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女 대결’ 떴다 하면 덮어놓고 분위기 ‘활활’
‘커뮤니티→언론→포털→현실’ 성대결 이슈 전파 과정
2018-11-21 조문희 기자
커뮤니티서 ‘활활’하면 같은 기사 수천 건씩 양산
두 사건 모두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기 이전에 온라인에서 먼저 크게 화제가 됐다. 11월13일 새벽 이수역 인근 주점에서 싸움이 벌어진 다음 날 피해 여성이라고 주장한 이가 ‘네이트판’에 “도와주세요. 뼈가 보일만큼 폭행당해 입원 중이나 피의자 신분이 되었습니다”라며 올린 글은 11월21일 현재 24만3000여 조회 수를 기록했고, 3400여 건의 공감을 얻었다. 같은 사건의 공론화를 요청한 청와대 청원 게시물은 단숨에 35만 명의 서명을 받았다. 동시에 사건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확대됐다. 네이트판에 글이 올라온 11월14일부터 담당 경찰서의 사건 브리핑이 있던 11월16일까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이수역 폭행’으로 검색되는 뉴스는 1600여 건에 달한다. 해당 기사들은 최대 60만 번 이상 읽혔고(연합뉴스 “'이수역 폭행' 경찰, 남성 3명·여성 2명 '쌍방폭행' 모두 입건”), 6000여 건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같은 기간 각종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엔 ‘이수역 폭행’이 있었다. 일베 여친 인증 사건 역시 비슷하게 재생산됐다. 일베에 ‘여친 인증’이란 제목으로 여성의 신체 사진이 첨부된 글이 무더기로 올라오기 시작한 11월18일부터 경찰이 일베 서버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한 11월21일까지 370여 건의 기사가 보도됐다. 관련 수사를 촉구한 내용을 담은 청와대 청원은 14만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같은 기간 ‘일베 여친 인증’이란 키워드는 실시간 검색어를 점령했다.
진실 가리기도 전에 주홍 글씨 낙인…“언론 탓”
문제는 사건이 너무 짧은 시간 안에 공론화된단 점이다. 진위여부를 가리기도 이전에 사건이 급속도로 주목받게 되면 여론재판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다. 이번 이수역 주점 폭행사건에서도 사건 초기엔 여론이 여성 측에 기울었지만, 영상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분위기는 반전을 거듭했다. 여성들이 남성들을 향해 혐오 표현을 내뱉는 영상이 퍼지자 피해자였던 여성들이 단숨에 가해자로 변한 것. 수사가 진행 중인 11월21일 현재에도 온라인상에선 남녀의 잘잘못을 따지는 여론재판이 여전하다. 이에 대해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언론 탓에 온 국민이 여론재판에 재미가 들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느 성(性)이 먼저 잘못했느냐를 따지는 건 탐정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성대결 구도에 초점을 맞추고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건 갈등을 부추기는 것에 불과하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우리 사회에 혐오가 얼마나 만연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와 관련된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