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脫원전 고수’ 정책, 문제없나

‘탈원전’서 ‘원전’으로 2년 만에 정책 회귀한 대만 주목

2018-11-30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2016년 대선에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탈원전’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후 탈원전 정책을 과감히 추진했고, 국민들 역시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대만 정부의 탈원전 드라이브에 힘을 실어줬다.


의욕적으로 추진한 대만 탈원전 급제동

그러나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대만의 탈원전 정책은 국민투표를 통해 2년 만에 급브레이크가 걸리고 말았다. 대정전(블랙아웃) 사태로 인한 전력 수급 공포를 경험한 대만 국민들은 탈원전에서 다시 원전으로 가야 함을 정부에 호소했다. 지난해 여름 830만 가구에 정전이 발생하고, 퇴근 시간대 신호등이 꺼지며 일대 도시가 마비되는 현상을 겪은 후 나타난 국민들의 반응이었다. 최근 우리 역시 KT 화재로 서울의 일부 도심이 통신 재난 상태에 빠져들면서 국민들이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겪었으니 대만 국민들의 탈원전에 대한 반응이 어떠했을지는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대만이 ‘탈원전’에서 ‘원전’으로 다시 회귀하면서 사실상 아시아 국가에서는 대한민국만 탈원전을 고수하는 국가가 됐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라는 초유의 재난을 경험한 일본조차 2030년까지 원전 비중 20~22%로 복귀하는 정책을 추진 중에 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서방 선진국들도 원전 의존 비율을 낮추는 정책을 중장기적 관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기술력이 뛰어나고 연구·개발에 관한 미세조정 역량까지 갖춘 국가들이 원전을 고수하거나 원전 폐기 기한을 시기적으로 대폭 늦추는 데 비해 우리만 여전히 탈원전을 고집하고 있는 상황이다. 탈원전 폐기 및 고수를 떠나 현재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탈원전 정책이 적절한 것인지 성찰해 봐야 하는 이유다.

 
대만 정부가 2016년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탈원전 정책이 2년 만에 뒤집히면서 배경이 주목된다. 사진은 부산 기장군 신고리원전 1·2호기 ⓒ 연합뉴스


대만이 탈원전을 추진한 이유는 간단하다. 대만은 국가 에너지의 98%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만, 원전 가동의 안전 문제 등이 지속적으로 거론돼 왔다. 이에 따라 대만 정부는 가동 중인 원전 4기 중 2기에 대해 수해와 설비 이상 등의 이유를 들어 가동을 중단시켰다. 문제는 탈원전 정책 자체가 아니라 탈원전 이후 전력 공급 상황에 대한 위기관리 역량 및 대체 에너지 개발이 여전히 부족했다는 점이다. 대만이 추진한 신재생 에너지 활용 역량이 미흡하다 보니 원전 중단 후 대만의 전력 예비율은 15%에서 지난해 여름 1.7%까지 떨어지는 최악의 사태에 직면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추진해야 할 사안을 급속도로 밀어붙인 후폭풍을 제대로 학습한 셈이다.

현재 대한민국이 탈원전을 고수한다는 점 자체를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전 세계 주요 국가가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있고 우리가 벤치마킹 상대로 삼은 대만 역시 다시 원전으로 복귀했기에 한국도 탈원전을 폐기해야 한다고 성급히 결론 내리고 싶지도 않다. 각국이 처한 에너지 및 경제 상황, 국민들의 인식 차이는 다르기 때문이다. 지진으로 인한 원전사고의 불안감과 원전 관리체계에 대한 의혹 등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탈원전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국내 여론 역시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대안이 완벽하게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하는 지나친 정책의 속도화 추구라는 점에 있다. 대통령 공약에 따라 정부는 태양광 및 풍력 비중을 2030년까지 7%에서 20%까지 높일 계획이다. 하지만 태양광이라는 전력원이 여전히 저효율에 그치고 있고,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늘리기 전까지 석탄과 LNG 발전 비중이 높아지는 역효과에 대한 솔루션을 정부가 명확히 내놓지 못한 상황이다. 대만이 탈원전을 포기한 여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과 재점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탈원전 이후 대안이 완벽하게 구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정책을 밀어붙일 경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연합뉴스


원전 정책 근본적인 고찰과 재점검 필요

특히, 대만 국민들이 탈원전 폐기에 대해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이유 중 하나는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불안감도 한몫했다. 실제 대만 국민들은 탈원전 반대 이유에 대해 전력난 문제(46.5%)보다 전기요금 상승(52.6%)을 더 중요한 이유로 손꼽았다. 대만 정부 입장에서는 근시안적인 국민들의 반대가 아쉬울 수 있겠으나, 국민들 입장에선 먹고사는 문제 중 하나인 전기요금도 정책의 반대 또는 찬성의 중요한 명분이 될 수 있다.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대폭 늘리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투자가 필요하고 상당 기간 전기요금이 인상될 수 있다. 해당 문제에 대한 불안감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정부의 대안이 없는 한 국민들의 반대는 현실적으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대만이 다시 원전으로 방향을 바꾼 후,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 협의회’ 소속 교수들과 한국원자력학회에서도 공식 성명을 내고 탈원전 정책 철회 및 에너지 문제에 관한 정부의 입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야당 반대는 논외로 하더라도 에너지 관련 전문가들의 입장 표명에 대해 정부가 합리적인 설명을 내놓고 국민들의 근심을 풀어줄 필요는 있다. 탈원전에서 원전으로 다시 정책 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정부의 입장은 이해한다. 그러나 탈원전을 추진할 때 중장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어떻게 최소화할지에 대한 정부의 설명은 아직까지 부족한 편이다.

대만 국민들이 탈원전을 반대했다고 해서 원전사고나 화석연료에 대한 대만 국민들의 불안감이 없어졌다고 언론도 확대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대만 국민투표 결과를 자세히 보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영향을 받은 지역의 농산물 및 식품 수입 금지에 대해 대만 국민들은 압도적인 찬성을 보냈다. 공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화력발전 생산량을 매년 평균 1%씩 줄이는 것에 대한 찬성 여론 역시 반대표의 3배가 넘었다. 대만 국민들이 탈원전을 반대한다고 해서 원전이 좋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불안감은 정부의 불확실한 대처에서 발생한다. 정부의 안전한 대응방안 구축과 명확한 설명만이 또다시 불거진 탈원전 정책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