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화재…시한폭탄 같은 원자력연구원 사건 사고들
하나로 원자로 사고부터 방사성 물질 관리 소홀까지, 잃어가는 신뢰
2018-11-20 대전 = 김상현 기자
또 화재가 발생했다. 올해만 벌써 두 번째다. 원자로가 있고 다량의 방사성폐기물이 보관된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말이다. 인근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도 있어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곳 원장은 이미 계속되는 사건·사고에 책임을 지고 사임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임식은 화재 발생 다음날이다.
지난 11월19일 화재가 발생한 곳은 화학분석실에 딸린 실험복 등 수거물 보관실이다. 평소 화학실험 후 발생하는 실험복 등 고체폐기물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이들은 모두 방사성폐기물이다. 대전시 소방본부는 인명과 방사선량 피해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동안 원자력연이 보여줬던 운영 내용을 보면 사고 예방에 안일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원자력연은 이미 올 1월 20일 가연성폐기물처리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한 바 있다. 당시 사고 내용을 임의로 빠뜨리고, 허위 보고한 것이 드러나 질타를 받은지 겨우 10개월 만에 이번에 화재가 또 발생했다.
원자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안전과 국민의 신뢰가 기본이다. 원자력연이 그동안 보여준 행태를 보면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지 의문이 든다. 2000년 이후 발생한 사건·사고만 해도 다양하다. 그중에는 아직 해결 못 한 것도 있다.
가동 후 정지 반복 끊이지 않는 하나로 원자로 관련 사고
원자력연은 1995년 우리나라 자력으로 설계 건조한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를 운영 중이다. 다양한 신약개발은 물론 첨단과학 연구 및 신소재 개발 등에 기여하는 중요한 국가 연구시설이다. 그런데 사고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2004년 4월에는 방사능 오염 중수가 7일간 무려 82ℓ나 누출됐다. 더 큰 충격은 원자력연이 이 사건에 대해 은닉을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원자력연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규제실에 ‘방사능 누수’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
2005년 5월에는 충남대학교에 설치한 대전지역방사능측정소에서 빗물에 포함된 방사성요오드가 검출됐다. 같은해 8월에는 핵연료 가공시설인 새빛연료과학동 내 우라늄 분말을 모아놓은 철제용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시설 내 최대 방사능 농도가 경보 설정치를 무려 8배나 초과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나로 원자로는 이 사건으로 그해 12월부터 6개월간 작동을 멈췄다.
2006년 11월에는 하나로 원자로 내 냉중성자실험 설비 모의관 설치를 위한 사전 준비작업을 하던 작업자가 선량한도의 7%를 넘어서는 피폭을 당했다. 2007년 5월에는 방사성 요오드가 하나로 동위원소생산시설 지하기계실 굴뚝을 타고 7시간 동안 방출된 사건도 있었다.
2011년 2월에는 대전지역에 ‘방사선 백색비상’ 경보가 발령됐다. 하나로 원자로 수조 아래에 잠겨 있던 실리콘 반도체 생산용 회전 알루미늄 통의 고정부위가 마모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사고로 원자로 주변 50m 이내 방사선 준위가 시간당 1밀리시버트(mSv/h)를 초과했다. 당연히 원자로는 자동 정지됐다. 2012년 4월에도 원자로 수조표면에서 고-방사성 물질 누출이 탐지돼 또 다시 원자로가 정지됐다. 2014년 7월에는 하나로 원자로 중성자 실험설비의 전원 공급함에 문제가 생기면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때는 원자로를 수동 정지했다.
원자력연은 우여곡절을겪으며 3년 5개월 만에 하나로를 재가동했다. 하지만 고작 6일 만인 2017년 12월 11일 다시 가동을 중단했다. 10일 정오께 방사선이 원자로 건물로 나가는 것을 줄여 방사선 준위를 줄이는 역할을 하는 수조 고온성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았고, 끝내 안정성 기준에 미치지 못해 강제로 정지시켰다. 이후 원안위는 관련 설비 개선 등 조치가 완료됐다고 보고 올해 5월 15일 재가동을 승인했다. 하지만 7월 30일 이내 동작을 멈췄다. 이번에는 하나로 연구용 원자로가 정상운전 중 ‘냉중성자원 수소계통’ 저압력이 발생한 것이 원인이었다.
