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가족 빚, 도의적 책임인가 연좌제인가

‘여론재판’ 지양하고 사례별로 냉정하게 따져봐야

2018-12-07     하재근 문화 평론가

최근 연예인의 가족에게 빌려준 돈을 받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출발은 힙합 가수 마이크로닷이었다. 마이크로닷의 부모가 20년 전 친척·지인들에게 큰 피해를 끼치고 뉴질랜드로 야반도주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마이크로닷은 부정했지만 피해자가 잇따르자 결국 인정하고 사과했다. 바로 이어 힙합 가수 도끼의 어머니에게 20년 전 1000만원을 빌려주고도 아직까지 받지 못했다는 사람이 등장했다. 도끼는 강하게 반발하다 역풍을 맞았고, 결국 피해자와 합의해 논란은 종결됐다.

뒤이어 비의 부모에게 30년 전에 2300만원가량을 빌려줬는데 받지 못했다는 사람이 나타났고, 마마무 멤버 휘인과 배우 차예련의 아버지에게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도 등장했다. 이에 휘인과 차예련이 굴곡진 가족사를 공개하자 그전까지 연예인을 비난했던 대중 여론이 반전된다. 휘인과 차예련은 아버지와 연락이 끊긴 상태이고 그동안 아버지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또다시 아버지의 빚으로 멍에를 지는 것은 너무하다는 동정론이 인 것이다. 그와 함께 연예인이 가족의 잘못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느냐는 연좌제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왼쪽부터)마이크로닷, 도끼, 비 ⓒ 연합뉴스

 

연예인 가족의 빚을 대하는 태도

연좌제 비판에도 채무불이행 피해자는 여전히 줄을 이었다. 마동석의 아버지가 83세 할머니의 노후자금을 갚지 않았다는 주장에 이어, ‘유명 야구선수 추신수 아버지에게 2007년도에 거액의 사기를 당한 피해자’라는 사람의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랐다. 그 후 이영자의 오빠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주장과 소녀시대 티파니의 아버지에게 피해를 당했다는 주장도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장했다. 뒤이어 배우 이상엽의 아버지와 유명 프로듀서팀 멤버 박장근의 아버지에게 돈을 받지 못했다는 주장도 각각 제기됐다. 이슈가 주목받으면서 또 누가 피해 주장에 나설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 사건은 연예인 가족의 빚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할 지점을 남겼다. 먼저 연예인의 태도 문제다. 마이크로닷이 사건 초기에 피해자에게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이 대중정서에 불을 질렀다. 거기에 해명 거짓말 논란까지 겹쳤다. 도끼는 피해자의 말을 하나하나 따지며 공세적인 태도를 보였고 심지어 ‘돈 뭐 1000만원 컴온 맨(Come on man), 내 한 달 밥값밖에 안 되는 돈인데 그걸 빌리고 잠적해서 우리 삶이 나아졌겠냐’며 피해자를 조롱하고 ‘돈 자랑’까지 했다. 나름의 억울한 대목을 어필하면서 힙합 특유의 ‘스웩’과 ‘디스’로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스웩은 돈 자랑 등 자기과시이고 디스는 상대를 폄하하는 것을 말한다. 도끼는 특히 돈 자랑 스웩으로 뜬 스타다.

하지만 돈을 못 받은 피해자에게까지 스웩과 디스로 대응한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바로 이런 태도가 대중의 분노를 자초했다. 도끼는 막상 피해자와 접촉했을 땐 정중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로 합의에 임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섣부른 힙합 스웩으로 타격을 받은 후였다. 이런 일에 연예인이 진정성 있고 책임을 느끼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최선임을 알게 하는 사례다. 비·휘인 등이 그런 태도로 큰 비난을 비켜갔다.

채권자의 태도도 따져볼 지점이 있다. 해당 연예인에게 확실하게 책임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연예인 이름을 내걸고 폭로하는 것이 정당한 태도인가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 차예련은 아버지와 연락이 끊긴 상황에서 아버지의 채권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촬영장에까지 나타나 10억원에 달하는 돈을 갚아야 했다고 한다. 연예인들은 보통 구설에 오르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에 설사 본인이 아닌 가족의 빚이라도 상대가 강하게 어필하면 일단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점을 노리고 일부 채권자가 연예인 이름을 일부러 내거는 경우가 있다.

추신수·이영자 가족에게 피해를 당했다는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까지 올라온 사건도 유명인 이름을 과도하게 내세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물론 이영자 오빠 건에 대해선 피해를 당했다는 측에서 이영자에게 확실하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사실관계가 더 드러나봐야 알겠지만, 지금 단계에선 이영자가 돈을 빌려달라거나 보증을 서겠다고 하지 않았다고 알려졌는데 왜 피해자가 이영자의 책임이 더 크다고 주장하고 적반하장이라며 이영자를 공격했는지 의문이다. 과거엔 원더걸스 예은의 아버지에게 피해를 당했다는 이들이 예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조사 후 예은은 무관한 것으로 밝혀진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처럼 일부 채권자가 연예인을 과도하게 끌어들이는 경향이 있다. 상대에게 상환능력이나 의지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연예인 가족이라는 이유로 돈을 계속 빌려주다가 나중에 연예인에게 책임을 묻는 사례도 있다.

채권자도 연예인을 탓하기 전에 이런 부분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 내심 채무자의 가족인 연예인을 믿고 돈을 빌려줬다며 연예인에게 책임을 묻기도 있는데, 채권자가 마음속으로 믿은 것까지 연예인이 책임을 져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니까 돈을 빌려줄 때는 연예인 가족 같은 것은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채무 당사자의 신용도에만 의거해 판단해야 한다.


문제 있는 대중과 언론의 태도

대중과 언론의 태도도 문제다. 가족의 빚도 연예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일 때가 많다. 최근 연좌제 논란으로 동정론이 커졌지만 그럼에도 책임론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법적으로 가족의 빚을 대신 갚아줄 의무는 없다. 그러자 ‘도의적 책임론’이 나오는데 이것도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마이크로닷처럼 엄청난 피해액이 발생했고, 본인이 그 부당수익금의 수혜자이며, 피해자들이 보는 예능에서 집안 돈 자랑까지 하면서 화려한 연예인 활동을 하려면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추신수·휘인·차예련 등은 부당수익금과 상관이 없는 것으로 보이고, 티파니 등은 아버지와 이미 의절한 상태라고 한다. 이런 경우까지 무조건 도의적 책임을 요구하긴 어렵다. 사례별로 냉정하게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책임과 별개로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특수성이다. 연예인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 대중의 사랑을 받고 큰 수익을 올린다. 아무리 본인 책임이 아니라고 해도 가족 때문에 고통받는 피해자가 있는데 태연히 TV에서 화려한 모습을 보이긴 쉽지 않다. 특히 요즘 관찰예능 트렌드에선 연예인이 얼마나 부유하게 사는지가 수시로 전시되기 때문에 가족으로 인한 피해자를 모르쇠하기가 더 어렵다. 이런 연예인의 직업적 특수성으로 인해 연예인은 가족 빚에 대해 일반인보다 더 큰 책임을 요구받기가 쉽다. 그런 배경에서 앞으로도 ‘도의적 책임이냐, 현대판 연좌제냐’의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