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근 부영 회장 1심, 공개된 증거도 무시됐다”

판결문 입수해 분석해보니…20개 혐의 중 절반 이상이 ‘무죄’

2018-11-15     공성윤 기자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기소된 건 지난 2월이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횡령과 배임, 조세포탈, 입찰방해 등 총 20개에 달했다. 이 중에서도 핵심 혐의로 꼽힌 건 서민들에게 고통을 안긴 ‘임대주택법 위반’이었다.

9개월이 흘렀다. 이 회장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11월1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됐다. 재판을 맡은 형사합의22부(이순형 부장판사)는 임대주택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선고 결과는 징역 5년에 벌금 1억원. 검찰 구형량인 ‘징역 12년·벌금 73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수천억원대 횡령·배임과 임대주택 비리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11월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임대주택법 위반’ 무죄 되면서 대폭 감형

선고의 변수로 작용한 그 임대주택 비리란 무엇일까. 부영은 임대주택으로 거물이 된 기업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기업을 제외하고 민간에서 임대주택 사업을 논하려면 부영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임대주택은 저소득의 무주택자에게만 입주가 허락된다. 현행법에 따라 거주한 지 5년 또는 10년이 지나면 입주민에게 분양한다.

이 과정에서 사달이 났다. 분양전환가격을 매기는 기준인 건축비를 과도하게 부풀렸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건축비가 늘어나니 자연스레 분양가도 올라갔다. 피해는 고스란히 입주민에게 돌아갔다. 부영 임대주택주민모임 ‘부영연대’의 이영철 대표는 11월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서민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임대주택 비리를 제대로 파헤치지 않으면 검찰과 법원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인정하는 꼴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사저널은 이번 재판의 판결문을 입수했다. 여기에 따르면, 부영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임대주택 2만1259세대의 분양전환가격을 매기면서 건축비를 ‘표준건축비’로 계산했다. 표준건축비란 정부가 분양가 안정을 위해 고시하는, 건설원가의 상한선이다. 그런데 앞서 2011년 대법원은 “분양전환가격의 산정기준인 건축비는 표준건축비가 아니라 실제 투입된 건축비(실제건축비)”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검찰은 이를 언급하며 “이 회장이 임대주택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재판부는 실제건축비를 구성하는 공사비와 판매비, 일반관리비 등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이러한 상황에선 실제건축비가 표준건축비보다 낮았다는 점 역시 입증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가 난 것이다.

이를 두고 부영의 회계고문 출신 회계사 A씨는 “실제건축비를 추산할 수 있는 비용 근거는 회계감사보고서에 빠짐없이 공개돼 있다”며 “누구나 볼 수 있는 증거를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이 회장이 1972년 설립한 ‘우진건설산업’에서 경리부장을 지냈다. 회계와 관련해 이 회장과 인연을 맺은 게 30년이 넘는다고 한다. 그는 이 회장에 대한 2차 공판 때 출석한 검찰 측 증인 중 한 명이다.

A씨는 11월15일 기자와 만나 “(실제건축비의 구성요소인) 공사비는 임대주택이 완공되면 자산으로 잡혀 회계보고서에 기록된다”며 “보고서의 숫자마저 법원이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회사의 자산뿐만 아니라 감사하는 회계법인마저 부정하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박동흠 현대회계법인 회계사는 “회계보고서 외에 계산서나 영수증처럼 실제건축비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전표는 보존기간이 5년”이라며 “부영이 전표를 파기했다면 검찰이 증거를 충분히 수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검찰도 이 회장에 대한 공판 과정에서 “부영에서 한 번도 실제건축비 자료를 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임대주택법 위반을 무죄로 본 이번 판결은 입주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임대주택 건축비를 문제 삼아 전국 각지에서 부영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은 200건이 넘는다고 알려졌다. 대다수 소송은 건축비 기준을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희비가 갈렸다. 소송 중엔 올 5월 대법원까지 올라간 사건도 있다. 아직 판결이 나오지 않아 나머지 하급심의 결과를 예단하긴 이르다. 그럼에도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판결이 최종 확정되지 않은 이상 각급 법원은 최근에 나온 판결을 중시한다”며 “이 회장에 대한 1심 판결은 부영 관련 소송을 맡은 다른 재판부에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횡령·배임보다 더 엄중한 ‘1조’ 주택비리

임대주택 비리는 이 회장의 다른 혐의들과는 결이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횡령이나 배임죄는 회사와 그 관계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반면, 임대주택 비리로 고통받는 쪽은 입주민들이다. 규모에서도 차이가 난다. 검찰이 판단한 이 회장의 횡령·배임 규모는 4300억원대다. 그런데 임대주택법 위반으로 챙긴 부당이득은 대략 1조원이라고 봤다.

횡령·배임 혐의가 모두 인정된 것도 아니다. 4300억원대 금액 가운데 약 523억원만 유죄로 인정됐다. 특경법상 부당이득이 300억원 이상이면 양형기준은 5~8년이다. 재판부는 가장 낮은 5년을 선고했다. 양형기준상 ‘실질적 1인 회사나 가족회사’는 감경 요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부영그룹의 지주사 ‘㈜부영’의 지분 93.8%를 가진 실소유주다.

이외에도 감경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부연설명을 했다.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고 △나름대로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을 위해 노력해 왔으며 △나이와 직업, 건강상태, 환경, 가족관계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에 앞서 또 하나 주목을 받았던 부분은 이 회장의 재구속 여부였다. 그는 구속된 지 5개월 만인 올 7월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법조계에선 “나중에 공소사실이 상당 부분 유죄로 드러나면 다시 감옥행을 피하기 힘들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20개 혐의 중 14개가 무죄로 판명 났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보석을 유지한다”고 했다. 항소심까지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게 해 준다는 뜻이다.

당장은 자유의 몸이지만 이 회장은 공식 석상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지장을 받는 곳이 또 있다. 그가 역시 회장으로 있는 대한노인회다. 노인회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익명의 관계자는 11월15일 “이중근 기소 이후 운영에 있어서 줄곧 내홍을 겪고 있다”고 귀띔했다. 현재 노인회에선 이 회장 측근이자 부영 고문인 봉태열 부회장이 주요 업무를 맡고 있다고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