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행복합니까①] 한국 행복 57위, 개인 행복 50점
먹고 살만하지만 행복엔 물음표 붙이는 국민…행복의 조건 고민할 시점
[편집자주]
과거보다 국가 경제력은 높아졌지만, 국민 개인의 삶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맞벌이를 해도 노후 설계는 언감생심입니다. 근로시간을 줄이고 있지만 여전히 외국보다 오래 일합니다. '우리는 행복한가?' 이 의문을 가지고 시사저널은 행복을 생각해보는 연말 특집 [우리는 행복합니까]를 6회에 걸쳐 마련합니다. 불행하다는 사람과 행복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우리 삶의 과거와 미래도 짚어보겠습니다. 또 전문가와 함께 행복의 조건을 고민하는 시간도 갖겠습니다.
대학을 졸업해 대기업에 입사했고 30세에 결혼한 사람이 있다. 돈을 벌 목적이든 성공을 위해서든 그는 야근을 밥 먹듯 하며 열심히 일했다. 40대 중반에 퇴직하고 회사를 옮겼다. 집과 차를 소유했고, 가족은 건강한 편이다. 부모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탓에 고등학생 자식은 부모와 교감하지 않았고, 어른이 된 후 부모의 슬하를 떠났다. 우리의 모습이기도 한 이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세계 각국의 행복 정도를 측정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자료는 유엔이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다. 국내총생산(GDP), 기대수명, 사회적 지원, 선택의 자유, 부패에 대한 인식, 사회의 너그러움 등을 기준으로 국가별 행복지수를 산출한다. 2018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10점 만점에 5.875점으로 156개국 중 57위다. 2016년 58위, 2017년 55위 등 최근 50위권에서 맴돌고 있다.
한국 전체 국민의 행복도가 세계 57위라면, 개인이 느끼는 행복 정도는 얼마나 될까. 남들이 보기에 부와 명예를 충분히 거머쥔 것 같은 사람이어도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면 그는 불행하다. 이 같은 행복의 척도를 ‘주관적 안녕(subjective well-being)’이라고 말한다. 행복을 객관적 기준이나 타인의 평가가 아닌 주관적 잣대로 결정짓는 것이다.
카카오 소셜임팩트팀과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가 225만여 건의 데이터를 분석한 평균 '안녕 지수'는 50점으로 나타났다. 안녕지수는 2017년 9월부터 현재까지 11개 항목(삶의 만족, 삶의 의미, 스트레스, 정서 밸런스, 즐거움, 평안함, 행복, 지루함, 불안함, 짜증, 우울)에 0부터 10까지 척도로 응답한 사람의 행복도를 의미한다. 남성의 평균 안녕 지수는 56점이고, 여성은 53점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 측은 “행복 차이는 나이와 시간의 영향이 아닌 성장 환경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며 “급격한 경제 성장을 경험한 베이비부머 세대에선 성별 차이가 크지 않은데, N포 세대의 심리적·사회적 특성이 남녀 간 격차를 벌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이 느끼는 불행과 행복의 조건
국내·외 지표로 본 한국인의 행복도는 한국의 경제력에 어울릴 만큼은 되지 않는 것 같다. 대다수 국민은 "매우 불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행복하다고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개인이 느끼는 불행과 행복의 이유를 찾기 위해 취재진은 자신이 불행하다는 사람과 행복하다는 사람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8년째 주방 보조로 받는 월급 220만원으로 살아가는 60세 여성은 첫째 아들 혼수와 막내 취업이 막막하다. 직장생활 3년 차인 30세 남성은 5년째 연애 중이지만 돈이 없어 결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2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24세 여성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 화가 난다. 짧은 순간 행복하다가도 현실은 늘 허탈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경제적 불균형이 불행의 원인으로 보인다.
행복하다는 사람은 무엇에서 행복감을 느낄까. 생후 18개월 때 끓는 물을 뒤집어써 얼굴에 3도 화상을 입은 40대 여성은 가족이 있어서 불행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행복한 나라로 꼽히는 핀란드의 한 여성은 자신이 10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친구들과 춤을 출 때가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개인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이 달라 보인다.
'응답하라 2018'은 30년 후 '소환'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과거의 우리는 행복했을까.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는 과거 민초의 삶이 녹아있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얻었던 이유 중 하나는 물질적으로 풍족하진 않지만, 크게 불행하지도 않았던 당시를 '소환'하려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고속 성장기에 국민은 '열심히 일하면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안고 살았다. 쥐꼬리만한 월급이었지만 가족 부양에 큰 문제는 없었다. '행복의 분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30년 후인 2048년에 '2018년'은 응답하라는 소환을 받을 수 있을까. 돈과 권력을 좇은 탓에 경제력은 성장했다. 그러나 입버릇처럼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어도 본인이 불행하다고 느끼면 불행한 것이다. 한국을 발전 모델로 삼는 동남아시아 국가의 국민은 한국인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부탄의 행복이 우리가 추구할 모델인가
세계 각국은 행복의 기준을 찾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제대국 중 하나인 프랑스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2008년 국가의 총체적 발전과 국민 삶의 질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는 GDP(국내총생산) 대신 국민의 행복을 계량화 한 국민행복지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제안에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경제 성과 및 사회적 진보 측정위원회’를 설립하고 스티글리츠 교수를 위원장으로 위촉해 GDP의 한계를 극복할 새 지표를 찾았다. 그 결과로 GNH(국민총행복)라는 국민행복지수를 개발됐다. 삶의 만족도·평균 수명·주거 공간·에너지 소비량 등 다양한 지표를 취합해 GNH를 산출한다.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현재, 우리도 행복을 생각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히말라야 트래킹을 다녀온 후 부탄 국민행복지수(GNH)를 한국식으로 개발하겠다고 했다. 많은 사람은 부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인식한다.
그러나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타이틀은 국제사회가 부탄에게 부여한 게 아니다. 부탄 정부가 스스로 주장하는 바다. 부탄 국왕은 1972년 경제 발전을 평가하는 지표인 GDP를 대체할 목적으로 국민행복지수 개념을 도입했다. 행복의 조건은 돈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탄은 2015년 국민 7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행복지수 발표에서 국민의 91.2%가 행복하다고 밝혔다.
국제 사회가 부탄을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 다르다. 유엔이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2016년 84위였던 부탄은 2017년 97위로 하락했다. 또 부탄은 인구 대비 세계에서 가장 망명자가 많은 국가로 꼽힌다. 불교국인 부탄은 1990년대 힌두교 신자를 추방하기 시작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07~15년 사이에 부탄 정부의 압력으로 쫓겨난 부탄 국민이 10만 명을 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부탄은 '마지막 샹그릴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국제 사회는 부탄 국민이 행복하다는 데 물음표를 던지기도 한다.
부탄을 행복의 나라라고 칭송할 이유도 없지만, 낙후된 국가라고 판단할 필요도 없다. 다만, 부탄을 높이 평가할 점은 정부가 최우선 목표에 국민의 행복을 뒀다는 부분이다. 단순하게 보면, 한국은 ‘물질적 풍요’를, 부탄은 ‘정서적 안정’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았다. 지금을 사는 우리는 프랑스처럼 행복의 기준을 무엇으로 삼을지 고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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