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과거보다 국가 경제력은 높아졌지만, 국민 개인의 삶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맞벌이를 해도 노후 설계는 언감생심입니다. 근로시간을 줄이고 있지만 여전히 외국보다 오래 일합니다. '우리는 행복한가?' 이 의문을 가지고 시사저널은 행복을 생각해보는 연말 특집 [우리는 행복합니까]를 6회에 걸쳐 마련합니다. 불행하다는 사람과 행복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우리 삶의 과거와 미래도 짚어보겠습니다. 또 전문가와 함께 행복의 조건을 고민하는 시간도 갖겠습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헬(Hell) 조선’을 살아가는 한국인 중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는 인터뷰 중 몇 번이나 그냥도 아닌 ‘지극히’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40년 넘게 자연과 동물을 관찰하며 살아온 그지만, 연구를 통해 행복을 이해할 순 없었다. 삶을 살아내면서 고집스레 자신을 지켜가자 행복은 어느새 곁으로 다가왔다. 최 교수는 세계적인 석학인 동시에 시대 상황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한국인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삶에 행여 ‘박쥐’처럼 되진 않을까 걱정한다. 연구비 지원 태부족 등 스트레스도 늘 따라다닌다. 그래도 ‘행복하다’는 전제엔 변함이 없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최 교수는 말한다. 아울러 불행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적 노력에 대해선 지지를 보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난관이 있다면 극복해 나가야지, 막아서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답답한 현실 속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사실 (나 같은) 진화생물학자에겐 행복이란 주제가 너무 어렵다. 행복은 진화의 수수께끼다. ‘자연선택’이란 매커니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 아무리 (생전에) 불행해도 자식만 많이 나으면 그 유전자가 후세에 남는다. 그러니 행복은 진화의 결과가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우리는 행복에 목을 매야 하나. 거의 모든 우리 삶에서 관심의 끝은 행복해지려는 것이다.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참 묘한 일이다.1980년대 중반에 코스타리카에서 연구했다. 당시 코스타리카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그런데 국민 평균 수명은 그 당시 세계에서 최고 높은 수준이었다. (현지 연구 당시) 시골에 가면 우리나라 1960년대보다도 더 낙후된 모습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결같이 깔깔거리면서 웃고 살더라. 참 신기했다. ‘돈하고 행복이 꼭 관련 있는 게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당시 코스타리카 산호세 시내에 짜장면을 파는 중국음식점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한국에 살다가 코스타리카로 이사 간 화교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식당 주인이 나한테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하더라. 한국에서는 짜장면을 배달하다가 어깨너머로 만드는 법을 배워 골목 어귀에 중국집을 열어 경쟁자가 된다는 거다. 반면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짜장면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아무리 붙들어도 ‘그냥 난 그릇 닦는 게 좋다’면서 안 배운다더라. 어떤 때는 그냥 안 온단다. 한 달 동안 번 돈을 쓰러 갔다는 거다. 일주일쯤 후면 또 가게 뒷문으로 슬그머니 들어와서 그릇을 닦고 있단다. 중국집 주인 얘기는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이래서 이 모양 이 꼴’이란 거다. 이미 그때 산호세 시내 건물 절반이 중국인들 소유였다. 중국인들은 늘 코스타리카 사람들을 향해 ‘바보같이 일도 안 하고 저게 뭐냐’고 했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과연 누가 더 행복한 것일까’ 생각했다. 이렇게 열심히 돈 버는 중국집 주인이 행복한지, 한 달 그릇 닦아 번 돈으로 놀러 간 코스타리카 사람이 행복한지.”우리나라에서도 ‘과거 못 살던 시절이 지금보다 더 행복했다’는 시각이 있다.