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이제 입구에 막 들어섰을 뿐”

[인터뷰] 유엔 총회 비핵화·군축 담당했던 류광철 前 짐바브웨 대사…“조금만 어긋나도 떨어질 수 있는 살얼음판”

2018-11-13     유지만 기자

남북관계가 ‘비핵화’의 단계에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중요한 변수인 북·미 관계가 생각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미국은 줄곧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는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간선거 다음 날인 11월7일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나는 제재들을 해제하고 싶다. 그러나 그들(북한) 역시 호응을 해야 한다”며 쌍방향론을 제기했다. 남북관계 개선의 주요 변수인 대북제재와 북한의 비핵화를 동시에 언급하면서 속도를 조절하는 모양새다.

비핵화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까. 시사저널은 노무현 정부 시절 유엔 총회 비핵화·군축 담당인 1위원회에서 근무한 류광철 전 짐바브웨 대사를 만났다. 그는 현재 문재인 정부의 북한 관련 외교에 대해 “대체적으로 마스터플랜을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비핵화는 이제 입구에 막 들어섰을 뿐”이라며 “수없이 많은 난관이 앞에 펼쳐져 있고, 조금만 어긋나도 떨어질 수 있는 살얼음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유엔에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비핵화와 군축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유엔에서 공사참사관으로 근무하면서 유엔 1위원회를 관장했다. 1위원회는 군축과 국제안보를 담당하고 있다. 주로 테러나 회원국 간 안보협약, 비핵화 이슈 등을 다뤘다. 안보의 일반적인 이슈를 모두 다룬 것이다.”

당시 큰 이슈는 주로 어떤 것이었나.

“이라크 문제가 있었다. 9·11 테러에 대한 보복조치로 2003년에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다. 당시 미국의 ‘네오콘’들이 강하게 의견을 냈다. 현재 백악관에 있는 존 볼턴과 그의 상관 격인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딕 체니 부통령 등이 강력하게 이라크 응징을 주장했다.”


“존 볼턴 유엔 대사로 와 ‘스포일러’로 악명 떨쳐”

존 볼턴은 당시 어떤 역할을 맡았나.

“당시 존 볼턴은 ‘어드바이저’(조언자) 역할이었다. 미국 매파의 핵심 멤버 중 하나였다. 또 2004년쯤 유엔 대사로 와서 악명을 날렸다. 보통 유엔 회원국 간 회의는 상당히 점잖은 분위기로 진행되는데, 존 볼턴은 회의 진행 방식이 아주 독특했다. 언사나 행동이 매끄럽지 못했다. 특히 미국에 대해 좋지 않은 얘기가 나올 때는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경우도 많았다. 존 볼턴이 소위 ‘스포일러’(‘망치는 자’라는 의미)로 악명을 떨쳤다.”

당시에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다.

“맞다. 당시 유엔의 분위기는 아주 끔찍했다. 그 전에 2002년 말쯤 미 국무부의 존 켈리 차관보가 북한에 다녀온 뒤 유엔 측에 중요한 미팅을 요청했다. 처음으로 북한이 플루토늄 외에 농축 우라늄을 가지고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고 했다.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문의가 들어와 유엔에서도 매우 경악했다. 그 이후부터 북한과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됐다. 그러던 중 2003년 초에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했다. 그 문제로 유엔 회원국 간 몇 개월동안 협의를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북한의 NPT 탈퇴는 국제법상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북한은 자기네가 NPT 당사국이 아니라고 하지만, 국제법적으로는 북한의 NPT 탈퇴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사실상 현재까지 NPT 가입국인 셈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 정상회담 시기에 유엔의 분위기는 어땠나.

“정상회담은 했지만 핵문제에 대한 진전은 전혀 없었다. 다만 6자회담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당시 북한의 김계관이 카운터파트로 나와 논의를 진행한 바 있다. 2005년 9·19 공동선언을 통해 북한의 유화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결국 이 공동선언도 깨져버렸다. 북한에 핵은 그냥 포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가진 것 중 유일하게 국제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카드가 핵이기 때문이다. 핵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니 이제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개발했다. 그래서 미국까지 나서게 된 것이다.”


“핵 폐기에 이르려면 지난한 과정 거쳐야”

북한은 현재 비핵화를 언급하고 있는데.

“완벽한 핵 포기는 쉽지 않은 문제다. 현재까지 모든 논의는 사실상 핵 때문이지 않았나. 모든 고통을 견뎌가며 겨우 개발한 것이 핵이다. 북한이 풍계리 실험장을 폐쇄하며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보이긴 했지만, 아직까지 핵심적인 핵 시설과 무기에 대해서는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일단 북한이 핵을 모두 없애려면 그동안 개발한 모든 핵 시설과 무기에 대한 목록을 만들어 상대국에 줘야 한다.”

그런 이후에 핵 사찰이나 핵 폐기가 가능한가.

“그렇다. 모든 핵 관련 시설과 핵무기에 대한 리스트가 나온 뒤 이를 가지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짜게 된다. 이 로드맵에 따라 직접 현장에 가 사찰을 한다. 목록이 맞으면 공표를 하고, 맞지 않으면 다시 따져봐야 한다. 그런 절차가 끝난 후 무기의 폐기 내지는 반출이 결정될 것이다. 현재 미국 측은 그런 이후에 북한에 알맞은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과 현재의 북한 문제에 대한 접근법이 어떻게 다른가.

“당시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중이었다면, 현재는 어느 정도 핵 무력을 완성한 상태다. 이런 상황 차이는 아주 크다. 비핵화로 가는 길은 아주 험난하다. 작은 이유 하나로 논의가 언제든지 중단될 수 있다. 이럴수록 한국이 중심을 잡고, 핵과 관계없이 북한과의 관계를 좋게 가져가면서 중재자 역할로 나서야 한다.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도 여러 일들이 있지 않았나. 2차 북·미 회담도 내년에 이뤄진다고 하니, 예전에 비하면 크게 상황이 나아졌다. 문재인 정부의 방향성은 확실해 보인다. 현재까지는 긍정적인 면이 많이 보인다. 박근혜 정부 시절의 태도를 계속 견지했다면 몇 년이 지나도 북한과의 대화 창구가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고 좋은 제스처를 보내 현재까지의 분위기를 이끌어낸 것은 큰 성과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비핵화 자체는 이제 막 입구에 섰을 뿐이다. 비핵화가 본궤도에 오르는지 여부에 따라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지가 결정될 것이다.”