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공화국③] 제천화재참사, 상처는 봉합됐는가?

화마 휩쓸고 간 자리엔 여전히 마르지 않는 눈물 자국이…

2018-12-14     김상현 세종취재본부 기자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 그리고 올해 1월 경남 밀양에서 두 건의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총 74명의 시민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안전점검 부실, 초동대응 실패 등 총체적 문제가 드러나면서 당시 정부와 지자체는 신속한 피해 보상과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시간이 지나면 흉터는 남을지언정 상처는 아물게 마련이다. 하지만 1년 만에 다시 찾은 제천과 밀양의 사고 현장에는 여전히 유족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고 있었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12월21일 오후 3시53분. 충북 제천시 하소동에 위치한 9층짜리 스포츠센터 건물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29명이 사망하고 37명이 부상을 입었다. 시간이 지나면 흉터는 남을지언정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다. 하지만 1년 만에 다시 찾은 사고 현장에는 여전히 유족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고 있었다. 1년이 다 돼가지만 보상 문제와 책임 소방관의 징계 여부 문제로 여전히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제천 화재 참사 현장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2017년 12월21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이 망연자실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소방 지휘관 책임은 도대체 있나? 없나?

소방청은 최초 소방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당시 지휘관들의 잘못을 인정했다. 당시 발표문을 보면 “소방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종합하면, 제천복합건물 화재는 초기단계부터 급속히 확산되었고 대응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으며 충북도의 소방통신망 관리가 부실해 진화활동이 원활치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 인정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신속한 초동대응과 적정한 상황판단으로 화재진압과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해 지휘를 해야 할 지휘관들이 상황수집과 전달에 소홀했으며 인명구조 요청에도 즉각 반응하지 않은 부실이 드러났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일 충북소방본부장을 직위해제 했고, 김익수 소방본부 상황실장, 이상민 제천소방서장, 김종희 제천소방서 지휘조사팀장에게 중징계요구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충북 소방본부가 지난 6월 돌연 이들 가운데 이 서장과 김 실장을 소방본부 구조구급과장과 대응예방과장에 각각 발령한 것이 알려지면서 유족들의 공분을 샀다. 이 서장과 김 팀장 등은 당시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 지휘를 소홀히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1월 직위 해제된 후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무한정 직위해제를 유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간부들의 주장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청에서 지휘관의 문제점을 인정했음에도 충북도는 간부들의 항의를 핑계로 징계를 취소한 꼴이 된 셈이다. 유가족 협의회는 즉각 성명을 내고 “직위해제된 소방공무원들의 조속한 징계가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이들이 재난 대응과 구조 업무를 총괄하는 과장으로 복직됐다”며 “비통함과 슬픔을 넘어 치미는 분노에 가슴을 치고 있다”고 밝혔다.


지휘관들 불기소 처분, 유가족은 즉시 항고

유가족들의 분노는 지난 10월18일 청주지검 제천지청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이상민 전 제천서장과 김종희 전 지휘조사팀장에 대해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리자 극에 달했다. 당시 검찰은 “당시 긴박한 화재 상황과 화재 확산 위험 속에서 화재 진압에 집중한 소방관들에게 인명 구조 지연으로 인한 형사상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처분 사유를 설명했다. 유가족들은 즉각 반발했다. 이들은 판결이 있기 이틀 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제천화재참사 당시 무능하고 안이한 대응을 했던 소방지휘관의 책임을 물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을 올렸다. 유가족들은 “화마와 맞서 목숨을 걸고 희생하는 일선 소방관들을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다. 소방청도 인정한 무능한 지휘관들의 책임을 물어달라는 것이다”면서 “이들 지휘관들은 지금도 본인들은 잘했다고 얘기하고 있다”라고 분노를 나타내고 있다. 검찰 불기소 처분이 알려지자 류건덕 제천화재참사유가족대책위원회 대표는 “화재 등 대형사고 발생 때 시늉만 하고 시민을 구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해도 처벌하지 못하는 잘못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이들은 지난 11월29일 소방 지휘책임자 재수사를 요구하는 항고장을 제출했다.

한편, 건물주 이아무개씨는 징역 7년에 벌금 1000만원이 선고됐다. 건물 관리과장인 김아무개씨에게는 징역 5년, 건물 관리부장인 김아무개씨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16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카운터 직원 양아무개씨와 여탕 세신사 안아무개씨는 각각 금고 2년에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120시간이 선고됐다.


소방지휘관에 대한 항고 취하 않으면 보상 않겠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은 지난 1월10일 국회 행안위 충북 제천화재참사 관련 현안보고에서 “제가 법적·행정적·제도적 측면에서 총체적 책임을 지고 사건의 원인 규명과 책임 문제뿐 아니라 유족에 대한 보상도 정부를 대표해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그동안 유가족에 대한 보상 문제는 잘 마무리 됐을까. 충북도의회 더불어민주당 전원표 의원이 충북도의회 정례회에서“제천화재참사와 관련한 보상은 사망자에게 1인당 3800만원, 부상자에 1인당 200만원을 지급한 것이 전부”라고 밝히면서 다시금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날 화재참사 유가족대책위원회는 “지금까지 충북도와 제천시가 피해자들에게 지원한 것은 장례비용뿐”이라면서 “소방기본법에 소방공무원은 지사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다고 돼 있지만, 충북도는 여전히 법적 책임이 없다며 피해배상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국회 행안위 국감에서까지 계속 보상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자 충북도는 뒤늦게 유가족과 보상 문제를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충북도는 지난 11월8일 입장문을 내고 “이 문제를 유가족 측과 협의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등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입장을 낸지 한 달간 협상을 통해 보상금액까지 조율을 마쳐 봉합이 되는 가 했으나 이내 더 큰 암초에 부딪혔다. 충북도가 유가족이 인정할 수 없는 협상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유가족 공동대표 민동일씨는 본지와 통화에서 “충북도가 소방 지휘관에 대한 항고를 포기하지 않으면 보상 문제를 합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라고 설명했다. 민씨는 “소방관 소송 문제는 개인적인 사안인데 왜 충북도가 나서느냐고 묻자 도공무원이기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이 돌아왔다”라며 “과연 충북도가 도민을 위한 기관인지 공무원을 위한 기관인지 의심스럽다”고 토로했다.

지난 11월30일 충북도에서 유가족에게 제시한 잠정 합의문을 보면 합의 이후 모든 민사·형사·행정 관련 이의 제기를 금지하는 조항이 담겨있다. 민씨에 따르면 “애초 11월29일 1차로 받은 합의문에서는 이 조항에 소방지휘관 관련 항고는 제외하는 단서 조항이 있었으나 하루 만에 내용이 뒤집혔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시종 충북도지사는 지난 4월 영결식에서 말한 ‘도지사로서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며 유가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적극 고민해보겠다’라는 말을 왜 했는가?”라고 일갈했다. 또한 “다시 태어나면 대한민국, 아니 충북도에서는 절대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라는 말로 지자체에 대한 설움을 대변했다.

현재 화재가 일어난 건물은 경매를 준비 중에 있다. 제천시는 1차 경매에 참가해 낙찰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천시 관계자는 “건물 소유권을 확보하면 철거하고 문화센터를 새로 건립해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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