“설마 지금 삶이 한국전쟁이 끝난 당시의 삶보다 불행할까. 하지만 행복은 어떤 기준이 있는 게 아니고 당사자가 ‘나는 불행하다’고 하면 그런 거다. 우리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옛날에 굶던 때에 비하면 너희들은 다 잘 먹고 사는데, 뭔가 불행하다고 그러냐’는 얘기는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본인이 불행하다고 얘기하고 느끼면 그건 불행한 거니까. 그래서 지금 젊은 세대가 불행하지 않나. 불행하다, 내가 봐도…….”이런 한국을 개발도상국 등 외국의 많은 사람이 동경한다.“이화여대 석사를 마친 태국인 학생이 찾아와 상당히 충격적인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 동네에서는 또래들의 평생 꿈이 한국 땅을 한 번 밟아보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 땅(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삶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니, 이걸 자기가 태국에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다. 그 말을 들으니 말문이 막히더라. 그 친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시민운동을 하기 위해서. ‘행복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곳의 사람들이 자살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본인이 얘기하면 한국인들이 스스로 목숨 끊지 않을 것 같다고 얘기하더라. 참…….미국에서 15년간 살았는데, 1970년대 말에 갔을 때 곧바로 느낀 게 있다. 거의 모든 미국 사람들이 일본을 동경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아이들이 일본을 너무 좋아하더라. 알고 보니 일본이 게임을 개발하면서 아이들에게 ‘게임의 나라’ ‘환상의 나라’가 됐다. 또 일본은 미국에서 외면받던 일식을 고급 요리로 탈바꿈시키면서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다. 지금은 어느덧 한국이 그런 나라(동경의 대상)가 됐다. 외국에 가서 만난 동료의 자녀들이 한국으로 돌아갈 때 자기를 좀 데려가면 안 되느냐고 말한다. 한국말을 일부러 배우기도 한다. 외국 아이들이 우리나라를 엄청 좋아하는 거다. 그럼 우린 행복해야 하는데 왜 그렇지 않을까.” 물론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한국인도 있다. 주변에서 믿지 않거나 안 행복할 거라 의심하니 문제지만.(웃음)“난 내가 생각해도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지극히 행복하다. 굶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어느 정도 지위도 얻었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주변의 나 같은 사람들을 보면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 많은 한국인들이 행복의 분모를 너무 크게 설정하는 탓에 불행한 측면도 있을까.“그렇다고 본다. 특히 우리나라 젊은이 대부분은 ‘무조건 삼성전자에 들어가야 된다’는 식이다. 그들에게 무작정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논리로 접근해선 설득을 못 한다는 걸 안다. 현명한 논리가 필요하다. 대기업에 목을 매고 들어가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 사는 삶, 자기 삶을 그런 시나리오에 대입해보고, 또 그와 다른 삶을 구상해보면 충분히 더 행복한 삶을 그려낼 수 있다. 누가 더 끝에 가서 성공하겠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과거엔 평생직장 하나를 얻어 살다가 은퇴하고 조금 이따 사망하는 식이었다. 지금은 95세 정도까지 살게 된다. 미래학자들은 한 사람의 직업이 7~8번 바뀔 거라고 예상한다. 대기업에 들어가도 40대 중반이면 대부분 퇴직한다. 아직 (사망까지) 50여 년이 남았다. 그래서 다른 직장을 구하러 다녀야 한다. 이런 삶에서 첫 직장의 비중이 얼마나 될까를 한 번 현명하게 생각해야 한다. 첫 직장이 결코 인생 전체를 담보하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 젊은 세대가 살게 됐다. 자신이 어떤 길로 가는지, 첫 직장 외 나머지 6~7번의 이직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백세시대를 맞아 내 삶의 시나리오를 그려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지가 나올 것 같다.‘성공’이란 차원에서 봐도 그 길이 반드시 평생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대기업에 들어가서 결혼을 서른 살에 했다고 치자. 15년의 결혼생활이 어떨지를 상상해 본다. 집에 잘 못 오고 야근하다 40대 중반에 퇴직해 다른 회사로 옮긴다. 결혼 후 곧바로 아이를 낳았다면 고등학생일 것이다. 아이는 부모와 교감이 별로 없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있으면 아이는 집을 떠난다. 이게 얼마나 행복한 인생일까.”
