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왜 라텍스에만 117억 쓰는데?” 라돈 졸속행정 논란

정부 “수거·보관 시 안전” vs 전문가 “안전하면 이 사업 왜 하나”

2018-11-23     김종일 기자

“라돈 측정 서비스 117억원이라는 예산은 어떤 기준으로 잡혔나.”(기자)

“저희(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기관(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용역업체 선정 입찰을 낼 때 계산한 방식이 있다.”(원안위 관계자)

“구체적인 기준을 밝혀 달라. 117억원이라는 예산이 가구당 라돈 측정비용 9만원에 대상 13만 가구를 곱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13만 가구라는 대상은 어떻게 파악한 건가.”(기자)

“라텍스를 해외에서 구입한 정확한 숫자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나마 참고한 숫자가 네이버 카페(라돈 방출 라텍스 사용자 모임) 가입자 수다. 여기에 3만 명(실제로는 2만8538명·11월21일 기준) 정도 되는 가입자가 있다. 매우 적극적인 분들이다. 대략 조사 대상이 5배 정도가 더 있을 거라고 추정해 계산했다.”(원안위 관계자)

정부가 예산 117억원을 들여 라돈 방출 우려가 있는 라텍스에 대한 조사를 곧 실시할 계획이지만, 벌써부터 ‘졸속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왜 라텍스에 대해서만 라돈 검출 측정을 실시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한다. 심지어 정부 안에서도 기자와 원안위 관계자의 대화에서 보여지듯 예산 117억원은 대체 어떤 기준으로 짜인 것인지, 지방자치단체가 각자 사정에 맞게 하는 게 더 실효성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사업이 끝나면 생활용품의 라돈 안전성이 담보되는 것인지 등에 대한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성급히 일자리 창출 대책을 마련하다 보니 세밀하게 정책을 짜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온다.

 
당진시 주민들이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라돈 침대’ 반출을 촉구하고 있다(맨 위). 정부가 11월9일 발표한 ‘라돈 측정 서비스 관련 지자체 설명회’ 내용 일부 ⓒ 연합뉴스


‘맞춤형 일자리’ 일환으로 나온 라돈 측정 사업

이번 라텍스에 대한 라돈 측정 서비스 사업은 정부가 최근 발표한 ‘맞춤형 일자리’ 사업의 일환이다. 정부는 지난 10월24일 청년층과 어르신, 실직자 등 저소득층을 위한 일자리 총 5만9000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1000명의 임시직을 고용해 라텍스에서 라돈이 검출되는지 측정할 계획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모나자이트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의 성분은 통칭으로 라돈(Rn)이라 불리지만 상세분류상으로는 라돈(Rn-222)과 토론(Rn-220)이다. 둘은 특정 방사성 물질의 양이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의미하는 반감기(3.8일과 55.6초)가 다르고 인체 영향도 다르다. 특히 라돈은 세계보건기구(WTO)가 폐암 발병의 주요 원인 물질로 규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행정안전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11월9일 오후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폐기물 수거와 폐기를 담당하는 관계자들을 정부세종청사로 불러 ‘라돈 측정 서비스 관련 지자체 설명회’를 비공개로 열었다. 시사저널은 설명회에 참석한 복수의 관계자로부터 당시 설명회 자료와 협조공문 등을 단독으로 입수했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지자체 관계자 중 한 명은 “정부 발표가 실효성 있는 대책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어 제보한다”고 말했다.

무엇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을까. 문제점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사업 내용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작성한 ‘라돈 측정 서비스 사업 개요’에 따르면, 이 사업의 대상은 해외에서 라텍스를 구입한(해외 직구 포함) 이들로 한정된다. 라돈 측정 대상이 해외에서 구입한 라텍스로 한정된 이유에 대해서는 “정부 행정력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해외 관광이나 직구로 구매한 제품의 경우 대부분 국외 제조사가 만들었기 때문에 국내법을 적용하기 곤란하다는 설명이다. 대진침대처럼 명확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국내 제조사가 없기 때문에 정부가 나선다는 것이다. 이런 조치엔 긍정 평가도 있다. 조승연 연세대 환경공학부 교수는 “이른바 ‘라돈 침대’ 사태 후 가장 논란이 됐던 게 라돈 라텍스”라면서 “국민 건강권을 생각하면 늦었지만 정부가 이제라도 전수조사를 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신청 방법은 개인이 직접 생활방사선 안전센터 콜센터나 홈페이지로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11월부터 순차적으로 신청을 받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측정을 실시할 계획이다. 사업은 내년 6월말까지 진행된다. 측정 방식은 라돈아이(라돈과 토론 구분 불가) 등으로 1차 측정하고, 의심 제품으로 판정되면 보다 정밀한 기기인 라듀엣(라돈과 토론을 구분하여 측정 가능)으로 2차 측정을 실시한다. 부적합 제품으로 판정되면 사용 중단을 권고하고 지자체에서 수거한다.

정부가 지자체에 협조를 요청한 대목이 바로 부적합 제품에 대한 수거 및 보관이다. 정부는 부적합 제품에 대한 기준을 연간 방사선량 안전기준 1밀리시버트(mSv/y)로 잡았다. 밀리시버트는 인체가 받을 것으로 추산되는 방사선량을 나타낸다. 일반인의 연간 방사선량 안전기준(자연방사선 제외)은 1밀리시버트다. 이보다 낮은 방사선량도 건강에 영향을 주기에 “피할 수 있는 방사선은 피하라”는 게 의료계의 권고 기준이다.


