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은 언론이 만들어낸 것”

[인터뷰] 3·1운동 100주년 캠페인 홍보 맡은 日 배우 고바야시 게이코

2018-12-07     공성윤 기자

한·일 관계가 심상치 않은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10월30일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결한 이후, 일본은 연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번 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보는 일본 정부는 대응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우리 외교부 역시 “이번 사안은 법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도덕적 문제”라고 받아쳤다.

이러한 가운데 민간에선 뜻깊은 교류가 이어졌다. 12월6일 서울 마포구 유니세프 빌딩에선 한·일 양국이 3·1운동 100주년을 준비하는 업무협약식을 열었다. 일본 측에선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고바야시 게이코(小林桂子)가 참석했다. 그는 이날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원케이 글로벌 캠페인’의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또 앞으로 일본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기금 조성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3·1운동 거부감? 전혀 없어요!”

3·1운동은 일본의 식민지배에 저항해 온 한민족이 들고일어난 사상 최대 독립운동이다. 그래서 다소 이색적인 측면이 있다. 3·1운동을 기념하는 행사에 일본 사람이 뜻을 같이하기로 결정해서다. 이와 관련해 고바야시는 12월5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3·1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다”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그는 “3·1운동은 항일운동에 앞서 평화운동이라고 생각한다”며 “100년 전에 들끓었던, 평화를 향한 한국 사람들의 열망을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 영광”이라고 했다.

“일본어로 번역된 3·1 독립선언서를 읽어본 적이 있다. 거기에서 반일 감정이 느껴지진 않았다. 대신 한민족이 평화를 이루겠다는 큰 뜻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이 뜻을 일본과 함께 평화를 이루자는 거대한 소망으로 받아들였다. 지금 세계 각국이 서로 갈등을 겪는 가운데, 독립선언서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비전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한·일 관계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고바야시는 되레 기자에게 물었다. “나와 인터뷰하는 이 순간 일본에 대해 나쁜 생각이 드나?” “그렇진 않다.” “바로 그거다. 한·일 관계에 있어 장애물은 언론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 사람들이 직접 만나 대화하다 보면 오해가 풀리고 서로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질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고바야시는 “양국의 정치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민간 교류는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비영리법인 ‘순애국제평화기금’도 이런 취지에서 설립됐다고 한다. 도쿄에 근거지를 둔 이 법인은 문화 콘텐츠를 통해 한·일 관계를 우호적으로 다지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나아가 동아시아 평화에 기여한다는 원대한 꿈도 갖고 있다.

고바야시가 생각하는 평화로운 동아시아의 모습은 그가 제작한 영화 《순애(純愛)》에 잘 나와 있다고 한다. 2007년 일본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불거진 갈등을 사랑을 통해 극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바야시가 직접 각본과 주연을 맡았고, 중국 배우와 함께 촬영했다. 촬영지는 고구려의 첫 수도였던 ‘졸본(卒本·현 중국 랴오닝성 환런현)’이다. 한·중·일 3국과 관련된 요소가 모두 녹아 있는 셈이다.

고바야시는 “우리 세대는 전쟁을 겪지 않았지만, 전쟁이란 게 나라를 갈라놓고 큰 상처를 남겼다는 걸 이해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며 “과거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연이 시작된다”고 했다. 그가 《순애》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메시지다. 이 영화는 모나코 국제영화제, 대만 아시아국제영화제, 세도나 국제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고바야시는 《순애》 속편을 준비 중이다. 제목은 극 중 주인공 이름을 딴 ‘아이카(愛花)’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일본어로 ‘사랑의 꽃’이란 뜻이다. 이 영화에선 우리나라 역사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고 알려졌다. 고바야시는 “한국 삼국시대와 조선시대, 또 남북 갈등도 다룰 것”이라며 “한반도는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데 이 과정에 일본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일본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영화 제작에 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어 고바야시는 “한반도 통일이 가져올 미래가 얼마나 밝은지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며 포부를 드러냈다. 현재 한국을 포함해 일본·중국·유럽 등에서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 시기에 맞춰 개봉할 계획이다. 고바야시는 “이번엔 한국에서도 상영회를 열 예정”이라며 “부산국제영화제 출품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필리핀 마닐라 SM 아레나홀에서 ‘원케이 글로벌 피스 콘서트 2017’ 개회를 알리는 조직위 대표단들 ⓒ 원케이 글로벌 캠페인 조직위 제공


“통일의 미래가 얼마나 밝은지 보여줄 것”

한편 고바야시가 홍보대사를 맡은 ‘원케이 글로벌 캠페인’은 문화를 활용한 국내 최대의 통일운동이다. 국내외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통일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보여주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2015년엔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특별공연을 주최했다. 이 자리엔 문재인 대통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참여했다. 2017년엔 필리핀 마닐라에서 공연을 열었다.

고바야시는 “통일을 이뤄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자는 원케이 글로벌 캠페인의 방향이 내가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과 일치했다”며 “앞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적극적으로 캠페인 홍보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캠페인은 내년에는 북한의 국보급 미술작품을 아우르는 ‘남북평화미술축전’ 등 좀 더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을 선보일 것이라고 한다. 지난 10월19일엔 대한민국헌정회와 손잡고 ‘문화 전방위적 통일운동’을 펼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