개개인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개성, 주체성 등을 발휘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이런 현실을 뚫은 본인만의 비결이 있나. “내 인생을 돌이켜 보니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 아니더라.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1970년대 말은 우리나라에서 미국 유학 붐이 불던 때다. 대학 동기 중 절반 이상이 해외 유학을 했다. 환송회를 할 때 나에겐 아무도 축하를 안 해주고 돌아가면서 저주스러운 얘기만 늘어놨다. ‘동물의 왕국’ 하러 미국 간다고 했더니 전부 ‘그런 걸 하러 왜 미국까지 가냐’고 하더라. 교수님들도 다 한마디씩 했다. 오죽 화가 났으면 내가 일어나서 한마디를 했단다. 나중에 그걸 잊어버렸는데 서울대 교수가 되고 나서 후배들이 얘기해 주더라. 내가 ‘두고 봐라. 너희들은 서울대 교수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야겠지만, 나는 경쟁자가 없으니 무혈입성할 거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후 정확하게 그렇게 됐다. 그냥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된 건 아니다. 나는 고집이 있었다. 하버드대에서 공부할 때 지도교수 두 명은 각각 개미 연구의 세계 일인자, 이인자였다. 두 사람이 같이 있으니 그곳이 개미 연구의 메카가 됐다. 전 세계에서 개미를 연구하는 사람은 다 찾아왔다. 거기서 나는 개미 연구를 안 하겠다고 우겼다. 개미가 어떻게 사회성 곤충이 됐는지에 대해선 좋은 이론이 많았다. 그러나 흰개미에 관한 것은 없었다. 나는 ‘흰개미의 사회성 진화 과정을 밝히고 싶다. 이를 위해 흰개미의 사촌격인 민벌레를 들여다보겠다’고 지도교수에게 말했다. 지도교수는 ‘어디 사는지 잘 모르고 잡아본 적도 없는 민벌레 연구를 왜 하려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하고 싶다’며 1년을 매달렸다. 지도교수는 드디어 연구를 허락하며 ‘너처럼 고집이 센 놈은 처음 봤다’고 했다. 연구 허락을 받는 순간 나는 민벌레 연구의 세계 일인자가 됐다. 나는 살면서 남들이 다 해야 된다는 것, 잘 나가는 것 등을 과감하게 거부할 줄 알았다. 민벌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을 무렵 미국곤충학회에서 젊은과학자상을 나에게 주기로 결정했다고 연락 왔다. 상을 받아 그해 연례 학회에서 강연할 기회도 얻게 됐다. 강연장에서 내가 ‘살아있는 민벌레를 실제로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고 했더니 딱 2명이 들더라. 그 정도로 잘 모르는, 별 볼 일 없는 걸 연구하는 바람에 나는 오히려 주목받았다. 개미 연구를 했으면 ‘수십 명 중 한 명’에 머물렀을 거다. 영예로운 상을 받고, 그때부터 일도 잘 풀려나갔다. 세상일이란 게 남들이 다 가는 길로 가는 것만이 답은 아니더라. 요즘에도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다 그렇게(유망한 길로 가라고) 얘기한다. 과감히 ‘난 그런 거 안 할래’라고 말하는 게 쉽지 않더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육십 평생을 살면서 무지무지 좋아하는 일을 무지무지 열심히 하면서 굶어 죽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삶을 명확하게 보자. 돈을 엄청나게 벌었는데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보다 평범하게 밥 먹고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분명히 더 행복하다. 남들이 뭐라 하는지에 상관없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 내가 그 일을 하면서 늘 행복해할 것을 찾아야 한다.”
