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근본적 질문…페미니즘과 휴머니즘 뭐가 중헌디?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2018-11-23     노혜경 시인

메갈리아 사태 이후 내가 페이스북에 “나도 메갈이다”라고, 다소 장난스럽게 글을 올렸을 때 댓글과 메신저로 쏟아진 말들 중에 “페미니즘이 아니라 휴머니즘이라야 한다” “이퀄리즘이 옳다” 등의 말이 생각보다 많았다. 신본주의 시대의 대항담론으로서의 인본주의, 즉 휴머니즘. 후대에 학교에서 배운 이 말이 오로지 남성만 휴먼/인간으로 인정하는 사상이라는 것을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얼핏 알기 어렵다. 하지만 신이 인류의 역사에 등장한 이래 대단히 오랫동안 여성은 휴먼의 범주가 아니었다. 서양에서 그랬다는 얘기지만 동양이라고 크게 다를 바는 없었던 것 같다. 페미니즘의 등장과 성장 배경에 이러한 문화적·사회적 인습이 있음은 말 안 해도 알 줄 알았었는데.

그 휴머니즘이 요즘 다시 문제다. 휴먼은 인간을 말하는 건데 따로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면 페미니즘은 남성을 적대시하는 사상 아니냐? 라고 일부 남성과 심이어 여성도 주장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좀 고상하게 봐줘도, 페미니스트에 적대적인 남성이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 아니”라고 할 때 그 뜻은 “여자가 사람이 아닌 줄 모르고도 잘 살 수 있다”라는 뜻이고, 자칭 휴머니스트인 남성이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라고 말할 땐 “남성인 내가 페미니즘이 뭔지를 규정해 준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페미니스트 여성이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라고 말할 땐 “여성도 인간으로서의 천부인권을 대등하게 누리겠다”는 뜻이지만, 명예남성인 여성이 “그것은 페미니즘이 아니다”라고 말할 때 그 진정한 뜻은 ‘다른 여자는 빼고 나 혼자만 남성중심사회에서 사람 대접받고 싶다’가 아닐까.

 

2월27일 페미니즘 단체 회원들이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초ㆍ중ㆍ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와대 청원에 대한 입장 발표 및 정책 제안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새로운 말이 주도권 얻어야 새로운 세상 열려

놀랍게도 방송매체나 심지어 일부 언론매체에 발표되는 글들에서도 심심찮게 보이는 기초가 덜 된 담론들. 말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저 말들이 실제로 뜻하는 바는 어쩌면 불법동영상물 보면서 히히덕거리며 자위하고 회사에서 여성인 하급자에게 성희롱, 성추행을 자유롭게 하고 경쟁에서 앞서가는 여성이 없게 차별하고 하던 일들이 잘못이었다는 지적을 안 받고 싶다는 말에 지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든다. 겨우 이 정도 ‘아무 말’ 수준의 논쟁을 사회담론 차원에서 해야 한다는 사실이 절망스럽지만, 우리나라가 이 수위의 인식을 돌파하지 못하면 최소율의 법칙에 지배당할 것임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최소율의 법칙은 영양학에서 나온 말로, 필수영양소 중 어느 하나가 결핍되면 다른 영양소들을 아무리 많이 섭취해도 가장 부족한 영양소의 비율만큼 흡수된다는 법칙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사회적인 필수영양소는 무엇일까. 공교육에서 오랫동안 결핍시킨 끝에 영양실조 상태가 되어버린 시민의식이란 걸까, 역시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언어교육의 결과 아무 말 대잔치 수준으로 소통능력이 망가져가는 언어생활일까. 돈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돈 없이 태어난 사람을 마구 지배해도 할 수 없다고, 아니 그것이 ‘순리’라고 여기고 인륜이 아닌 금륜(돈질 또는 돈지랄이라고 쓰고 싶지만 고상하게)에 복종하느라 잊어버린 사람 사는 세상일까.

갈등과 모순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폭발하듯 지금 페미니즘의 말이 끓어오른다. 새로운 말이 주도권을 얻어야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법.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이름도 없는 시대다. 여성, 이주민, 난민, 탈북자, 성소수자, 빈곤노인, 기타 등등등등등. 이들에게 구체적 이름을 단 한 번도 준 적 없으면서 휴머니즘이라니 무슨 그런 말씀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