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답방④] 트럼프, ‘金의 서울행’ 마냥 기쁘지 않다

美 정치권 “트럼프, ‘사진 촬영’ 효과 끝난 것으로 안다”

2018-12-06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추가적인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기자는 백악관에 관련 내용을 질의했다. 돌아온 답변은 “기존 백악관의 발표문 외에 더 보탤 것이 없다”였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이 하나 있다. 미 국무부가 해당 보도자료를 발표한 “백악관에 물어보라”가 아니라 백악관과 똑같은 답변을 내놓은 점이다. 사실, 미 행정부가 이 간단한 답변을 내놓기까지는 예전과 다르게 시간이 걸렸다. “코멘트할 것이 없다(No comment)”고 답을 했다가는 청와대 발표를 다소 부정하는 꼴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맞다”고 답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대략적으로 중간을 찾은 셈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러한 답변이 단순히 형식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함축하는 의미가 매우 크다.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모든 언론이 백악관이나 국무부에 남북관계라는 말만 나오는 질문을 던져도 변하지 않은 불문율이 하나 있다. 바로 “남북관계 개선은 북핵 프로그램 해결과는 별개로 앞서갈 수 없다(Cannot advance separately)”는 답변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트럼프 행정부가 매일 똑같은 레코드판만 튼다”고 치부한다. 하지만 이는 ‘선(先)비핵화-후(後)제재 완화’라는 미국의 입장은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남북관계 개선’을 우선하는 문재인 정부와 ‘제재 강화’와 ‘비핵화 우선’에 방점을 두는 트럼프 행정부 간의 근본적인 차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한·미 간의 엇박자’라는 말도 근거 없이 나온 말이 아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엇박자’는 이른바 ‘한·미 동맹’을 강조하고 있는 우리 정부가 애써 무시하려고 해도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없는 노릇이다.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처음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싱가포르 정부 제공


美 “비핵화 구체적인 조치 내놔라” 일관

그렇다면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관한 미국의 속내는 무엇일까. 익명을 요구한 미 행정부 인사는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고 있는 우리가 김정은의 서울 답방을 반대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느냐”며 “그가 서울이든 판문점이든 더 진전된 비핵화 조치만 내놓으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전문가도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비핵화를 더 진전시키겠다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은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러한 선결 조치 없이 남북 정상의 단순한 만남 자체를 백악관은 ‘모멘텀’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외교 소식통은 “남북 정상이 벌써 3차례 회담을 했지만, 워싱턴에서는 ‘그들만의 잔치’로 보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 소식통은 “미국 입장에서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추진도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받아내는 것이 목적이지, 싱가포르에서처럼 더는 만남 자체가 이제는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자체가 평화 프로세스의 ‘모멘텀’이 아니라 북한이 더욱 진전된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내놔야 의미가 있다는 것이 미 행정부를 포함한 워싱턴 전반의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12월1일(현지 시각) 내년 1〜2월 안에 북·미 정상회담 개최와 장소도 세 군데를 검토했다는 발언에 큰 의미를 둔다. 하지만 이도 해당 발언의 맥락을 짚지 않은 확대 해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용기 안에서 뜬금없이 북한 문제를 꺼내든 것은 “중국 시진핑 주석과 북한 문제에 관해 매우 강력하게(Very strongly)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대북제재 강조를 자랑하기 위해서다. 그가 “시진핑 주석과 나는 100% 북한 문제에 함께하기로 동의했다”면서 “그것은 대단한 성과(Big thing)”라고 덧붙인 것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추가적인 질문에 대해 미국은 이미 언급했던 내년 초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장소도 세 군데를 검토했었다”고 답변했을 뿐이다.

대북 협상을 총괄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마찬가지다. 그도 미·중 정상회담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의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에 대한 우리의 책무를 논의했다”고 못 박았다. 중국도 바라는 일부 제재 완화는 고사하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만 강하게 논의했다고 강조한 셈이다.


文 ‘남북관계’ ‘한·미 동맹’ 사이 고민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우리 정부와 대북제재를 통한 북한 비핵화를 강조하는 미국 정부 사이의 ‘불협화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차이점이 드러나는 것이 ‘한·미 동맹’을 손상시키고 보수층에서도 지지를 잃게 할까봐 극도로 꺼리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당국자는 기자에게 “서로 다르다고 자꾸 미국 측에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간의 불협화음에 관해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대목과 궤를 같이한다.

이 당국자는 ‘한반도 평화 진전을 위해서도 미국의 현실을 똑바로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 아니냐’고 반문하자 거듭 불편함과 당혹감을 숨기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부 관계자도 “우리가 발표한 내용은 언론 설명용”이라면서 “각자 발표를 반드시 상대방에게 확인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백악관이 남북관계 개선에 관해 공식 언급한 것이 전무하지 않으냐’는 지적에는 “양쪽 발표가 다 100% 같을 수는 없지 않으냐”라면서 더는 언급을 피했다.

하지만 미 국무부 고위 관료 출신인 워싱턴의 한 외교 전문가는 “트럼프도 이제 ‘사진 촬영’이 효과가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계속 진전이 안 되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단지 정상 간의 만남에만 주력하는 한국 정부는 아직도 미 행정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12월4일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는 정상 간의 만남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고 분명히 한 셈이다. 어쩌면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만을 강하게 추구하고 있는 우리 정부가 이제는 ‘한·미 엇박자’라는 불편한 진실과도 마주해야 할 시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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