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답방①] ‘광폭 정치인’ 金, 남행열차 탈까

南·北·美, 서울 정상회담 수싸움…한반도 비핵화 분수령

2018-12-06     송창섭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答訪)을 앞두고 한반도 화해 무드가 변곡점을 맞은 모습이다. 성사된다면 분단 이후 북한 지도자로서는 첫 서울 방문이다. 지금까지 북한의 최고위급 지도자가 우리 땅을 밟은 것은 올 4월27일 3차 남북 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이 판문점 우리 측 지역에 온 것이 처음이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그런 면에서 엄청난 상징성을 갖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비롯해 역대 정부 때마다 남북 정상회담은 판문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양에서 열렸다. 평양을 방문할 때마다 정부는 북측에 다음 회담은 서울에서 열 것을 제안했지만 그때마다 부정적인 답변을 들어야 했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은 회고록 《피스메이커》에서 “김(대중) 대통령 설득은 간청이라도 하듯 간곡했다”고 회고했다. 2000년 6월 열린 1차 정상회담에서 우리 측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공동선언문에 넣자고 제안했지만, 북측은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2007년 10월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서울 방문을 공식 요청했으나 김 위원장은 사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20일 삼지연공항에 도착한 뒤 영접 나온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연내 서울 답방, 문 대통령이 언급한 말

그런 면에서 북측 최고위 인사의 서울 방문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환기로 볼 만하다. 통일 분야와 관련해 정부 고위급 인사는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우리 측의 우선 과제 중 하나는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관련해서는 남북 간 약간의 온도차가 있었다. 9월19일 발표된 평양공동선언 합의서에는 마지막 6항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로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라고만 돼 있을 뿐 구체적인 시기는 명시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정확히 말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입을 통해 나온 것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서울 방문을 요청했고 김 위원장은 가까운 시일 안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다”며 “여기서 가까운 시일 안이라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올해 안으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남북 정상회담의 정례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지금까지 정상회담은 우리 측이 먼저 요구했으며, 회담은 평양에서만 열렸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서울을 찾는 것은 내년 이후까지 정상회담을 이어가기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 수 있다. 올 들어 진행된 남북 정상회담은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답방 약속 이행은 정상국가를 지향하는 북한의 외교정책과도 맞물려 있다.

중요하게 볼 대목은 합의서에 담긴 ‘가까운 시일’의 의미다. 이는 답방을 위한 분위기 조성과 직결돼 있다. 당초 남북은 올 가을께 정상회담을 열어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한 뒤 연말 서울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열어 종전 또는 평화선언을 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하지만 최근 북·미 간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문 대통령의 통일·안보 핵심참모인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연세대 명예교수)는 12월3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소천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김 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먼저 하고, 이후 내년 1~2월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합류해 종전선언을 한다고 해도 좋다”고 말했다.


뉴욕 회담 취소 후부터 서울행 강하게 요청

김 위원장 답방 움직임이 포착된 것은 10월말부터다. 이때는 미 의회 중간선거 전후에 진행되리라 예상됐던 북·미 정상회담이 차일피일 미뤄지던 시기다. 11월8일 북·미 고위급회담이 취소되면서 정부 내에는 “교착된 비핵화 협상을 위해서도 연내 서울에서 4차 정상회담을 열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북·미 양측은 11월8일 뉴욕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회담을 준비했으나 하루 전날 돌연 취소됐다. 그 직후 미 국무부는 헤더 나워트 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서로의 일정이 허락될 때(when our respective schedules permit)” 회담을 다시 열 것이라고 밝혔다. ‘서로의 일정이 허락될 때’라는 것과 3차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나온 ‘가까운 시일 내’라는 말은 외교적 수사 측면에서 동의어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뉴욕 회담이 불발된 직후인 11월 중순 북측에 김 위원장 서울 답방을 타진했다. 이러한 소식은 대북 소식이 빠르게 퍼지는 중국 베이징 외교가에서도 확인됐다.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한 대북 소식통은 11월말 “한국 정부가 12월 중순경 서울을 방문해 달라고 북한에 공식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그러면서 “현재 베이징 외교가에는 한국 정부가 12월15일을 회담일로 정하고 답방을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남측 요구에 북측은 며칠 후 “북·미 관계에 진전이 없으면,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은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러한 소식은 일본 아사히신문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아사히신문은 12월2일 기사에서 “한국 정부가 비밀리에 특사를 보내, 답방을 타진했지만 북측이 ‘지금처럼 미국이 조선(북한)에 압력을 계속하면 서울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난색을 표했다”고 보도했다. 북측이 김 위원장의 답방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이유는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남측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올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정상회담 직후만 해도 북·미 관계는 예상보다 빨리 진전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미국이 여전히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며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고집하면서 답보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북한은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에 불만만 쏟아내고 있다.

