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지 못하는 출생 ‘버려지는 아이들’

신생아 살해·유기 매년 증가세…아기들에게도 최소한의 인권 보장 ‘입양특례법’ 등 손봐야

2018-12-03     정락인 객원기자

갓 태어난 신생아가 산모의 손에 죽임을 당한 후 버려지고 있다. 지난 11월 한 달 동안에만 전북 익산, 경기 성남, 제주, 경기 안산 등지에서 4명의 아기들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엄마에게 살해당한 아기들. 산모들은 왜 자신의 배 속으로 낳은 아기를 죽이거나 버리는 것일까.

지난 11월22일 아침 전북 익산시의 한 원룸 앞에 쓰레기 수거 차량이 멈춰 섰다. 환경미화원은 원룸 주차장에 있는 쓰레기를 수거하다 검은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탯줄이 달린 신생아의 시신이 들어 있었다. 경찰은 인근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한 여성이 신생아를 유기하는 장면을 확보했다. 그는 해당 원룸에 거주하는 A씨(23)였다.

A씨는 지난 5월 채팅을 통해 만난 남성 B씨(43)와 동거 중이었다. 아이 아빠는 B씨가 아닌 다른 남성이었다. A씨는 임신한 사실을 숨긴 채 원룸 화장실에서 혼자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낳자마자 변기 물에 빠져 사망했고, A씨는 다음 날 시신을 태반과 함께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주차장 쓰레기더미에 버렸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양육 능력이 없어 출산 후 아이를 변기에 방치했다. 동거남이 임신 사실을 알게 되는 게 두려워 혼자 아이를 낳았다”고 털어놨다. 경찰은 A씨를 ‘영아 살해 및 시신유기 혐의’로 구속했다.  

 
ⓒ 일러스트 오상민



경기도 안산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1월11일 오전 안산시 단원구 한 공원 야외무대 인근 공중화장실 옆에서 신생아 시신이 공원 관리자에 의해 발견됐다. 발견 당시 시신은 분홍색 가방 안에 든 천에 싸여 있었으며, 탯줄이 달린 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 가방에서는 성인 여성용 속옷과 영어문구가 쓰인 티셔츠 등도 함께 발견됐다.

경찰은 “10일 전에 가방을 발견했다”는 공원 관리자 진술을 토대로 지난 한 달 치 CCTV 영상을 확보해 분석했지만,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전단지까지 배포했지만 유력한 제보를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다만 시신과 함께 발견된 티셔츠에 적힌 문구를 통해 용의자가 인도네시아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수사에 진전이 없으면서 이 사건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경기도 성남에서는 태어난 지 17개월 된 영아를 엄마가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1월1일 오후 성남시 중원구의 주택가 도로에서 영아 시신이 장바구니에 담겨 있다는 시민의 신고가 접수됐다. 당시 시신은 내복을 입은 상태였고 비닐 재질의 붉은색 휴대용 장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머리 뒤쪽에는 무언가로 맞은 듯한 상처가 있었다.

경찰은 주변 CCTV를 통해 친모인 C씨(33)가 딸의 시신을 유기하는 장면을 확보했다. 경찰은 시신 발견 하루 만에 경기도 광주에서 C씨를 검거했다. C씨의 집 안에는 혈흔 등 범행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경찰은 C씨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주변인 진술을 확보했으나, 실제 정신병력은 확인되지 않았다.  

 
11월23일 전북 익산시 한 원룸 주차장에서 신생아가 숨진 채 발견돼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 연합뉴스


미혼모에게 ‘비밀출산’ 보장돼야

영아 살해·유기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순례 의원(자유한국당)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영아 살해·유기 건수가 2018년에는 8월까지 142건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14년 87건에서 2015년에는 57건으로 잠시 주춤하다가 2016년에는 116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2017년에는 177건으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몰래 아이를 낳아 살해한 후 암매장할 경우 출산 사실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영아 살해·유기가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입양특례법’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2012년 8월 시행된 입양특례법에는 무분별한 입양을 방지하기 위해 입양을 보내려면 친부모 ‘출생등록’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때부터는 출생신고가 이뤄진 아이만 입양이 가능하다.

정부의 ‘출생등록 의무화’는 이유가 있었다. 성 개방 풍조가 확산되면서 미혼모가 증가하고 덩달아 아기 매매 수요도 팽창시키는 원인이 됐다. 아기의 인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임신과 출산 사실을 숨기려는 데 급급해 아기를 팔아넘기는 일이 많아졌다. 일부 미혼모들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밀매 시장에 내놓았다.

심지어 인터넷에서는 입양 브로커들까지 활개를 쳤다. 아기 부모는 ‘입양 사기’를 당해도 처벌이 두려워 신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입양 브로커들에게 아기를 넘기는 순간 아기가 제대로 된 가정에 입양됐는지 아니면 범죄 집단에 넘겨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입양 흔적이 남지 않고 아이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은 상태여서 살해되거나 방치돼 죽어도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고 은폐될 수 있었다.