“명분도, 실효성도 찾을 수 없는 사업”

정부는 라텍스에서 검출된 라돈이 기준치 미만이면 일반 생활폐기물로 처리하고 그 이상이면 지자체가 수거할 것을 요청했다. 시사저널이 단독으로 확보한 문건에 따르면, 지자체는 올해 12월부터 내년 6월까지 수거 및 보관 업무를 맡게 된다. 정부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분석을 바탕으로 기준치를 초과하는 라돈 라텍스가 전체의 27%라고 추정했다. 정부는 인터넷 카페의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한 통계 분석도 소개했다. 정부는 “총 319개 사례를 분석한 결과, 기준치 이상의 라텍스 추정량은 8.8%에서 16.9% 사이”라고 밝혔다. 이상의 내용이 정부가 설명회에서 발표한 사업의 요지다.

시사저널은 전문가들에게 정부 정책의 실효성 등을 물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졸속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어떤 이유일까. 1990년대 중반부터 라돈을 배출하는 ‘음이온 효과’의 허구를 지적해 온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이번 정부 정책을 “명분도, 실효성도 찾을 수 없는 ‘돈 잔치’ 사업”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교수가 제일 먼저 지적한 것은 ‘명분’이다. “이 정책의 타깃이 누굴까? 중산층 이상이다. 라텍스를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사왔을까. 형편이 넉넉한 분들이 동남아 여행 가서 잘못된 상술에 속아 사온 것이다. 라텍스에서 다량의 라돈이 검출돼 건강을 침해한다는 우려가 있으면 폐기물로 버리게 안내를 하면 된다. 본인들의 잘못에 본인들이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왜 전국적으로 이런 데 혈세를 낭비하나.” 전화인터뷰에 응한 이 교수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전문가들은 ‘왜 라텍스만 라돈 측정을 하냐’는 지적도 제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립대 교수는 “그동안 라돈이 검출된 물품은 매트리스, 라텍스, 온수매트, 생리대, 대리석 등 생활 속에 다양하다”며 “왜 해외에서 구매한 라텍스에 대해서만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 대신 측정을 해 주나”라고 말했다. 이덕환 교수는 아예 정부가 사회적으로 발언권이 크고 힘 있는 이들에게 세금을 몰아주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부가 사회적으로 발언권이 있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세금을 들여 보호해 주고 정작 수거·폐기 작업 등을 해야 할 약자들에게는 위험을 떠넘기는 무자비한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 사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는 내부에서 나왔다. 정부 설명회에 참석했던 지자체 관계자는 “일부 지자체는 이미 라돈 침대 사태를 거치면서 라텍스도 라돈 측정을 마쳤다. 또 국민들이 ‘왜 온수매트는 측정을 해 주지 않고 라텍스만 해 주냐’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현재 지자체에는 라돈 측정기 보유 대수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길게는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차라리 예산을 시·군·구에 나눠준다면 각자 사정에 맞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푸념했다.

 
이낙연 총리는 5월21일 국무회의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라돈 검출 침대 안전성 발표의 혼선에 대해 사과했다. ⓒ 연합뉴스


“제2의 당진 사태 가능성…민란 일어날 수도”

정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세밀하게 정책을 짜지 않은 것 같다”며 “일회성 사업, 선심성으로 급조된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 정부 관계자는 “정책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 최대의 정책효과를 노려야 하는데, 라돈 사태에서 지금 이 사업이 가장 시급하다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부 스스로 앞뒤가 다른 얘기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가정집에 있는 라텍스는 위험할지도 몰라 정부가 나서는데, 정작 정부는 부적합 제품을 수거·보관하는 작업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설명회에서 “음이온 방출 제품에서 방출되는 라돈은 실제로는 토론”이라며 “(부적합 제품) 수거 시 작업자 건강 영향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또 “보관 시 주변 환경에 미치는 라돈 및 토론 영향은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정부의 주장에 대해 이덕환 교수는 “너무 웃기는 얘기다. 침실에 있는 라텍스는 건강에 해로운데, 문제의 라텍스를 모아놓으면 건강에 해롭지 않다는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설명”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이 사업을 왜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교수는 “부적합 제품을 수거·보관하는 이들은 하루 일당이 아쉬워서 건강권을 챙길 수 없다”면서 “‘당신들 건강은 문제 될 게 없으니 알아서 하라’는 정부의 태도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설명회를 들은 지자체 관계자도 “부적합 제품을 수거·보관해야 하는 우리의 건강권은 차지하더라도 정부 설명대로라면 이 사업을 대체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부적합 제품을 각 지자체에 보관한다는 방침이 ‘제2의 당진 사태’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당진 주민들은 충분한 설명과 동의 없이 ‘라돈 침대’를 당진에 들이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을 한 바 있다. 한 사립대 교수는 “과연 부적합 제품을 지자체에 보관할 수 있을까”라면서 “또 하나의 당진 사태가 올 수 있다. 전국적 민란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