중국·러시아 등 우방을 활용한 외교전도 한계에 다다르면서 북한의 고립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싱가포르 회담 직후 북한은 유엔 상임이사국인 중국·러시아 등을 통해 대북제재를 해제할 계획이었지만,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방 상임이사국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초청하려는 계획도 차질을 빚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중국의 북한 편들기를 비판하고 나선 뒤로 북·중 관계도 소원해진 상태다. 미국과 통상마찰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국 정부에 북한 비핵화는 또 다른 골칫거리다. 중국은 9월9일 북한 정권수립 70주년 기념행사에 시진핑 국가주석이 참석하는 것을 검토했지만, 막판에 서열 3위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의 참석으로 바꿨다. 북한 전문매체인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2월1일 러시아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최근 러시아 정부가 북한 근로자에 대한 비자 발급을 중단하고 근무 중인 근로자들도 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북한 입장에서는 러시아를 활용한 제재 해제도 쉽지 않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 전날인 6월11일 밤 싱가포르 대표 관광지인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식물원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


12월13~14일 서울 답방은 우리 측 희망사항

현재 대북제재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자연스럽게 남쪽을 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은 11월27일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미국과 남조선 당국은 모처럼 마련된 조미(북·미), 북남관계 개선 국면에서 함부로 경거망동하다가는 모든 것이 수포가 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분별 있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통상 북한 정부의 공식 입장은 조선중앙통신이나 노동신문 등을 통해 나오기 때문에 대외선전매체의 보도를 북한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더군다나 이 글은 개인 자격으로 보도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의 의도는 다양한 해석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보도는 우리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남북 철도연결 공동조사에 있어 유엔과 미국의 예외를 인정받은 것과 내년에 치러질 한·미 연합 독수리훈련 범위를 축소하기로 한 것은 우리 정부의 노력인데 북한이 이를 인정하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재 남북은 4월 판문점선언에 따라 핫라인을 구성한 상태지만, 대화채널 용도로 전혀 활동되지 않고 있다.

이후 12월 중순 답방설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정부의 희망사항이 조금씩 내비쳐졌다. 11월30일 일부 언론에서 “정부가 12월13〜14일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추진한다”는 보도를 낸 것에 대해 청와대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 중”이라고 밝힌 것에서 이러한 기류가 읽힌다.

12월13~14일이 답방일로 나온 것은 철저히 우리 쪽 희망사항이다. 12월 중순 이후부터 북한은 줄줄이 국가적 행사가 예고돼 있다. 17일은 김 위원장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기일, 24일은 김일성 주석의 처이자 김정은 위원장 할머니인 ‘김정숙 탄생일’, 27일은 헌법절이다. 30일은 김 위원장이 최고사령관에 오른 날이다. 그리고 이틀 뒤인 1월1일에는 북한 주민을 상대로 신년사가 발표된다. 고영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12월 중순 이후부터는 북한 정부 전체가 연말결산을 하는 시즌이기 때문에 행사가 진행되려면 그 이전에 열려야 한다”면서 “지금 행사가 열린다고 해도 김창선 서기실장이 남한을 다녀가 의전 등을 조율하기에는 시간이 빠듯한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청와대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힌 건 회담 개최의 결정권을 북측에 넘긴 상태며, 사실상 김정은 위원장의 결정만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늦어도 12월10일 이전에 개최 여부가 결정돼야 한다.

현재 정부는 비밀리에 김 위원장 서울 답방을 대비한 의전, 경호 계획 수립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1월29일 경찰 인사에서 원경환 인천지방경찰청장이 서울지방경찰청장에 승진 기용된 것도 이런 해석을 낳게 한다. 원 신임 서울청장은 강원도 출신으로 간부후보생(37기) 출신이다. 전남 태생의 경찰대 출신 청장(민갑룡)에 강원 태생 간부후보생 출신 서울청장으로 경찰 서열 1, 2위를 맞췄지만 그보다는 원 청장의 경력을 더 높이 샀다는 후문이다. 원 청장은 2012년 청와대를 경비하는 101경비단장을 맡는 등 경비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7월까지 강원지방경찰청장을 맡아 평창동계올림픽을 무리 없이 치러냈다. 올 2월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응원단을 이끌고 온 김영남 북한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의전과 경호도 잘 진행했다는 평가다. 경찰 관계자는 “민갑룡 청장 임기(2년) 중 전반기 서울청장에 오른다는 것은 차기 경찰총수와는 거리가 먼 인사”라면서 “서울청장이 통상 1년 단위로 바뀌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번 인사는 김 위원장 답방 대비 성격이 짙다”고 설명했다.


文, 평양처럼 대규모 환영행사 놓고 고민

김 위원장이 서울을 찾기 위해선 여러 가지 난관을 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측에 줄 선물이다. 대북제재가 여전한 상태에서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추진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미국 측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얼마 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에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강력하게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도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정부의 고민은 정작 따른 데 있다. 김 위원장이 서울을 찾았을 때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처럼 대규모 환영행사를 열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 서울 답방에 대한 보수, 진보진영 간 갈등을 최소화시키는 것은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대미 협상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고민도 뒤따른다. 그러기 위해선 북·미 관계 개선이 시급하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2007년 10·4 남북공동선언도 하루 전인 10월3일 6자회담에서 북·미 간 합의가 선행됐기 때문”이라면서 “중단된 북·미 대화가 재개되면 서울 답방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앤드루 김 미국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부국장)이 12월3일 극비리에 방한해 판문점에서 북측 관계자와 회동한 사실이 알려져 주목된다. 앤드루 김은 비밀리에 1차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인물이다. 현재 북측에서 누가 나왔는지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

최근 정부 일각에서 ‘18일 답방설’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그만큼 시간이 촉박하다는 뜻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일 기일 뒤인 18~24일 사이 얼마든지 회담을 열 수 있다. 결국 답방 성사 여부는 김 위원장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정치학 용어인 ‘광폭정치’(대담하고 통이 큰 정치)를 실행한다는 차원에서 전격적으로 서울 답방을 결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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