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EU 탈퇴로 가는 길 ‘산 넘어 산’

英 내각 통과한 ‘브렉시트 합의안’ 의회 비준은 난항 예상

2018-11-19     방승민 영국 통신원

영국 총리 테리사 메이가 11월12일 “EU (유럽연합)를 떠나기 위한 브렉시트 협상이 종반전에 접어들었다”고 발표한 지 이틀 만인 11월14일. 드디어 5시간의 최종회의 끝에 585페이지에 달하는 브렉시트 합의안이 영국 내각의 지지를 받아 통과됐다.

이번 합의문은 몇몇 EU 국가들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EU 브렉시트 협상 수석대표 마이클 바니어는 이번 합의문을 두고 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이 유럽과의 친밀한 동맹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라 평가했다. 아일랜드 총리 레오 버라드커 또한 아일랜드 관련 주요 쟁점들과 관련해 만족할 만한 결과라고 지지를 표했다.

그러나 여전히 영국 내에서는 이에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분위기가 흐른다. 특히 노동당 대표 제레미 코빈은 이번 합의문이 영국인의 전반적인 관심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뿐 아니라 여전히 노동연금부 장관 에스더 맥베이를 비롯한 10명의 장관들은 이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합의문은 11월 중으로 잡혀 있는 EU 정상회담에 전달돼 논의될 예정이다. 또한 동시에 영국 의회의 승인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합의문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아 의회의 비준을 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영국이 EU를 탈퇴함으로써 390억 파운드(약 57조원)에 달하는 배상금 지급이 확정됐다. 이번 합의문에 따르면, 영국은 내년 3월 예정된 브렉시트 이후 21개월 동안 유예기간을 가진 뒤 2021년 완전히 EU를 탈퇴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영국과 EU는 기존의 관세동맹을 유지한 상태에서 이를 대체할 무역협상을 통해 2020년 7월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이후에도 영국은 유럽과 ‘자유무역지역’ 설정을 통해 관세나 쿼터 제한이 없는 무역을 지향하고 있다. 또한 유럽에 거주 중인 영국인 및 영국 내 거주 중인 유럽인들은 현재와 같이 거주, 학업 등과 관련한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할 전망이다.  

 
브렉시트 안건에 대한 의회 비준이 남은 지금, 분열된 목소리를 통합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테리사 메이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 AP 연합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 ‘현재진행형’

주요 쟁점들 중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을 꼽으라면 단연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 영토 소속 북아일랜드 지역의 국경 문제다. EU와 영국은 ‘하드 보더(Hard border·영국과 EU 각각의 영토에 대해 통행 및 통관 절차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를 피하기 위해 현재와 같이 개방된 국경을 유지하는 ‘백스톱(Backstop·안전망)’을 마련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북아일랜드 국경 지역에서는 현재의 통관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EU는 ‘하드 보더’를 피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입장을 밝혔으나, EU에서 벗어나 영국의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하는 영국 내 브렉시트 지지자들과 아일랜드 보수정당 민주연합(DUP· Democratic Union’s Party)은 영국 본토와 다른 EU 규정이 적용되는 것에 대해 강한 반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북아일랜드가 브렉시트 이후에도 EU 관세동맹에 잔류하게 될 경우 영국 통합에도 균열을 야기할 수 있어 이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브렉시트를 향한 다음 절차인 영국 의회의 비준 또한 난항이 예상된다. 특히 이번 테리사 메이의 브렉시트 협상과 관련한 지지부진한 태도를 비판적으로 보며, 국민들뿐만 아니라 영국 의회 내에서도 총리 자리를 내려놓고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합의안을 도출해 내는 과정 중 최근 있었던 내각 회의와 관련해 세 명의 내각 멤버가 테리사 메이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브렉시트에 대한 접근 방향과 계획을 포기해야 한다고 비판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로 인해 비록 내각에서 합의안이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의회 내에서는 “EU 친화적인 합의안”이라는 비판과 “다수의 반대표가 예상돼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다.

하지만 적어도 오는 12월 내에 테리사 메이 브렉시트 내각의 안건이 영국 의회의 승인을 받아 EU와 합의가 진행돼야만 영국 국민들에게 갈 부담이 적어진다. 현재와 같이 진전이 더딘 속도로 내년을 맞이할 경우, 불가피하게 노딜 브렉시트를 대비한 비상책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선 하루라도 빨리 다수를 만족시킬 만한 영국 의회의 신속하고 합리적인 결정이 필요한 셈이다.

EU 내 합의 또한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로선 EU는 이 협상안이 회원 국가들에 전달돼 처리되는 데 적어도 6주에서 8주가 소요될 것이며 영국이 EU를 탈퇴하기 1~2주 전인 3월 중순에 투표를 개최할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만일 의회의 비준이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EU 내 합의가 불발되는 등 올해가 가기 전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영국의 마지막 데드라인은 2019년 1월21일이 될 것이다. 이 경우 영국 정부는 영국 의회에 브렉시트와 관련해 추후 진행 절차를 제안해야 한다. 이 경우 아무런 합의 없이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로 진행하거나 브렉시트 실행을 연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탈퇴가 연장될 경우 영국 정부가 EU와 재협상을 하거나 브렉시트에 대한 국민 재투표를 하는 등의 선택이 있다.


여전히 재투표 목소리 강해

전 영국 총리 고든 브라운을 비롯해 토니 블레어와 존 메이어는 사실상 브렉시트 국민 재투표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이번 합의문 발표를 앞둔 월요일, 고든 브라운은 2016년 국민투표 이후 영국 내외의 정치·경제적 상황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국민 재투표가 고려돼야 하며 설령 영국이 EU를 떠나더라도 재가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반드시 열어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테리사 메이는 영국 국민들의 의견이 담긴 국민투표의 소중한 결과를 지키기 위해 브렉시트 협상에서 타협은 없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러나 가디언지는 이번 테리사 메이의 합의안을 두고 ‘분열된 내각, 분열된 정당 그리고 분열된 국가’라고 평가했다. 의회 비준이 남은 지금, 분열된 목소리를 통합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테리사 메이의 행보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