브로커를 거치지 않고 직거래를 통해 아기를 사고팔기도 했다. 실제 생후 한 달도 되지 않은 자신의 아이를 돈을 받고 매매한 친모가 경찰에 붙잡힌 적도 있었다. 미혼모인 친모는 직거래를 통해 200만원을 받고 아기를 팔아넘겼다. 정부는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출생신고제’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이전까지 성행했던 ‘아기 밀매’나 기관을 거치지 않는 ‘비밀 입양’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며, 출생 시부터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갖는다’고 선포하고 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우리나라 정부를 향해, 부모의 법적 지위나 출신에 상관없이 모든 아동에게 출생등록이 가능하도록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모든 아기에게 출생신고가 보장돼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조항은 출생신고를 꺼리는 미혼모들에게는 족쇄나 다름없다. 임신과 출산 사실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김순례 의원(자유한국당)은 “정부가 합법적인 입양 통로를 ‘출생신고’라는 장벽으로 막아버리니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미혼모가 늘어난다”고 강조한다. 대부분의 미혼모는 신분 노출을 이유로 출생 신고를 꺼리는데, 입양할 때 출생신고 서류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미혼모 출산의 경우 출생신고 없이 크는 아이들도 상당수다. 현재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도 아무 제재 방법이나 출생신고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제때 하지 않더라도 벌금 액수가 최대 5만원에 불과하다.

국회에서도 입양특례법을 손보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올해 2월에는 임산부가 원하는 경우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출산하고, 가명으로 자녀 출생등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비밀출산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오신환 의원(바른미래당)에 의해 발의됐다.

법안에 따르면, 비밀출산제는 사회·경제적 이유 등으로 인해 실명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임산부에게 익명으로 출산을 허용하는 제도다. 비밀출산제를 통해 출산할 경우 친생부모와 관련된 정보는 법원에서 관리하게 된다.

법안은 국가·지자체가 비밀출산을 지원하기 위한 상담기관을 운영하고, 친모가 가명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선진국에선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다. 비밀출산제에는 베이비박스를 합법화하는 방안도 들어 있다.

출산 이후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친생부모를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얻은 경우 베이비박스(긴급영아보호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긴급영아보호소에 자녀를 위탁한 경우 형법상 유기죄로 보지 않는 예외를 두도록 하는 조항도 들어 있다.

현재 서울 관악구 난곡동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교회 등에서는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부모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게 마련된 상자다. 베이비박스에 아기가 유기되면 운영자는 즉시 경찰에 신고해야 하고, 경찰은 DNA를 확보해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도록 돼 있다. 아이는 건강검진을 받은 뒤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인계된다. 하지만 익명의 산모에게서 아기를 위탁받는다는 것 때문에 ‘베이비박스’는 불법 논란에 시달려 왔다.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맞이 낙태죄 반대 기자회견이 11월28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렸다. ⓒ 연합뉴스


여성단체 ‘낙태죄 폐지’ 요구

정부의 ‘미혼모 지원책’도 영아 살해·유기의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미혼모에 대한 정부 지원은 양육보조금 월 13만원, 연간으로 따지면 156만원 규모다. 반면 가정위탁은 연간 1089만원 정도, 입양가정은 양육수당 월 15만원(연간 180만원)으로 미혼모보다 더 많다. 현재의 지원책으로는 미혼모가 출산해서 양육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미혼모에 대한 제도적·경제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하지만 실질적인 지원은 제자리걸음이다. 이런 가운데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미혼모 시설 지원 예산을 전액 감액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미혼모가 출산해서 마음 놓고 아이를 양육하는 사회보장제도가 아주 미약한 상황인 것이다.

영아 살해·유기를 막기 위해서는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법상 낙태는 극히 제한적이다. 성폭행이나 유전학적, 전염성 질환의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허가된다. 원하지 않은 임신으로 중절 수술을 하면 낙태죄로 처벌받는다. 낙태가 적발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여성단체들은 오래전부터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등 21개 시민사회단체 연합체인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낙태죄 존치는 여성의 건강과 인권에 대한 폭력”이라며 “당장 폐지하라”고 주장한다.

국민 다수의 의견도 ‘낙태죄 폐지’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지난 9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게시된 ‘낙태죄 폐지 청원’은 동의자가 23만 명을 넘었다. 헌법재판소도 곧 낙태죄에 대한 ‘위헌 여부’ 판단을 내릴 방침이다. 당초 올해 8월말 5기 재판부가 판결을 내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6기로 미뤄졌다.

임신과 출산은 누구에게는 축복이지만, 또 누구에게는 불행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서 태어났든지 생명은 소중하다. 우리 사회에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태어난 기록조차 없이 죽어가는 어린 생명들이 있다. 말 못 하는 아기들에게도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는 제도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그래야만 태어난 후 버려지거나 산모에게 살해되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