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위기①] 추락하는 민주당에 날개는 있나
민심 경고음 듣지 못하는 정부·여당…마음은 이미 2020년 총선 콩밭에
하인리히(Heinrich) 법칙이라는 게 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1920년대 미국 보험사 직원이었던 하인리히가 주장한 내용이다. 단순히 대형 사고를 예측하는 걸 넘어 징후들을 보고 예방할 수 있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단순히 산업 현장뿐 아니라 사회 각 영역에도 적용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치도 예외일 순 없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50% 밑으로 떨어졌다. 단순히 여론조사 수치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여기저기서 “어렵다”는 말이 터져 나오고 있다. 각종 경제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충격적이다. 고용 한파는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쌓여왔던 한국 경제 모순이 사회문제와 뒤엉켜 사회 전반을 침하시키고 있다.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가계 부문 구조적 부실화, 계층 간 갈등 구조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도통 정부의 말이 먹혀들지 않고 있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겠다며 소득주도성장을 고집하고 있지만, 소득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집값을 잡겠다며 강도 높은 부동산 정책을 쏟아냈지만, 서울의 아파트 값은 더욱 급등했다. 문재인 정부의 위기이자,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위기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민주당이 위기 경보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로는 경제문제에 집중하겠다고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여권 내부에선 ‘추락하는 지지율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으로 반등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각종 현안을 잘 해결해 정권을 성공적으로 이끌겠다는 의지보단 2020년 공천장을 받기 위한 구상에 골몰하고 있다. 추락하는 민주당에 날개는 없는 것일까.
경제 위기 프레임에 무능 드러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급격히 달라졌다. 국정 지지율 80%를 넘나들며 고공행진을 벌였던 집권 초반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한국갤럽이 12월4일에서 6일까지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지, 잘못 수행하고 있다고 보는지 물은 결과, 긍정 평가는 49%, 부정 평가는 41%였다. 11%는 의견을 유보했다. 한국갤럽이 매주 실시하는 여론조사 기준으로 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 49%는 취임 이후 최저치다. 이는 평양 남북 정상회담 직전인 지난 9월 첫째 주 같은 조사에서 기록한 49%와 동일한 수치이기도 하다. 물론 역대 정부의 2년 차 지지율에 비하면 낮은 수치는 아니다. 그러나 올해 ‘한반도 훈풍 효과’를 고려하면, 경제 등 다른 분야에선 더 낮은 평가를 받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정당 지지도 조사에선 민주당 40%, 한국당 17%, 정의당 10%, 바른미래당 6%, 민주평화당 1% 순으로 나타났다.
원인은 역시나 경제였다. 한국갤럽 정례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한 응답자의 부정 평가 이유는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49%)이 가장 높았다.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주요 담론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축을 이뤘다. 그러나 이 정책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했다. 구체적인 정책을 드러내지 못한 채 담론에 머물러 있었다. 반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을 성급히 추진하면서 역풍을 맞았다.
이는 예측 가능한 상황이었다. 저성장기에 진입한 한국 경제를 다시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기로 올려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조업의 몰락은 이미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이념과 정책적 차이를 넘어 어느 정부가 들어섰어도 고용 한파는 불어닥쳤을 것이다. 치솟는 아파트 값, 불어나는 가계부채, 갈수록 커지는 소득 격차 문제를 일순간에 해결할 수 있는 정권은 없었을 거란 의미다. 야권의 ‘경제 위기’ 프레임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대처 방식의 무능이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경제 위기’ 프레임에 맞서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지 못했다. 정국 이슈에서 야권이 제기하는 문제에 대응하는 수세적인 입장만을 취했다.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 ‘4대악 근절’ ‘노동 5법’ 등을 제시하며 이슈를 주도했던 모습과는 상반된다. 오히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을 추진하며 예상됐던 역효과에 ‘임기응변식 처방’을 내놓으면서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한반도 문제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민생을 외면한다”는 비판에도 직면했다.
일각에선 정부·여당에 대한 신뢰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미 다수의 국민들은 경제 현실에 대해 직관적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이 상황에서 데이터를 갖고 최저임금과 고용상황의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경제 위기’의 학술적 의미를 설명하며 “위기가 아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내년이면 정책 효과를 볼 것”이란 정부·여당의 말을 신뢰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정책의 신뢰가 추락하고, 그 확신은 국민들 사이에 퍼진다. 이는 곧 문재인 정부의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정부·여당의 무능일까, 외면일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태도는 안일했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경제 투톱의 엇박자를 지적하는 목소리를 외면하면서 버티다가 예산안 처리를 앞둔 시점에 전격 교체를 단행했다. 경제지표들이 최악으로 치닫자 여론의 부정적인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서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그마저도 시기를 놓쳤다. 여기에서 문 대통령은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며 기조를 바꾸지 않았다. 그 결과, 예산안 정국에서 단행된 경제 투톱의 전격 교체는 그 효과를 반감시켰다.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로 구태를 반복했고, KTX 이탈 사고가 나자 국회 출석을 앞두고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사퇴하는 모습으로 무능을 드러냈다.
정치권 한편에선 집권여당의 인식 자체가 국민 체감 정도를 따라오고 있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친문계로 분류되는 민주당의 중진의원과 기자들의 식사 자리였다. 의례적으로 정국 현안에 대한 문답이 오고 갔다. 이 와중에 황당한 답변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지지율 급락에 대한 방안을 묻자 “어차피 지지율은 등락을 거듭하는 것”이라며 “김정은이 서울에 오면 다시 올라가지 않겠느냐”고 답변했다. 비보도를 전제로 만난 사적인 자리였기에 세상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민주당의 안일한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습이다.
