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해체된 GP 잔해, ‘피스 굿즈’로 부활한다

철원 GP 외벽, 독일 베를린 장벽 옆에서 ‘한반도 평화’ 알리게 될까

2018-12-10     김종일·오종탁 기자

GP(감시초소) 외벽 일부가 독일 베를린 장벽 옆에 설치된다면 어떨까. GP 잔해 일부를 평화의 상징물로 만들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설치한다면 어떨까. GP 잔해에서 나온 철근 등을 녹여 ‘피스 굿즈(peace goods·평화 상품)’를 만들어 상품화하면 어떨까.

남북이 시범철수 대상인 비무장지대(DMZ) 내 GP 파괴 작업(각각 10개소)을 완료한 가운데, 정부가 GP 구조물 일부를 ‘한반도 평화의 상징물’로 부활시키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1월15일 강원도 철원 중부전선의 남측 감시초소(GP)가 해체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GP 잔해로 평화 상징물 만들어 JSA에 전시

청와대와 국방부, 육군 등을 시사저널이 취재한 결과를 종합해 보면, 정부는 남측 GP 1개의 원형을 보존하는 것은 물론 철거한 GP 시설 중 일부를 국내외 역사관, 전시관 등으로 옮겨 보존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국방부와 육군은 물론 청와대 내에서도 GP 구조물 일부를 평화의 상징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안을 놓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검토되고 있는 아이디어 중에는 GP 외벽 일부를 독일의 베를린 장벽 인근에 설치하는 안(案)도 포함돼 있다. 남북의 평화 의지를 전 세계에 가장 효과적으로 알리겠다는 것이다. 해체된 GP 구조물 일부를 ‘한반도 평화’에 대한 세계적 상징물로 널리 알리기 위해선 전시 장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적격지는 베를린 장벽이다.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 같던 베를린 장벽은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무너져 독일 통일을 불러왔다. 남북이 염원하는 미래와 같다.

독일은 앞서 2005년 ‘통일 한반도’를 염원하는 뜻에서 서울시에 베를린 장벽 일부를 기증했다. 이 베를린 장벽은 1989년 독일 통일 때까지 베를린을 가로지르던 실제 베를린 장벽의 일부다.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안에 있는 경의선 최북단 역인 경기도 파주 도라산역에도 냉전시대 동·서독을 오갔던 기차가 전시돼 있다. 역시 독일 정부가 한반도 통일을 염원하며 기증했다. 우리 정부가 독일에 GP 구조물 일부를 기증할 명분이 있음은 물론 독일 정부도 이런 제안이 실제 제시된다면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정부는 GP 구조물 일부를 평화 염원이 담긴 표지석 등으로 제작해 주요 안보시설에 전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안보시설로는 JSA나 용산 전쟁기념관, 유엔(UN) 공원 등 상징적인 장소가 거론된다. JSA에 GP 잔해로 만들어진 평화 상징물이 들어선다면 그 의미는 남다를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정부는 GP 잔해로 한반도 조형물을 제작해 유엔 및 한국전쟁 참전국 등에 기증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임진각의 소망리본 철조망이나 남산 N서울타워의 ‘사랑의 자물쇠’를 벤치마킹한 이른바 ‘평화 소원의 철조망’도 검토되고 있는 아이디어 중 하나다. GP 잔해의 철근을 활용해 평화를 염원하는 철조망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수익금 일부 남북협력기금으로 적립

정부는 GP 잔해를 평화의 상징물로 상품화해 전시나 판매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가령 ‘평화의 메달’이나 GP 잔해로 만든 이니굿즈(문재인 대통령의 별명인 ‘이니’와 상품을 뜻하는 ‘굿즈’의 합성어) 등을 만들어 정부나 군 홍보물품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외국 귀빈이나 참전용사 등에게 증정하는 데 사용한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경우 GP 잔해를 장군에게 수여하는 삼정검에 혼합해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방안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불용처리 예정인 57㎜ 무반동총과 철조망 등을 녹여 한반도 배지나 기념 코인 등을 제작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스웨덴의 한 시계 기업은 세계 각국의 분쟁지역에서 수거된 불법 총기류를 녹여 만든 금속으로 제품을 만들어 그 판매 수익금 일부를 총기 사건 피해자들에게 환원하고 있는데, 이를 벤치마킹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수익금 일부를 남북협력기금으로 적립하는 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실무선에서 강원도 철원 지역 GP 잔해를 평화의 상징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대북정책과 시설 담당 부서를 중심으로 역할 분담을 하고 구체안을 마련하면 청와대에 보고될 듯하다”고 전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초기 단계로 향후 논의 과정에서 세부 활용안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군 소식에 정통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아이디어 취합에 아주 의욕적인 걸로 안다”며 “이에 군도 보조를 맞추기 위해 다각도로 검토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냉전의 섬’ 포탄을 녹이자 ‘평화의 상징물’이 됐다

분열과 전쟁의 상징물을 녹여 평화의 상징물로 빚어내는 일은 사실 전례가 없지 않다. 아주 가깝게는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중화민국(대만)의 갈등이 폭발한 ‘냉전의 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진먼다오(金門島). 중국 대륙 푸젠(福建)성 항구도시 샤먼(廈門)시 코앞에 위치한 대만의 섬이다. 면적 132㎢에 인구 6만8000명의 자그마한 이 섬은 대륙과 마주한 대만의 최전방이다. 이 작은 섬의 3대 특산물은 고량주와 궁탕(貢糖·과자의 일종) 그리고 ‘포탄칼’이다. 포탄칼은 1958년 중국과 대만이 포격전을 벌일 때 중국이 진먼다오를 향해 쐈던 포탄으로 만든 칼이다.

푸젠성 샤먼과 진먼다오 사이를 오간 포격전은 과거 중국과 대만의 대립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두 개의 중국으로 갈라선 지 9년째인 1958년 8월23일 중국이 진먼다오에 포탄을 퍼부었다. 대만 해방을 꿈꾸던 중국은 진먼다오를 향해 첫날 3만 발, 보름간 무려 47만여 발의 포탄을 퍼부었다. 바다를 울리던 포성은 20년 넘게 이어지다 1979년 중국과 미국이 국교를 맺고서야 멈췄다.

양안(兩岸)은 갈등과 반목의 상징이던 이 장소를 경제협력의 상징으로 변모시킨다. 양 정부는 대만에 인접한 푸젠성을 중심으로 ‘해협서안 경제구’라는 대규모 경제특구를 조성했다. 일종의 ‘중국판 개성공단’이다. 양안은 이곳에서 정경분리라는 대원칙 아래 경제협력의 씨앗을 뿌렸다. 포탄(전쟁)이 포탄칼(경제협력)로 바뀐 순간이다.

진먼다오의 포탄칼은 이제 중국과 대만의 화해를 상징하는 기념품으로 바뀌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이제 진먼다오를 찾아 포탄칼을 꼭 사 간다고 한다. 다른 변화도 있다. 또 하나의 특산품인 고량주는 이제 ‘양안평화기념주’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포탄(전쟁)이 포탄칼(협력)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