젊은 세대 중에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는 이들도 있다. 그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아이들을 만나면 ‘가만히 앉아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꿈을) 뒤져라’고 말한다. 책 읽고 묻고 현장에 가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다. 나는 외교관, 앵커, 성우, 운동선수, 연극배우 등등 별의별 분야를 다 찾아 가봤다. 내 삶을 한번 그려본 것이다. 그 덕에 평생 직업으로 동물행동학이란 걸 선택했을 때 후회가 없었다. 내가 이런 삶을 살겠다고 결정한 뒤엔 지금까지 한 번도 곁눈질해본 적이 없다. 그냥 이 길을 너무나 신나게 달렸다. 달리면서 행복하다. 악착같이 찾아라. 그러면 어느 순간 보일 거다. 신기할 정도로 넓은 길이 눈앞에 보인다. 지금 젊은 세대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내가 하는, 처해있는 상황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다.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 것 같은데, 더 좋은 일 하며 사는 친구들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왜 그만큼 안 될까’ 생각한다. 이게 SNS의 죄다. 옛날엔 내 동네에서 어떤 것 하나는, 이를테면 ‘제기차기 하나는 내가 제일 잘한다’는 게 있었다. 그것도 행복이다. 그런데 SNS 시대가 되다 보니 70억 명(전 세계 인구)이 70억 명을 상대로 경쟁하고 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걸 찾기가 너무 어려워졌다. 비교 대상이 무한대로 커지면서 재미가 없어졌다. 인터넷에 보면 나보다 잘살고 잘하는 사람이 넘쳐흐른다. 페이스북을 보다가 ‘쟤는 부모를 어떻게 잘 만났기에 매일 좋은 곳에 가서 사진을 찍어 올리지. 나는 한 번도 못 가봤는데’라고 생각하는 게 불행의 시작이 된다.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됐다. 이런 압박을 어떻게 견뎌내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이슈가 됐다. SNS를 안 할 수도 없다. 하기는 해야 하는데,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나만의 뭔가를 자꾸 찾아 나가야 한다. 모든 것에 다 나를 비교하면서 살면 아무도 못 산다.”행복 사회를 위해 개인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지만, 정부 차원의 국민 행복 대책도 필요하다. 현 정부에서 부작용과 비판 여론을 딛고 소득주도 성장, 일·가정 양립 정책 등을 끌고 가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난 6월27일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방한해 작심하고 말했다. 한국이 7월1일부터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기로 했다고 전하자 크루그먼 교수는 ‘52시간도 길다. 한국이 선진국인데 어떻게 그렇게 많이 일하고 사느냐. 말도 안 된다’며 놀라워했다. 미국이나 프랑스 기준으로 볼 때 주 5일제에 하루 8시간 일하는 게 원칙이다. 그럼 주 40시간이다. 그런데 지금 52시간 근무를 놓고 싸우고 있는 거다. 현 정부가 (국민 행복 증진을 위해) 하는 일들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지, 그걸 하면 안 된다고 얘기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너무나 잔인하게 얘기하는 거다.소득도 마찬가지다. 지금 전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가 미국이고 2위가 우리다. 버는 이들은 너무 많이 번다. 그 사람들은 돈을 다 쓰고 죽지도 못할 텐데 끊임없이 거머쥔다. 남보다 잘사는 것 좋지만, 적당히만 잘 살면 되지 않나. 자원은 한정돼 있는데 내가 혼자 많이 움켜쥐었다? 절대 자랑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부자가 부끄러워야 하는 세상이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사람들에게 ‘신진대사가 지나치게 빠른 박쥐처럼 살지 말고 느릿느릿한 나무늘보처럼 살라’고 조언한 바 있다. 지금도 유효한가. “쑥스럽게도 내가 지금 박쥐 같은데…….(웃음) 너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사실 좀 여유롭게 산다. 우선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다. 낮에는 바쁜데 저녁엔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 거의 매일 오후 6시면 집에 온다. 저녁 먹고 책 보고 글 쓰고 논문도 읽는다. 이어 자정이나 새벽 1시쯤 잔다. 또 다음날 정신없이 일하며 바삐 산다. 그래서 박쥐인 듯 보이지만 나무늘보의 모습도 내 삶엔 끼어 있다. 내가 이런 삶을 누구에게 강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해보니까, 그러고도 살만하다. 대한민국에서 저녁 자리를 가져야만 성공하는 건 아니다. (교수실 책꽂이를 가리키며) 1999년 첫 책 《개미제국의 발견》 이후 내가 관여한 책이 100권이 넘는다. 저녁 약속에 다녔다면 결코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