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건물주’가 서울 성동구청…안심하고 장사하는 자영업자들

정서적 안정감 높은 성수동 공공안심상가…입지 조건·입주 등 해결 과제 남아

2018-11-30     조유빈 기자

어떤 곳에나 빛과 그늘이 있다. 주목받고 뜨는 상권 이면에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그늘도 그중 하나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곳이 활성화돼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되면서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지만, 이제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치솟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된 자영업자들이 둥지를 떠나야 하는 현상을 일컫는 단어가 됐다. ‘둥지 내몰림’이라는 단어가 들어맞는다.

수십 년 동안 자신의 터전이자 둥지였던 곳과 결별해야 할 정도로, 임대료가 자영업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 내몰린 자영업자들은 다른 지역을 찾아 떠나지만, 옮긴 둥지 역시 임대료가 오를 수 있다는 불안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안심상가 1호점의 윤스김밥·공씨책방 ⓒ 시사저널 최준필


젠트리피케이션 피해 자영업자 선정

그렇기 때문에 주목되는 곳이 있다. 역시 뜨는 동네로 주목을 받았던 서울 성동구 성수동. 낡고 오래된 공장들이 밀집한 준공업지역이었던 성수동이 편리한 교통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로 예술가와 사회적 기업을 불러 모으면서 ‘핫플레이스’로 주목받게 됐다. 또 서울시 도시 재생사업지로 선정되면서 도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커졌고, 이로 인해 임대료가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했다. 정체됐던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또 하나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성동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성동구청은 직접 ‘건물주’가 됐다. 보증금과 권리금이 없고 임대료 상승 걱정도 없는 상가를 만든 것이다. 지하철 2호선 뚝섬역에서 10분 정도 걸으니 서울 성동구 서울숲IT캐슬 지식산업센터가 보였다. 이곳 1층에 성동구청이 조성한 공공안심상가가 있었다. 젠트리피케이션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들이 다시 둥지를 튼 공간. 작은 규모지만 둥지 내몰림을 당한 상인들에게는 소중한 장소다.

윤복순 대표(59)는 이곳에 ‘윤스김밥’을 열었다. 오랫동안 분식업을 해 오다 성동구청 앞에서 잔치국수와 해물파전을 파는 식당을 5년간 운영하던 윤 대표는 젠트리피케이션 피해를 입었다. 바뀐 건물주가 그동안 인상된 5년 치 월세를 다 받아야겠다며 110만원이던 월세를 150만원으로 올리겠다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보낸 것이다. 어떻게든 사정을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직원들 없이 혼자 주방에서 일을 하고, 일을 마치고 온 남편이 저녁 장사를 도왔다. 결국 지난해 가게를 접어야 했다.

그러다 우연히 성동구청 소식지를 봤다. 안심상가 공모가 있는 것을 보고 용기 내 지원했다. ‘내가 되겠나’라고 생각했지만 구청이 원하는 종목 중 하나가 윤 대표가 지금까지 해 온 분식업이었고, 젠트리피케이션 피해 정도가 크다는 점이 인정돼 선정될 수 있었다. 8평 정도 되는 이곳의 월세는 40만원대. 이전보다는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저렴한 임대료로, 임대료 인상 걱정 없이 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바로 옆, 녹색 바탕에 흰 글씨로 간판을 달아놓은 ‘공씨책방’은 46년 동안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을 지키다가 이곳으로 이사 왔다. 1세대 헌책방으로 불리는 공씨책방은 서울미래유산으로도 지정됐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공간도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어야 했다. 지난해 10월 건물주가 새로 바뀌면서, 월 130만원이던 임대료를 30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소송까지 진행하는 등 수난을 겪었지만, 결국 공씨책방은 문을 닫아야 했다. 공씨책방을 운영하는 장화민 대표(61)는 규모는 작지만 마음 편히 영업하자는 생각으로 안심상가 입주를 신청했다. 이곳의 월 임대료는 60만원대로 5년간 고정된 금액이다. 5년이 지나면 심사를 통해 10년까지 장사를 할 수 있다.

안심상가 한쪽에는 ‘아트그라운드 협동조합’이 있다. 성동구 지역 방직공장 등과 협업해 옷을 제작하는 패션업체다. 이곳에서는 대학생들의 졸업 작품을 활용한 상품을 제작하기도 한다. 남아 있는 한 곳의 안심상가는 입주할 업체를 상시 모집하고 있다.
 