청와대 인사들이 차기 공천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의 정책 브레인으로 꼽히다가 현재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 인사는 민주당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의외의 화제를 던졌다고 한다. 그것은 광주형 일자리에 빗대 ‘ㅇㅇ형 일자리’에 대한 기획이었다. 여기에서 ‘ㅇㅇ형 일자리’는 자신이 출마를 염두에 둔 지역을 앞에 붙인 것이었다. 고용 참사라 불릴 정도의 위기 상황에서 정작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이 총선용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해당 인사뿐 아니라 정부와 여당의 주요 인사들은 최근 모였다 하면 2020년 총선 얘기를 나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한 청와대 행정관급 인사는 “청와대 스태프(직원)들이 정신적·육체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경제 분야 쪽은 성과가 없으니 더욱 지쳐 있는 것 같다”며 “민주당에서 온 인사들은 총선 쪽에 관심이 쏠려 있다. 당연히 성과가 좋은 자리만 찾으니 경제 분야는 기피하려는 경향까지 보인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집권여당인 민주당 존재감은 사라졌다. 정부의 성공을 위해 청와대와 여당의 긴장 관계가 필요하다.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면서도 민심을 반영해 궤도를 수정하도록 유도하는 게 집권여당 역할이다. 물론 집권 초반엔 청와대 구심력이 강하게 작동하는 측면이 있지만, 위기 징후가 보일 때는 그 저력을 보여야 할 의무도 있다.
현재 이해찬 대표 체제는 비전만 있을 뿐 전략이 없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전당대회 때 ‘20년 집권 플랜’을 펼쳤다. 당 대표가 된 이후에도 그랬다. 지난 9월 ‘20년 집권플랜’의 청사진을 제시하며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로 4만 달러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11월에 열린 민주당 당원 토론회에서도 “독일·영국·스웨덴의 사회통합정책은 보통 20년씩 뿌리내린 정책이다. 우리는 극우 세력에 의해 통치돼 왔기 때문에 갈 길이 멀다”며 “복지가 뿌리내리기 위해선 20년 이상 (집권해서) 가야 한다”고 밝혔다. 정작 집권을 위해 민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이 대표가 당선된 이후 정치권에선 ‘강한 여당’을 만들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치적인 신뢰 관계가 남다르다는 점을 고려한 분석이다. 실제론 달랐다. 대표 취임 100일을 넘긴 시점에선 성과보다 과제에 무게가 실려 있다. 급기야 12월12일엔 이 대표를 포함한 민주당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이 청원을 올린 이는 민주당 권리당원이었다. 그는 “이해찬 당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100만 당원은 물론 국민들의 생각과는 어긋나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초심 잃은 與, ‘더불어한국당’ 오명까지
정국을 주도하지 못하는 민주당은 여의도 정치에서도 ‘마이너스 정치’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민주당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협치를 강조했다.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여소야대의 정치 구도에서 개혁 입법을 위해선 다른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다른 야당의 손을 잡지 못했다. 오히려 예산 정국에선 자유한국당과 야합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그 결과, 여당과 비슷한 정책 성향을 보였던 정의당, 민주평화당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박지원 평화당 의원은 “지금까지 평화당과 정의당이 없었으면 민주당이 1년간 국회에서 뭘 할 수 있었겠느냐”며 “적폐세력이라며 매일 비난했던 한국당과 손을 잡고 그러한 일(선거제도 개편을 뺀 예산안 처리)을 하며 평화당과 정의당을 배신한 게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예산안 처리 과정에 대해 민주당 내에서도 실책이란 평가가 나온다. 예산안 협상 막판에 한국당은 ‘도농복합형 선거구제’라는 문구를 추가하자고 요구했다. 민주당은 수용하지 않았고, 선거제도 개편 합의를 뺀 채 예산안 처리만 합의했다. 이로써 한국당을 뺀 야 3당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민주당의 한 초선의원은 “당시 협상이 선거구제를 확정하는 것도 아니고, 협상 대상에 도농복합형 선거구제가 들어가도 협상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며 “사실상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지 않기 위한 지도부의 본심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은 밥그릇과 직결되지 않는 개혁안을 후퇴시키는 데 대해선 크게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집값을 잡겠다며 내놓은 9·13 대책 가운데 하나인 종합부동산세 인상안은 국회 처리 과정에서 크게 수정됐다. 정부의 강력한 신호에도 불구하고 연일 아파트 값이 날뛰는 상황에서 부동산 대책 취지가 시행도 해 보기 전에 훼손됐다는 지적이다. 현 정부 출범의 우군으로 여겨졌던 노동계와 갈등을 보이며 개혁 후퇴를 예고하고 있다.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국회의원 세비를 1.8% 인상하며 실망을 더했다. 애초 알려진 2000만원이란 규모는 해당 언론사의 계산 착오에서 비롯됐지만, 이 일로 세비와 의원실 운영경비가 증가한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서영교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12월10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정부에서 만들어질 때 자연인상분에 맞춰서 만들어진 것 같다”며 “저희들도 그걸 찾아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논란이 일자 뒤늦게 세비 인상분 1.8%(1인당 연간 약 182만원)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불과 2년 전, 거리에 모인 시민들이 있다.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뚫고 촛불을 들었다. 촛불 정국으로 인한 조기 대선에서 이들은 민주당을 택했다. 1년 뒤 지방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이 이끌어갈 대한민국은 과거와 다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민주당은 그 기대를 충족시키려 노력하고 있을까. 시민들 마음속 희망의 촛불은 조금씩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만큼 오늘의 상황이 더욱 춥게 느껴진다. 민주당은 정치의 봄을 기다리는 시민들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을까.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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