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지 않는 사회’ 꿈꾸는 부산밥퍼 손규호 본부장
2004년 참여정부 최낙정 전 해수부 장관과 시작…부산 무료급식 운동 대변
2018-11-26 부산 = 김완식 기자
10시쯤 되자 몸이 불편해 보이는 노인과 허름한 옷차림의 노숙인까지 줄지어 모여들기 시작했다. 탁자에 자리를 잡은 한 노인은 자주 보는 듯 옆 노인에게 “오늘은 사골이 나온다네”라고 말을 건네며 인사를 했다.
이날은 부산밥퍼나눔공동체(이하 부산밥퍼)가 무료식사 봉사를 하는 날이었다. 11시쯤 되자 배식이 시작됐다. 노인들이 앉은 테이블까지 자원봉사자들은 일일이 음식을 날랐고, 또 치웠다. 또 다른 봉사자는 식사 전달할 곳을 손짓으로 알렸다. 한쪽에선 봉사자들이 설거지에 바쁜 손놀림을 했다. 신속하면서도 일사불란했다. 하지만 어느 한군데 말썽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부산밥퍼 손규호(61) 본부장이 진두지휘했다. 오후 1시쯤 식사봉사는 마무리 됐지만, 100여개가 넘는 간이탁자와 400여개 의자 정리정돈 등 모든 활동은 부산밥퍼와 자원봉사자들의 몫이었다. 1시30분쯤 모든 정리를 마무리한 손규호 본부장은 “오늘 800여명이 넘게 찾은 것 같다. 자원봉사자들의 힘이 컸다”며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손 본부장은 부산가정지원센터, 부산진구건강가정지원센터, 유엔평화기념관 패밀리 서포터즈, 부산대 MBA후원회, 동서대 아너소사이어티 회원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 식사봉사를 도왔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앞서 부산대 MBA후원회는 100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했다.부산 무료급식 운동 불 지펴…하루 800여 명에 무료급식 제공
손 본부장이 이끄는 부산밥퍼는 매주 토요일 부산시청 녹음광장에서 무료점심식사 봉사를 하고 있고, 부산진역에서도 매주 목·금요일 저녁에 무료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부산밥퍼의 무료식사 제공 대상자의 숫자도 만만찮다. 부산시청 녹음광장엔 800~1000명, 부산진역에는 매일 600~800명에 달한다. 겨울이면 수도권의 노숙자들도 부산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그 숫자가 더 늘어난다고 했다. 현재 부산의 무료식사 제공 봉사 단체는 14곳 이상이 되지만, 무료식사제공을 정착시킨 이는 사단법인 부산밥퍼나눔공동체 손규호 상임이사 겸 본부장이다. 때문에 손 본부장은 부산의 무료급식 운동을 대변하는 인사로 통한다. 손 본부장은 부산밥퍼와 인연을 맺은 것이 2004년 8월쯤이라고 기억했다. 참여정부 초대 해양수산부장관을 지낸 최낙정씨가 몇 번이나 찾아와 “좋은 일 같이 한번해 보자고 했어요. 처음엔 하던 업무도 있어 어렵다고 했지요.” 신학대학교를 다닐 시절부터 봉사활동을 해온 손 본부장은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에서 상임이사와 부산시의정감시센터 소장 등 시민운동에 몸담은 경력이 있었다. 그를 최 전 장관이 눈여겨 본 것이다.부산 14곳 무료급식 단체 협의회 결성…체계적인 무료급식 자리 잡게 만든 장본인
최 전 장관의 끈질긴 설득에 못 이겨 부본부장이란 직함을 달고 부산밥퍼의 창설 멤버가 됐다. 본부장인 최 전 장관은 종자돈으로 5000만원을 털어 서대신동 로터리에 사무실을 얻고 밥솥을 걸었다. 그때부터 부산역까지 밥과 반찬을 옮겨 노숙자 등을 대상으로 무료식사 제공을 시작 했다. “운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독교 신자로 일종의 소명의식을 느꼈어요.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무료식사 제공이 요구되는 시기였지요.” 손 본부장은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에 전국적으로 확산됐던 무료급식이 이 시기쯤에 희미해지면서 무료식사를 제공하던 봉사단체들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자 밥을 굶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가지 못해 최 전 장관이 개인사정으로 발을 뺐다. 이 바람에 손 본부장은 얼떨결에 부산밥퍼를 혼자 떠맡아야 했다. 부산역에서 시작한 부산밥퍼의 급식 무대는 2년 만에 부산진역으로 옮겨졌다. 2005년 부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을 앞두고 부산시가 부산역 정화를 위해 이전을 종용했기 때문이다. 이때 부산진역에 실내 급식소가 마련됐다. 무료급식 단체도 14곳으로 늘어 났다. 손 본부장은 부산밥퍼를 중심으로 이들 단체와 ‘부산노숙인 무료급식단체협의회’를 구성해 하나의 협의체로 체계적인 무료급식사업을 이어가도록 한 장본인이다. 부산밥퍼도 2010년 사단법인으로 탈바꿈하면서 사업에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발전을 거듭해 오다 현재 강서구 대저동에 사무실과 음식조리실을 두고 있다. 노숙인들의 자활·자립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텃밭 2000평(6000여㎡)도 마련했다. 김문찬 이사장(김해 아이사랑병원장)과 7명의 이사와 상근직원 10명이 부산밥퍼의 식구들이다.100% 후원금으로 운영자금 충당…노숙인 자활·자립 활동으로 영역도 넓혀
100% 후원금으로 운영자금을 충당하고 있는 부산밥퍼를 응원하고 후원 해주고 있는 이들에게 손 본부장은 늘 감사하고 있다. “후원금으로 운영자금을 충당하기 때문에 사업비는 투명해야 합니다. 허투루 사용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허 허(웃음).” 그의 바람은 어찌 보면 단순하다. “인간에게 의식주가 중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중에서도 식(食)은 더욱더 빼놓을 수 없는 부문입니다.” 동네마다 급식소가 갖춰져 배고픔을 걱정하는 이가 없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사회라며 이를 위해 부산시와 구·군이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그는 부산밥퍼가 안정됐다고 보고 일선에서 물러날 생각이다. “올바른 인재가 나타나면 뒤에서 돕는 역할을 한 뒤 노숙인 자활·자립 문제에 눈을 돌릴 생각입니다.” 손 본부장을 만난 이날 추위를 재촉하는 겨울비가 한 차례 내렸다. “올 겨울도 많이 추워지겠네. 결식이 없는 사회가 돼야할 텐데…” 손 본부장은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