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챙기려 주판알 튕기는 민주·한국당
민주·한국당, 선거제 기득권 지키려 시간 벌기…소수 야당들 거세게 반발
선거제도 개혁안을 놓고 정치권이 수싸움에 돌입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12월3일 내놓은 세 가지 개혁안을 토대로 여야가 의석수 확보에 유리한 판짜기에 들어간 것이다. 각 당의 셈법이 달라 선거제 개편 논의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개혁안의 핵심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전체 의석수를 정당의 지지율에 의해 결정하기 때문에 비례성이 높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가져갈 수 있어 유권자 투표의 사표화(死票化)를 막고 거대 정당의 의석 과점을 완화할 수 있다.
민주당, 권역별 정당명부제 도입 주장
연동형에 대한 정치권 입장은 양분된다. ‘골리앗’인 거대 양당은 연동형 도입 시 의석수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판단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면 ‘다윗’인 소수 정당은 의석수를 크게 늘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절호의 기회를 잡은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똘똘 뭉쳐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특히 예산안과 선거제도 개혁안을 연계해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정개특위 개혁안에 대한 정치권 입장을 보면 의원 정수를 유지하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바른미래당 입장은 첫 번째 안에 가깝다. 이 안은 ‘소(小)선거구제+권역별 비례제(연동형)+의원 정수 유지’ 조합이다. 의원 정수를 300석으로 유지하고 소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2대1 비율(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100석)로 하자는 것이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원칙적으로는 선관위 안인 200명(지역구) 대 100명(비례대표), 300명 안을 기본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도농복합 선거구제를 포함한 두 번째 안을 반대한다. 양당의 의석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안은 ‘도농복합 선거구제+권역별 비례제(연동형·병립형)+의원 정수 유지’ 조합이다. 의원 정수를 유지하고 현행 소선거구제를 도농복합 선거구제로 전환하며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이 안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3대1(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로 맞추게 된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의원 정수를 확대하는 세 번째 안을 선호한다. ‘소선거구제+권역별 비례대표제(연동형)+의원 정수 확대’ 조합이다. 첫 번째 안과 비슷하지만 의원 정수를 30명 늘려 비례성이 확대된다. 박주현 평화당 수석대변인은 “현재 당론은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 360석 안이지만, ‘우리 실정에 맞는’ 현실적인 안인 세 번째 안이 의미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 유지에 무게를 두면서 소수 정당과 협상할 수 있다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양당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시간 벌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가급적 의원 정수가 유지되는 안에서 연동형 요소를 포함한 권역별 정당명부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 수용 불가 입장인 셈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여론조사에서 국민 50% 이상이 의원 정수를 늘리라고 하면 논의 폭이 넓어지는데 정수 늘리는 것은 안 된다고 하면 국민 의견을 따라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한국당은 의원 정수 유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우리 당은 의원 정수 300명을 유지하는 것(이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야 3당 입장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이 먼저 정리된 뒤 한국당도 입장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에 공을 떠넘기는 형국이다.
소수 정당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제시한 연동형 요소를 포함한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해 “정작 그것이 뭔지 정확하게 말을 못 하고 있다”며 “소위 기득권을 침해당하지 않는 선거제도 방법에 대해서 (민주당이) 계속 연구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총선 공약에서 이야기해 온 것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염두에 둔 것”이라며 “각 당이 주판알 더 이상 튕기지 말고 결단을 내렸으면 좋겠다”며 연동형 수용을 촉구했다.
한국당, 민주당에 공 떠넘긴 형국
거대 양당이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자 야 3당은 4일부터 무기한 농성에들어갔다. 예산을 볼모로 연동형을 관철시키려 한다는 비판에도 소수 정당이 강경 투쟁을 선택한 것은 이번에 선거제도를 개편하지 않으면 2020년 총선거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정개특위가 이달 말까지 논의한 뒤 향후 일정을 연장할 수 있지만 예산안 처리 이후에는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급격히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야 3당은 결의문을 통해 “민주당은 결단을 미루며 시간을 끌고 자유한국당 역시 명쾌한 결단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힘없는 야당이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일 수 있는 정치제도를 위해 예산안과 연계한 것”이라며 “바른미래당은 역사적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예산안 처리와 선거제 개혁을 패키지 딜로 논의하고자 한다”고 제안했다.
소수 정당은 학계에서도 연동형에 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개특위 자문위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정치에서 양당제로 인한 폐해가 있는 만큼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한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도 “국민들의 생각과 선호가 다양한데 선거제도가 제한적이어서 양당제로 가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면 다당제로 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하지만 거대 양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부정적 입장이어서 선거제도 개혁안 처리가 불투명하다. 소수 정당의 희망이 거대 양당의 기득권 지키기에 꺾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