를 가했다. 12월19일 자유한국당은 ‘김태우 리스트(첩보 파일 목록)’를 공개했다. 여기엔 조국 민정수석에게 보고됐다는 문서 3건이 포함됐다. 그 중 하나의 제목은 ‘고삼석 방통위 상임위원,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갈등’이었다. 이에 대해 고 위원은 12월20일 시사저널에 보낸 입장문을 통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이어 “지라시와 다를 바 없는 문서를 생산하고, 리스트를 유포해 억측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에 대해 강력한 유감의 뜻을 밝힌다”고 덧붙였다.
“김 수사관 이용해 청와대 공격하려는 것”
김 수사관이 연이어 의혹을 공개한 배경은 본인이 이미 SBS와 조선일보에 밝힌 바 있다. “여권 인사들의 비위 첩보를 여러 차례 보고해 청와대에서 쫓겨났다”는 것. 이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전면 부인했다. 임종석 비서실장도 “본인 비위를 감추고 사건들을 부풀리고 왜곡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유감”이라며 거들었다.
청와대에서 비위 의혹에 휩싸인 김 수사관은 11월29일 검찰에 원대 복귀 조치됐다. 해당 의혹은 근무시간에 골프를 치고 지인의 경찰 수사상황을 물었던 것이라고 알려졌다. 미디어 비평지의 한 기자는 12월19일 “김 수사관이 제시한 의혹과, 본인이 청와대로부터 쫓겨난 배경을 둘러싼 의혹은 별개로 봐야 한다”며 “하지만 지금 언론은 이 두 가지를 교묘히 섞어 기사를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혹을 인용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는 뜻이다.
류한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광주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은 “언론의 의도는 결국 김 수사관을 이용해서 청와대를 공격하려는 것”이라며 “근거 없이 특정인의 주장을 부풀리는 건 통제가 돼야 마땅하다”고 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매체 비평문을 통해 ‘취재하지 않고 폭로를 받아쓰는 관행’을 비판했다. 그는 “(폭로에 대해선) 언론의 확인이란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과 야당이 일방적으로 프레임을 씌웠다는 분석도 있다. 조선일보는 12월17일 “(김 수사관 첩보에 따르면) 특감반 감찰 대상이 아닌 순수 민간인들에 대한 동향과 첩보를 수집해 보고한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대선 당시 ‘불법 사찰과 정보 수집 근절’을 공약했던 것을 결과적으로 어겼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썼다. 이날 김병준 한국당 비대위원장은 해당 보도를 인용하며 “명백한 민간인 사찰”이라고 표현했다.
민간인 사찰은 문재인 정부의 역린과도 같다는 평가가 있다. 과거 정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 쟁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때 민간인 등을 불법 사찰했단 이유로 기소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청와대도 이 점을 유념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김의겸 대변인은 12월18일 “문재인 정부는 국정농단 사태의 원인을 단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민간인 사찰’이란 표현은 이미 언론을 수놓았다.
청와대도 물증 제시 못해…“급 안 맞는 대응”
그럼 청와대가 억울하게 당했다고 볼 수 있을까. 김 대변인은 논란이 촉발된 이후 거의 매일 언론 보도에 대한 입장을 내놓았다. ‘우윤근 비위 의혹’에 대해선 “박근혜 정부 때 검찰이 불입건한 사안”이라 했고, ‘전 공직자의 가상화폐 보유 조사 지시 의혹’을 두고는 “지시를 한 적도, 보고를 받은 적도 없다”고 했다. 역시 객관적 물증은 없다는 점에서 언론의 의혹 제기와 다를 바 없다.
이 와중에 청와대가 오해를 인정한 부분도 있다. ‘민간기업 감찰 지시 의혹’에 관해서다. 민영기업인 ㈜공항철도를 감찰 대상인 공기업으로 생각해 김 수사관에게 조사를 시켰다는 것. 일련의 해명에 대해 “청와대가 과잉 대응하다 화를 자초했다”는 시각이 나오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12월19일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빌려 “왜 6급 수사관에 대해 급(級)이 맞지 않는 대치전선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김 대변인은 해당 기사를 인용하며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언론이 다 같이 더는 급이 맞지 않는 일을 하지 말자”고 요청했다. 앞서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일방적 주장을 받아쓰는 일부 언론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언론에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