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김기식 몸만 풀어도 ‘벌벌’ 떠는 재계

김수현 실장 영향력 경제정책에 어떤 영향 줄지 주목…더미래연구소 대기업 견제에 화력 집중할 듯

2018-11-16     엄민우 시사저널e. 기자

“내년도 기업들엔 꽤나 추운 겨울이 될 것 같다.” 한 재계 인사는 김수현 사회정책수석이 장하성 정책실장의 후임으로 온다는 소식에 이같이 말했다. 친(親)기업적인 정책보다는 아무래도 기업을 압박하는 정책이 이뤄질 것이란 우려 섞인 한마디였다. 그만큼 ‘김수현’이라는 세 글자는 기업들엔 상징적 의미가 있다.

국회에선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활동 재개가 주목받고 있다. 과거 의원 시절 외유성 출장 비판 속에 금감원장에서 물러났던 김 전 원장은 최근 원래 몸담았던 더미래연구소로 돌아왔다. 대기업 견제 부문의 ‘특급타자’인 그의 복귀만으로 국회의 재계 압박이 강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과거 프로야구에선 해태 타이거즈 선동렬 투수가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타자들이 겁에 질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만큼 존재만으로 주는 위압감이 상당했다는 것이다. 지금 김수현 실장과 김기식 위원장을 보는 기업들의 표정이 딱 그때 타자들과 비슷하다. 시민운동을 했던 주요 인사들이 기업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로 복귀함에 따라 재계의 긴장감이 다시 커지는 분위기다. 내년에도 정부와 여의도에서 기업에 훈풍을 기대하는 건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까닭이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왼쪽)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오른쪽) ⓒ 연합뉴스·뉴시스


내년도 기업 훈풍 힘들 것으로 전망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는 경제부총리지만 큰 틀에서 실질적으로 정책적 방향을 결정하는 위치는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이 때문인지 최근 정부 인사 전까지 기업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장하성 실장 후임으로 누가 오느냐’였다.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하는 장 실장이 교체된다면 기업과 동행하는 기업정책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후임으로 사회수석을 맡던 김수현 실장이 오게 되자 기업들의 기대감은 일순 긴장감으로 바뀌는 모습이다. 한 재계 인사는 “김 실장이 정책실장으로 온 것은 내년에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오히려 ‘왕수석’이라고 불리던 그이니만큼 더욱 본인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실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사회정책비서관 등을 지냈고, 이후 서울시 정책 싱크탱크인 서울연구원의 원장 자리를 맡았다. 노무현 정권의 사람이면서 박원순 시장과 정책적으로 발을 맞춘 경험이 있어 시민사회계도 두루 경험한 인물로 분류되기도 한다. 특히 이번 정권에 들어서선 ‘왕수석’으로 불릴 정도로 청와대 내 실세로 여겨졌다. 애초에 장하성 실장과 김동연 부총리가 불협화음을 보였던 모습도 있지만, 그런 김 실장이기에 기업들의 부담감도 더욱 크다는 분석이다.

김 실장도 이를 의식한 듯 미리부터 자신에 대한 우려를 차단하고 나섰다. 그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경제 운용에 있어선 경제부총리를 사령탑으로 해 하나의 팀으로 일하겠다. 정책실장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으로서 경제부총리의 활동을 지원하고 뒷받침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긴장감은 여전하다.

특히 함께 교체 임명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본인의 색을 크게 드러내기보단 무난한 관료 스타일로 평가받는다는 점도 김 실장의 영향력이 경제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점치게 하는 요소다. 실세 총리와 관료형 부총리의 조합을 보면 아무래도 김 실장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홍 부총리는 수요일마다 기업인들을 만나기로 했다. 대기업, 중소기업, 자영업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 만나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전임 김동연 부총리보다도 기업들과 자주 소통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그가 크게 나서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면 무난한 행보를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김수현 실장이 경제부총리를 사령탑으로 일하겠다고 했는데, 그런 발언도 실질적으로 힘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외부에서 들어왔던 장하성 실장보다 김수현 실장이 오히려 더욱 정책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더미래연구소 상임위 지원 강화 전망

기업들의 저승사자로 여겨지던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원래 몸담았던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으로 복귀했다. 김 전 원장은 복귀하고 얼마 안 돼 여러 개로 나뉘어 있는 정책금융기관을 통합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더미래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가 소장이 된 이후 (김 전 원장을) 다시 불러서 함께하자고 했다”며 “문재인 정부 성공을 위해 계속 정책적 의견들을 낼 것이며 연구소가 다시 활기를 찾고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김 전 원장은 19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할 때부터 기업들의 저승사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당시 기업인들에게 정무위원회에서 가장 경계하고 예의주시하는 의원이 누구냐고 물으면 김 전 원장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런 그가 더미래연구소 위원장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에 재계는 당황하는 눈치다. 한 재계 인사는 그의 복귀 소식에 “놀랄 만한 소식이고 앞으로도 만만치 않겠다”고 내다봤다. 사정기관 인사 역시 그의 복귀를 놓고 “김 전 원장 복귀를 계기로 대기업에 대한 여당의 압박이 강해질 것”이라며 “정부의 강경한 재벌정책을 여당이 뒷받침해 주는 그림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삼성을 둘러싼 현안에 대해 어떤 정책 아이디어들이 나올지 주목된다. 김 전 원장은 특히 삼성 문제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5년 국정감사에서는 삼성 합병 문제와 관련해 국민연금이 의사결정 원칙을 훼손했다며 홍완선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게 쓴소리를 했다. 또 올해 5월 금감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달라”고 밝히는 등 삼성과 관련된 주요 이슈에 대해 지적했다.

인물도 인물이지만 그가 복귀한 더미래연구소 역시 단순한 연구소 이상의 위상을 갖고 있다는 점도 기업들의 표정을 어둡게 한다. 더미래연구소는 실제 정부·여당 주요 정책을 수립할 때 싱크탱크 역할을 했다. 조국 민정수석 등 주요 인사들이 연구소를 거쳐 갔고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해당 연구소는 기존 여의도의 싱크탱크와 달리 국민들 실제 삶에 영향을 주는 실용적인 문제를 다뤄왔다. 김 전 원장의 복귀로 향후 여의도발(發) 재벌 관련 정책은 더욱 활기를 갖게 될 전망이다. 우상호 소장은 “더미래연구소는 보고서를 내는 것뿐 아니라 의원들의 상임위 활동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기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