안심상가 2호점 ⓒ 시사저널 최준필



프랜차이즈 입점 막고 상생협약 체결

실제로 안심상가에 입주한 윤스김밥과 공씨책방 사례가 보여주듯, 자영업자들에게 임대료는 큰 부담을 준다. 특히 임대료는 자영업자들이 주로 임차하는 소규모 상가에서 상승폭이 크다. 지난해 수익형 부동산 전문 기업인 상가정보연구소가 한국감정원 부동산통계정보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서울 지역 소규모 상가 월 임대료는 2015년 3분기 평당 15만3700원에서 2017년 3분기 기준 17만3000원으로 올랐다. 최근 2년 새 임대료가 12.6% 상승한 것이다.

성동구는 이러한 자영업자들의 임대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젠트리피케이션 발생 초기에 전담조직을 신설했다. 공공이 먼저 나서 임차인들에게 임대를 한다면 다른 건물주들도 동참할 것이라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성동구는 임대료 상승으로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맘 편히 안심하고 장사할 수 있도록 서울숲IT캐슬에 4개의 상가를 마련해 ‘성동 공공안심상가’를 전국 최초로 조성했다. 상가들의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70~90%다. 또 건물주와 임차인과 상생협약을 체결하고, 프랜차이즈 입점을 제한했다.

1호점 안심상가에 입주한 윤스김밥이나 공씨책방처럼 급격한 임대료 상승으로 둥지에서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신청 대상이다. 소상공인, 청년 창업자, 노인 일자리 창출사업자도 안심상가 신청이 가능하다. 성수동 1가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공공안심상가 시세로 인해 올해 초부터 주변 임대료가 소폭 낮아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성수동 지속가능발전구역의 상가임대차 실태조사 결과, 2016년 하반기 임대료 인상률은 18.6%였지만 2018년 하반기에는 4.5% 인상되는 수준에 그쳤다.


안심상가 2호점도 운영되고 있다. 2호점은 부영그룹과 사회공헌 협약을 맺어 기부채납 받은 260억원 상당의 신축 건물에 조성됐다. 1호점에서 1k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2호점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과 사회적 기업, 청년 창업자 등이 영업 주소지에 상관없이 입주를 신청할 수 있다. 1층은 아직 입주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오픈형 푸드몰이 일부 운영되고 있었고, 2층에는 음식점, 3층에는 생활편의시설, 4~6층은 소셜 벤처와 청년 창업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돼 있었다. 이곳의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70% 정도다. 관리비를 포함한 평당 월 임대료는 1층 8만4000원, 2층 7만9000원, 3층 7만원, 5층 8만3000원이다. SK V1타워가 공공기여로 제공한 3호점은 청년 창업 소셜벤처 업무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성동구의 시도는 자영업자들이 안심하고 장사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다양한 시도를 하게끔 하는 지표가 된 것은 분명하다. 국토교통부는 상가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카드로, 최대 10년 동안 시세의 80% 이하로 임대하는 공공임대상가를 연평균 20곳 이상씩 5년간 공급한다는 계획을 도시재생 뉴딜 로드맵에 포함시켰다. 경기도는 최장 임대기간 15년을 보장하고 임대료를 주변 시세의 80% 이하로 정하는 내용의 공공임대상가 조례를 지난 5월 공포하기도 했다. 임차인이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임대인에게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해 주는 서울시의 ‘장기안심상가’ 프로젝트 역시 2016년 도입된 이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윤스김밥 윤복순 대표는 “안심하고 장사할 수 있는 정서적 안정감이 무엇보다 크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유동인구와 입지조건 아쉬워

아직 남은 과제는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내몰린 자영업자들의 둥지를 마련해 주기는 했지만, 잘 갖춰진 상권과 인프라까지 만들어주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 때문이다. 지자체의 한정된 예산으로 성동구 내의 입지를 찾다보니, 안심상가 건물들은 역세권과 거리가 있고 유동인구가 적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아직 공실로 남아 있는 안심상가들을 채워나가는 것도 ‘건물주’인 성동구가 해 나가야 할 과제다.

특히 요식업 분야의 경우 유동인구가 매출과 직결된다. 윤스김밥의 윤 대표는 “지난 4월 안심상가 입주를 시작했을 때에 비해 매출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경기가 침체된 이유도 있겠지만, 예전에 장사를 하던 곳보다 유동인구가 훨씬 적어 장사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윤 대표는 “하지만 안심하고 장사를 할 수 있다는 정서적 안정감은 무엇보다 크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겨울 신메뉴를 개발해 긍정적으로 운영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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