국내 연구자들은 ‘하나로’의 정상 가동을 계속 요구해 왔다. 지난 12일에는 의료계·학계 연구자들로 구성된 '하나로 이용자 그룹 대표자 회의'가 보도자료를 내고 "하나로 가동정지 상태를 장기적으로 지속함에 따라 국민건강 증진과 환경문제 개선, 소재산업 발전, 첨단과학 연구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하나로 정상 가동을 촉구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14일 제91회 원자력안전위원회를 개최하고 하나로 연구용 원자로에 대한 재가동을 승인했다.
방사성물질 관리 소홀…불안감 확산 원인 작용
원자력연의 사건·사고는 비단 하나로 원자로에 국한하지 않는다. 방사성물질 관리에 대한 문제도 거듭됐다. 2007년에는 레이저 연구 장치에 쓰이는 핵물질인 우라늄 2㎏을 분실하는 사고가 있었다. 연구원 측은 3개월 동안 잃어버린 사실을 파악조차 하지 못하다 쓰레기 매립장에 버린 것으로 결론 내렸다.
2011년 5월부터 2015년 7월까지 방사선 관리구역에서 사용한 장갑·비닐 등을 한 달에 20ℓ씩 일반 쓰레기로 투기한 것도 드러났다. 방사능에 오염된 토양을 제염하면서 나온 물은 빗물에 몰래 흘려보내기도 했다. 작업복과 이를 세탁한 물을 무단 배출하는 가 하면 작업 장갑을 소각하기도 했다. 폐기물 소각 시설의 배기가스 감시기 측정기록 조작도 들통났다. 세슘 폐기물 등 약 109톤을 허가 없이 녹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2015년 11월에는 연구원 내 방사선 관리구역 배수로 공사 때 나온 콘크리트 폐기물 0.15톤을 충남 금산군에 불법 매립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 5월 9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자력연이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서울 공릉동 연구용원자로 '트리가 마크-Ⅲ'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 관리를 제대로 못 했다”라고 지적했다. 연구원에서 보관해 오던 차폐용 납과 구리 전선, 밀봉용 금 소재를 무단으로 외부로 유출하거나 폐기한 것을 적발했다. 이후 원안위는 6월, 폐기물 중에 납 44톤과 철제,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등 30톤을 무단 반출하거나 잃어버린 상태라고 추가 발표했다. 사태가 커지자 원자력연구원은 뒤늦게 규정위반 의심사례 16건을 자진 신고하기도 했다.
대충 잠잠해질 것으로 여겼던 이 사건은 지난 10월 원자력안전기술원이 국회 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실에 사라진 폐기물 중 "중저준위 폐기물 약 10톤이 포함돼 있다"고 답변한 것이 보도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중저준위 폐기물은 방사능에 오염된 물질이지만 이 폐기물의 행방은 아직 묘연하다. 지난 9월에는 이 사건을 원자력연구원의 부서장급 직원들이 반출 때부터 알고 있었거나 직접 연루된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국내 원자력계는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에 대해 지속해서 날선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신재생에너지를 연구하는 과학자마저 “국내 전력 수급 계획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상태서 원전 축소를 밀어붙이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연 이은 원자력연의 사고에 대해 전문가들은 "원자력은 안전에 대한 신뢰가 우선이다. 원자력을 연구하는 대표 기관인 원자력연이 신뢰를 잃는 순간 원자력계의 주장은 공염불이 될 수 있다"며 "원자력연이 원자력 이용의 안전성에 대해 국민이 신뢰 할 수 있도록 우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